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진흥왕 행차 명문부터 조선시대 글자까지 존재 ... "특별함 간직한 신비한 공간…추가 조사·발굴 필요"

성류굴 명문은 고려시대에 편찬한 문헌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포항 중성리 신라비와 울진 봉평리 신라비 같은 비석, 울주 천전리 각석 명문에 버금가는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동굴 안에는 글자 수백 개가 있다고 알려졌으나, 추가 조사에 따라 더 많은 명문이 확인될 가능성이 매우 커 지속해서 학계 이목을 끌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3월 21일 심현용 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 학예연구사와 이종희 한국동굴연구소 조사연구실장이 성류굴 내부에서 발견한 명문이 4월 중순 언론을 통해 공개된 데 이어 23일에는 울진군이 판독 작업을 통해 신라 제24대 임금 진흥왕이 560년 성류굴에 행차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울진군은 이날 심 연구사와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성류굴 제8광장 높이 2.3m 지점에 있는 명문 25개를 해독한 결과를 공개했다.
그 내용은 "경진년(560, 진흥왕 21년) 6월 ○일, 잔교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행차하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 이(보좌한 이)가 50인이었다"는 것이었다.
글씨는 가로 7∼8㎝, 세로 7∼12㎝ 크기로 새겼는데, 특히 '진흥왕거'(眞興王擧)라는 명문은 크게 써 강조했다.
경북 울진 불영사 계곡 인근에 있는 석회암 동굴인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이 수많은 문자자료를 간직한 금석문 보고로 급부상했다.
성류굴 명문은 고려시대에 편찬한 문헌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포항 중성리 신라비와 울진 봉평리 신라비 같은 비석, 울주 천전리 각석 명문에 버금가는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동굴 안에는 글자 수백 개가 있다고 알려졌으나, 추가 조사에 따라 더 많은 명문이 확인될 가능성이 매우 커 지속해서 학계 이목을 끌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3월 21일 심현용 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 학예연구사와 이종희 한국동굴연구소 조사연구실장이 성류굴 내부에서 발견한 명문이 4월 중순 언론을 통해 공개된 데 이어 23일에는 울진군이 판독 작업을 통해 신라 제24대 임금 진흥왕이 560년 성류굴에 행차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울진군은 이날 심 연구사와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성류굴 제8광장 높이 2.3m 지점에 있는 명문 25개를 해독한 결과를 공개했다.
그 내용은 "경진년(560, 진흥왕 21년) 6월 ○일, 잔교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행차하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 이(보좌한 이)가 50인이었다"는 것이었다.
글씨는 가로 7∼8㎝, 세로 7∼12㎝ 크기로 새겼는데, 특히 '진흥왕거'(眞興王擧)라는 명문은 크게 써 강조했다.
과제는 어두컴컴한 동굴에 있는 수많은 문자자료에 대한 체계적 조사다.
심 연구사는 "지자체가 단독으로 조사를 하기에는 버거운 형편"이라며 "고고학회, 고대사학회, 상고사학회, 목간학회가 문화재청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조사를 추진하라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주 교수는 "성류굴은 신라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공간이었던 것 같다"며 동굴 내부를 발굴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