경주시 공법 선정 과정, 행안부 예규 위반 사실 확인...공고 기간 규정 7일 무시하고 불과 4일 만에 마감해...규정 상 정한 평가점수표 작성도 생략하는 등 ‘논란’

ⓒ김창숙 기자
ⓒ김창숙 기자

경주 APEC 정상회의 대비 주요도로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경주시가 발주한 ‘돌출형 차선도색’ 공사와 관련해 도입 배경에 대한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계약 절차와 평가위원의 심사 과정에서 명백한 규정위반 사실이 확인돼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경주시는 행안부 예규로 규정된 공고기일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앞당겨 단축시켰고, 단일 접수된 업체의 기술제안서를 평가 항목별 배점 기준을 따르지 않고 단지 적용 여부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식으로 심사를 단순화한 것으로 밝혀졌다.

신기술·특허공법 선정 및 계약은 시공업체 하도급 계약에 있어 통상 기술보유 업체의 독점 계약으로 이어지므로 매번 특혜 시비가 따르기 쉽다. 때문에 행안부는 공법 선정 절차와 평가 기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예규로서 마련해두고 있다.

규정을 무시한 절차를 통해 선정된 A업체의 차선도색 기술은 현재 북경주IC(천북면)~경주IC(율동)까지의 약 17㎞ 구간에 적용됐으며, 이 기술의 사용협약을 체결한 경주 관내 B업체가 독점으로 하도급을 맡아 시공중에 있다.

결국 단 한 곳의 업체가 전 구간의 차선도색을 독점한데다 이 업체가 기술사용협약을 맺은 시기도 약 1년에 불과해 작업 숙련도마저 낮은 상황이라 현실적으로 준공일자(9월 30일)를 맞추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경주시는 지난 3월 17일 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APEC 대비 주요도로 차선도색 정비공사 5건 차선도색 공법(신기술, 특허)선정을 위한 기술제안서 제출 안내 공고’를 게시하고 21일까지 제안서를 제출토록 안내했다.

행안부 예규는 신기술·특허공법을 반영하려는 경우 지자체 홈페이지 등에 제안서 제출 마감일 전날부터 기산해 7일전까지 공고해야 한다고 정했다. 또 긴급하거나 재공고인 경우는 5일 전까지 공고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경주시의 경우는 공고 게시일인 3월 17일부터 제출 마감 전날인 20일까지 단 4일에 불과해 명백한 규정 위반에 해당한다.

3월 24일에 게시한 재공고마저 제출 마감일을 28일로 정해 1차 공고와 마찬가지로 규정 위반에 해당된다.

이에 대해 경주시 교통행정과 담당자는 “당시 규정을 보며 절차를 진행했는데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 결과 단 1곳의 업체만 제안서를 접수했고, 재공고 이후 최종적으로 단 1개 업체가 접수하는데 그쳤다.

경주시는 다수 업체의 참여가 이뤄지지 않아 제대로 된 경쟁 내지는 비교 검토가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APEC 행사 일정에 공기를 맞추기 위해 부득이 제안서 평가 절차를 진행했다.

하지만 경주시는 이 절차마저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행안부 예규는 “공법 제안서는 공사비, 경영상태 등 정량적 평가와 시공성, 안전성, 유지관리, 경관성 등 정성적 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고 하며, 평가항목과 항목별 배점한도를 별도로 정해뒀다.

경주시는 제안서를 접수한 업체가 단수라는 이유로 제안서에 대한 평가를 규정대로 하지 않았는데, 평가위원은 항목별 배점 기준에 따른 평가를 하지 않고 단지 공법 적용에 대한 ‘여/부’ 의견을 위원들의 투표 형식으로 냈을 뿐이었다.

통상 제안서 평가에 의한 계약이 이뤄질 경우 평가항목별 평가는 업체별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은 물론이고 계약 적정성 검토도 평가점수를 통해 함께 이뤄진다.

이 경우 단수 업체에 대한 평가였다고해도 해당 신기술·특허 공법에 대한 경주시의 발주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항목별 평가는 업체 선정과 별개로 공법 적용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지표로서 유의미한 자료가 된다.

그리고 선정 결과와 평가점수는 규정에 따라 의무적으로 공개되므로, 시민들이 공개자료를 보고 시의 계약행정에 대한 적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경주시는 행정 절차 진행과정에서 규정에 정해진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자의적인 판단으로 평가점수표 작성을 생략했고, 이를 그대로 공개해 시민들이 해당 공법의 선정과 관련해 적정성 여부를 판단할 기회를 빼앗았다.

이에 대해 경주시 교통행정과 담당자는 “당시 평가 대상 업체가 한 곳 뿐이어서 평가점수를 통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았고, 단순히 적용 여부를 심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리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행정전문가 서 모씨는 “관련 예규 상에 배점 기준은 제시된 반면 평가점수 하한선은 별도로 정해지지 않아 생긴 일”이라며, “그럼에도 담당자는 규정에 제시된 절차를 지켜 평가점수표를 작성하고 공개해 업체가 제안한 기술이 평가 항목별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시민들에게 알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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