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만리 해안단구 20만평 유채꽂 단지 조성...대보리-강사리-석병리-삼정리-구룡포로 수중 파식대...향토문화재 독구리 바위

▲구만리 청보리밭(봄)
▲구만리 청보리밭(봄)

경북 동해안 올해 4월 10일 국가지질공원이 전국에서 6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뤘다.

세계지질공원에 포함된 포항의 지질명소로는 호미곶 해안단구, 구룡소, 흰디기, 여남동 화석산지, 달전리 주상절리, 분옥정, 내연산 12폭포 등 일곱 곳이다.

비록 세계지질공원의 지질명소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포항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흥해읍 오도리의 오도 주상절리, 나뭇잎 화석의 산지인 동해면 금광리 금광동층, 금광동에서 출토된 나무화석 등 우수한 지형·지질 자원이 다양하게 분포한다.

그중 구룡(호미)반도에 자리한 대보리에서 구만리에 이르는 해안단구는 세계지질공원에 속한 주요 지질명소다.

이번 글에서는 세계지질공원이자 전국적인 해맞이 명소로 사랑받는 호미곶 해안단구와 그 주변의 파식대, 시스택 같은 해안 지형의 지형·지질학적 의미와 이 지형들이 지역주민들의 삶과 역사, 문화에 끼친 영향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포항 호미곶 구만리 해안단구의 20만평 논에 펼쳐졌던 푸른 보리밭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구만리 유채밭(봄)

구만리 청보리밭은 쌀보리가 주종으로, 1970년대 식량 자급을 위해 가을에 벼를 수확한 후 파종해 이듬해 늦은 봄에 보리를 수확하는 방식으로 재배됐다.

이런 방식을 그루갈이라고 하며, 겨울이 상대적으로 따뜻한 충청 이남 지방(충청, 경상, 전라)에서 주로 행해졌다. 현재 아래 사진 속 청보리밭은 부족한 쌀을 보충 해주던 식량용이 아닌, 호미곶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로 조성된 것이다.

이처럼 농경지에 농작물을 경관 요소로 활용해 관광객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방식을 경관 농업(景觀農業, Landscape Agriculture)이라고 한다.

경관농업은 식량과 자원을 생산함과 동시에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유지하는 농업 형태로, 단순한 생산활동을 넘어 자연환경 보호, 지역 문화 보존, 관광 자원화 등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개념이다.

▲대보리의 메밀꽃(초여름)

호미곶 해안단구의 경관농업은 구만리 일대에 청보리, 유채, 메밀을 계절에 따라 번갈아 심음으로써, 사계절 내내 호미곶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채로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보리밭이었던 구만리 해안단구가 유채밭으로 변화됐다. 이 지역은 원래 1970년대 경지 정리를 통해 수로와 농로가 건설되며 논으로 활용됐으나, 경제 성장과 소득 증가로 관광·레저 산업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식량 작물인 벼 대신 경관 작물인 유채를 심는 밭으로 토지 이용이 전환된 것이다. 자연이 만든 해안단구라는 지형도 사회·경제적 여건이 바뀌면, 그 위에 살아가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토지 이용 방식이 달라진다.

구만리의 논이 청보리밭과 유채밭, 메밀밭으로 바뀌어온 과정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처럼 시대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호미곶 해안단구의 토지 이용은 ‘인간과 대지의 진화’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좋은 어장을 이루는 넓은 파식대(Wave Cut-Platform)
파랑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되는 대표적인 지형이 파식대다. 파식대의 넓이는 파랑 침식작용의 활발함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구룡반도 동쪽, 대보리-강사리-석병리-삼정리-구룡포로 이어지는 해안에는 넓은 파식대가 잘 발달해 있다.

아래는 강사리에서 구만리 방향으로 촬영한 드론 사진으로, 해안을 따라 파식대가 발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호미곶면 구만리와 대보리에 분포하는 신생대 고 제3기와 신 제3기의 화산성 퇴적암은 층리의 발달이 불량해 파식대가 매우 울퉁불퉁하다.

파식대 앞바다에는 ‘짬’이라 불리는 수중 암초와 바위섬이 밀집해 있어 항해에 큰 위험이 됐고, 이로 인해 1908년 호미곶 등대가 전국에서 두 번째로 건립됐다. 이곳에 국립등대박물관이 위치한 이유도 넓은 파식대와 수중 암초라는 지리적 배경 때문이다.

▲구만리-대보리-강사리로 이어지는 해안의 파식대. 

◇수중 파식대와 해녀, 국립등대박물관
파랑의 침식이 강하게 작용하는 구만리-대보리-강사리 해안은 조간대(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는)와 늘 물에 잠겨있는 조하대 모두에 파식대가 발달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구룡반도 동해안에 넓게 발달한 4단의 해안단구처럼 수중 파식대도 3계의 단(段)으로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해안에서 500m 지점까지 1단에 해당하는 파식대의 수심은 5~6m이며, 2단은 1단보다 급경사를 이루고 수심은 6~20m에 달한다.

▲구만리, 대보리 파식대(자료 박요셉 박사)

수중 파식대와 수면 위로 드러난 암초와 바위섬은 선박 운항에는 장애물이 되지만, 해조류와 어패류가 서식할 수 있는 천연 어초 역할을 한다. 그 결과, 구룡반도 동해안은 포항에서도 해녀가 가장 많이 활동하는 지역이 됐다.

