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 1971년 7월 업무지시...450여 명의 조합원들이 뜻 이어와...사업부지 78만5천838㎡ 전체 발굴...9년 만에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 득...세부계획 수립 본격 추진 가능해져...지역 관광산업 새 날개 역할 기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꿈, 보문유원지(천군지구)로 완성되나
“신라고도는 웅대, 찬란, 정교, 활달, 진취, 여유, 우아, 유현의 감(感)이 살아날 수 있도록 재개발할 것”(박정희, 1971년 7월 16일)
보문호 일대를 국제적인 문화관광도시로 만들겠다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수립을 지시한 문건의 가장 첫 머리말이다.
당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에 IBRD 개발자금으로 2천년 전 실크로드의 출발지이자 글로벌 도시였던 서라벌의 영화로운 역사를 재현해 전 세계인과 함께 누리고자 하는 방대한 계획이었다.
신라고도 경주의 재탄생을 염원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계획이 최근 보문유원지 도시계획시설사업의 문화재현상변경 허가를 통해 완성을 향한 행보를 다시 이어가게 됐다.
지난 1일 문화재청은 보문유원지 도시계획시설사업과 관련한 천군동사지 주변 현상변경 신청 건에 대해 조건부 동의함을 경주시에 통보했다.
본지는 이와 관련해 보문유원지 사업의 역사와 의미를 톺아보고, 앞으로 지역 관광산업에 미칠 영향을 전망해보고자 한다.
◇보문유원지 도시계획시설사업의 역사
보문유원지의 개발계획은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신라고도 경주를 국제적인 문화관광도시로 만들겠다고 천명하며, 보문호 일대 1천400만㎡의 방대한 부지를 관광지로 조성한다는 내용을 담아 1971년 8월, ‘경주관광종합계발계획’을 수립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2년 2월 2일, 건설부는 보문지역 일대를 유원지로 지정하는 결정을 고시(건설부 고시 제31호)했다. 사업의 추진은 1974년 1월 세계은행 그룹의 IBRD와 2만5천불의 차관 협정을 체결하면서 구체화됐다.
당시 협정서 약정에 따라 정부는 경주 관광개발사업을 총괄하는 경주관광개발공사를 설립했고, 이는 현재 경북문화관광공사로 이어지고 있다.
50년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1천400만㎡에 이르던 방대한 계획은 이후 수차례 변경을 통해 축소되고 분리, 조정되면서 현재의 851만5천㎡의 경주보문관광단지를 만들게 됐다.
1991년 천군지구는 당초의 보문단지 계획에서 분리돼 온천지구로 지정받았다.
이후 경북도는 1996년 이 지역 ‘용도지역 및 유원지 결정 고시’(경북도 고시 제86호)를 통해 관광지 개발의 여지를 이어 갔다. 이후 천군유원지에 녹아들어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계획은 450여명의 조합원들이 이어 받았다.
2000년 11월 천군지구 일원을 관광지로 개발하는 내용의 ‘보문유원지 도시계획시설사업’의 사업시행자 지정과 함께 보문유원지 토지구획정리조합이 설립됐다.
그리고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02년 7월 26일, 경주시는 보문유원지 사업의 실시계획을 인가(경주시 고시 제50호)했다.
일사천리로 추진되던 보문유원지 조성사업은 경주지역의 여느 개발사업과 같이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라는 문턱에서 사업의 난관을 만나게 된다. 보문유원지 입구에 위치한 천군동사지(사적 제82호)가 문제였다.
2002년 8월 실시한 문화제청의 현지조사위원들은 “역사문화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판단됨”이라는 의견을 제출했고, 같은 해 10월 사적분과위원회는 현상변경 허가 신청에 대해 ‘부결’ 결정을 내리고야 말았다.
이후 수차례 재신청과 부결에도 불구하고 조합은 문화재청 의견을 반영해가며 수정안을 제출하는 등 끈질기게 사업 추진의 끈을 이어갔다.
2013년 10월, 문화재위원회는 “전체 사업구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선행할 것”과, “구체적 사업계획 수립 시 문화재청의 사전 검토를 받도록 한다”는 조건 하에 출석 위원 11명의 만장일치로 ‘조건부 가결’의 결정을 내렸다.
11년에 걸친 끈질긴 구애 끝에 얻은 결실이었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조건으로 내건 ‘전체 사업구역에 대한 발굴조사’는 문화재 발굴비용을 사업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현행법에 의해 조합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안기게 만들었다.
문화재청 조건 이행을 위해 조합은 사업부지 78만5838㎡ 전체 면적에 대해 발굴조사를 실시했고, 지난 7월 기준 전체 면적 중 97.1%를 조사 완료했다.
지장물 부지 매입이 이뤄지지 못한 2만3010㎡를 제외한 전부를 조사한 것이어서 사실상 조사 가능 면적 전부를 조사한 것이었다.
조합 관계자는 “문화재청 조건 이행을 위한 발굴조사에 투입된 자금만 60억원이 훌쩍 넘는다”며, “사업의 성공에 대한 확신과 조합원들의 믿음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행할 수 없었던 조건”이라고 회상했다.
조합은 문화재 발굴조사 9년만에 문화재청의 현상변경 허가를 얻어내며 세부계획 수립에 본격 나설 수 있게 됐다.
◇보문유원지, “경주 관광의 새로운 날개 되어줄 것”
경주보문관광단지는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관광단지로, 경주 관광산업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반세기의 긴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진 관광 트렌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골프장 사업에만 기대는 ‘노후’ 관광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지난 2020년 경북문화관광공사(이하 공사)는 경주시와 함께 ‘보문관광단지 활성화 용역’을 실시하고 “오늘의 힐링이 되는 천년 숨결의 관광지”라는 비전을 세우기도 했다.
용역결과와 함께 공사는 ‘상징형 짚라인’ 사업 추진을 비롯해 기존의 ‘휴양’ 중심의 한계를 극복하고 역동적이고 즐길거리가 있는 체험공간의 확충을 시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문호 경관을 유지하기 위한 낮은 용적률과 건폐율로 인해 보문관광단지의 사업성은 갈수록 저하돼 가는 실정이다.
그 결과 문을 연지 반세기가 가까워지도록 조성실적은 79.1%(2019년 사업비 기준)에 불과하고, 부지면적 기준의 사업 진척률 역시 92.45%(2019년 기준)로 저조한 상태다.
경주지역 관광업계 관계자는 “경북문화관광공사는 ‘개발’보다는 ‘관리’에 무게를 더할 수밖에 없기에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관이 주도하는 관광사업은 역동적인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시장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관광단지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기존 보문관광단지와 다른 새로운 구역이 등장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보문유원지 사업의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 소식은 보문단지의 보수성에 답답함을 느끼던 관광업계에 새로운 물길이 되어줄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합 측 관계자는 “보문유원지는 보문관광단지가 그동안 쌓아온 명성과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최신 콘텐츠로 무장한 호텔 등의 시설을 유치해 기존 관광지와의 시너지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미 글로벌 호텔 체인과 MOU 체결을 마치기도 했으며, 보문유원지에 최고급 관광호텔·리조트를 유치해 경주 관광산업의 질적 상승을 견인하는 새로운 날개 역할을 할 것”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현재 조성중인 보문천군지구 도시개발사업의 준공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주변 상주인구의 증가라는 호재가 이어져 보문유원지의 시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