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철인 3종 경기를 꿈꿀 만큼 건강했던 저자에게 어느 날 암이 찾아왔다. 잘못 살아서 몸이 아픈 거라는 자괴감, 소중한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질병 때문에 삶의 방향과 계획을 잃은 상실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무력감.

몇 년간 세 글자짜리의 처절한 감정에 부딪혔던 저자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질병은 죄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상처 입은 것은 질병 때문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 때문이었다. 아픈 몸이 되고서야 비로소 우리 사회가 건강 중심의 사회임을 알게 되었다"(7쪽)


저자는 세상에는 오로지 건강한 몸만을 '올바른 몸'의 기준으로,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언어는 건강 세계의 언어뿐이었다고 말한다. 그간 쓴 글에 자기 생각을 몇편의 글로 더해 책을 낸 계기도 아픈 몸을 설명할 언어가 별로 없었다는 데 있다.

저자는 질병을 둘러싼 편견과 차별,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구조,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살핀다. 그리고 질병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이 바뀌기를 갈망한다.

"질병을 곧 불행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사회가 변화하길 바란다. 몸이 아프다는 생의학적 상태가 곧장 불행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회가 질병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면, 아픈 사람들의 '불행'도 변화한다. 아파도 괜찮다고 사회가 말해줄 수 있다면 아픈 이의 고통이 줄어들게 되고, 결국 아픈 이의 몸이 변화하게 된다"(12쪽)

책에는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 관통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페미니스트로 활동한 저자는 건강과 관련해 마치 '탈(脫)코르셋'하듯 '탈(脫)건강'하자고 제안한다. 건강을 벗고 질병을 입자는 게 아니라 건강에 대한 강박을 벗어던지자는 뜻이다. 아픈 몸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질병과 아픈 몸에 대한 혐오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 필수라고 말한다.

동녘. 396쪽. 1만6천원.

▲ 임신중지 = 에리카 밀러 지음. 이민경 옮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임신중지 권리에 관한 논의도 한층 본격화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임신중지 운동사를 살펴보며 임신중지와 관련해 보편적으로 공유한 '절박한', '끔찍한', '불행한', '소름 끼치는', '후회되는' 등의 생각과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를 밝힌다. 임신중지가 '차악' 내지 '필요악'이라는 상식은 국가, 민족, 계급, 인종, 장애, 젠더를 둘러싼 정치 역학의 산물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아울러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근원은 법이 아닌 규범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법 개정이나 폐지를 통해 임신중지의 비범죄화를 이룬 국가에서도 보수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임신중지를 범죄화하는 움직임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임신중지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수치', '애통함', '모성'으로 얼룩진 임신중지 규범을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르테. 352쪽. 2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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