경북 해녀 수의 70%를 차지하는 포항시의 해녀는 총 1068명으로 제주, 울산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규모다.

포항 내에서도 해녀는 구룡포읍 251명, 호미곶면 249명, 장기면 102명, 동해면 109명, 청하면 60명으로, 구룡반도 동쪽 해안의 구룡포와 호미곶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구만리와 대보리 해안의 넓은 파식대

호미곶 해안의 파식대와, 그 뒤로 발달한 해안단구를 함께 담고 있어, 융기해안의 지형 구성을 잘 보여준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은 해안단구위에 조성됐고, 상생의 손 은 파랑의 침식으로 형성된 파식대 위에 세워졌다. 넓은 파식대는 호미곶에 국립등대박물관이 들어서게 된 중요한 배경이 되기도 한다.

호미곶 등대는 전국에서 두 번째 세워진 등대로, 1907년 7월 7일 발생한 해상 사고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당시 일본 수산강습소 실습선 카이요마루(快應丸) 호가 실습생을 태우고 운항하던 중 독수리 바위가 자리한 까구리개 부근 해상에서 암초에 걸려 좌초했다.

이 사고로 일본인 실습생 3명과 기사 1명이 사망하자 일본 정부는 대한제(을 압박해 등대 설치를 요구했고, 이에 따라 호미곶에 전국에서 두 번째로 등대가 세워졌다.

현재 해맞이 광장 옆에는 자리한 국립등대박물관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위에 조성된 것이다. 땅 위에서 태어나, 땅 위에서 살다, 땅으로 돌아간다’는 인간의 삶은 결국 지형의 영향을 받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호미곶이라는 공간은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 호미곶의 해안 지형

◇향토 문화재 독수리 바위
구룡반도 북쪽 해안의 까구리개에는 파랑의 침식으로 형성된 독수리 바위가 있다. 포항시 안내판에는 구만리 일대에 넓게 발달한 바다 계단(해안단구) 입구를 지키는 상징물로 소개하고 있다.

물과 바람이 신생대 신 제3기 연일층군의 중흥동층 퇴적암을 침식하며 형성된 이 바위는 단단한 부분이 파랑의 침식을 견디고 남아있는 시스택(Sea Stack) 이다.

▲독수리 바위와 파식대 

독수리 바위가 발달한 해안은 신생대 신 제3기 연일층군(떡돌)의 중흥동층으로 구룡반도에 분포하는 암석 중 가장 젊은 암석이다. 중흥동층은 바다에서 퇴적된 퇴적암이라 층리의 구분이 뚜렷하고 반고결 상태를 보인다.

반고결이란 완전히 단단한 암석이 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독수리 바위는 입자가 굵은 자갈이 퇴적된 역암층과 모래가 퇴적된 사암층이 교대로 쌓인 호층 구조이며, 이 퇴적층은 북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독수리 바위를 이루는 중흥동 층은 역암층이 사암층보다 파랑의 침식에 강한 특성을 보인다. 이처럼 두 암층 간 차별침식으로 전체적으로 독수리 형상을 띤 시스택이 형성됐다.

여기에 염풍화 작용이 더해지면서 표면에 여러 형태의 타포니가 발달해, 독특하고 뚜렷한 독수리 바위가 완성됐다. 파랑의 차별침식과 염풍화가 결합해 독수리 바위라는 자연의 예술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아래 그림은 지각의 융기와 파랑의 침식으로 해안단구와 파식대가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침식을 견디고 남은 암석의 단단한 부분이 독수리 바위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독수리 바위가 있는 현재의 파식대도 수만 년 후 융기하면, 오늘날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구만리 해안단구와 같은 지형이 될 것이다.

▲독수리 바위의 형성 과정

자연 지형인 독수리 바위가 향토 문화재로 지정되려면 오랫동안 사람의 종교적인 행위(문화 활동)가 이어져 왔어야 한다. 독수리 바위는 한 해녀가 정월 초 풍어와 가족의 안녕을 비는 기원 행위를 수십 년간 지속해온 점이 인정돼 포항시에 의해 향토 문화재로 지정됐다. 독수리 바위는 자연 지형과 인간의 기원 행위가 함께 작용한 결과 향토 문화재가 된 것이다.

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다. 곶(串)은 육지가 바다로 돌출한 지점으로, 파랑의 에너지가 집중(되기)하기 때문에 해식애, 파식대, 시스택 같은 해안 침식지형이 잘 발달한다.

호미곶 역시 모난 돌이 정 맞듯, 오랜 세월 동해의 강한 파랑에 침식되며 파식대가 형성됐고, 이 파식대는 지각의 융기와 제4기의 기후변화를 거치며 계단 모양의 해안단구로 발전했다.

이렇게 형성된 파식대, 시스택, 해안단구는 호미곶 해안의 독특한 지형 세트를 이루며 경북 동해안이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지형들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역 주민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쳐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호미곶은 자연과 사람이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긴밀히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는 곳이이다. or 호미곶은 자연과 사람이 오랜 시간 함께 빚어낸 풍경이자, 그 연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포항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소중한 지형·지질 유산을 잘 가꾸고 보존해 후세에 물려주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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