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와 포항시가 영국 왕립 명문학교 ‘크라이스트 칼리지 브레콘(Christ College Brecon·CCB)’과 국제학교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전격 체결하며 글로벌 교육·산업 혁신도시 전환의 분수령을 맞았다.
이번 협약은 포항시가 지난달 영국 본교를 직접 방문해 협력을 요청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성과가 가시화된 것으로, 동해안권 도시 가운데 최초로 본격적인 외국교육기관 구축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지역 교육·산업 지형을 뒤흔들 중대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지난 20일 포항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협약식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강덕 포항시장, 김일만 포항시의회 의장, 시·도의원,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DGFEZ) 관계자, CCB 학교장 및 개발이사, 주한영국대사관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국제학교 설립은 지역의 수십 년 숙원이었던 만큼 협약식에는 지역 교육계와 경제계의 기대가 동시에 쏠렸다.
◇경북 최초 정규 외국교육기관…“포항, 동해안 국제교육 허브 된다”
포항 국제학교는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설립되는 정식 외국교육기관이다.
일부 내국인의 입학이 허용되고 졸업생은 국내 정규 학력으로 인정된다. 국내에는 대구국제학교, 송도 채드윅·칼빈매니토바 등 3곳만이 같은 체계로 운영되고 있어 포항은 네 번째이자 경북 최초의 정규 외국교육기관을 확보하게 된다.
교육계에서는 “국제학교 설립 여부는 도시의 글로벌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지표”로 평가한다. 글로벌 기업이나 과학기술 연구기관의 해외 인재들은 ‘정주 여건’을 최우선 고려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포항은 포스텍·포항산업과학연구원·포항가속기연구소 등 세계급 연구 인프라를 갖추고도 국제 교육 기반이 부족해 정주 선호도가 낮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국제학교 설립은 이러한 구조적 약점을 단숨에 보완하는 ‘게임체인저’가 될 전망이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국제학교는 단순한 교육시설이 아니라 도시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전략 인프라”라며 “글로벌 기업 유치·R&D 확장·우수 인재 정착 등 포항의 미래 전략이 국제학교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사업비 1800억·부지 6만6천㎡…2029년 개교 목표로 ‘대형 프로젝트’ 시동
포항시가 마련한 설립계획에 따르면 국제학교는 부지 6만6116㎡, 연면적 3만1252㎡, 총사업비 1800억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국비·지방비·민간자본이 참여하는 복합적 재원 구조로 추진되며, 정원은 초·중·고 1500명, 기숙형 교육환경을 기반으로 한다. 실험실, 실내체육관, 수영장, 도서관, 기숙사 등 글로벌 교육요건을 충족하는 시설을 모두 갖추게 된다.
포항시는 2026년 지방재정투자심사와 타당성 조사를 시작으로 2027년 상반기 교육청 승인, 2027년 하반기 착공, 2029년 개교라는 장기 로드맵을 제시했다.
경북도와 DGFEZ는 행정 절차를 패스트트랙으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으며 속도전 의지를 강조했다.
지역 관계자는 “재정투자심사·교육환경평가 등 행정 절차가 통상 3~4년 이상 소요되지만, 포항은 ‘패스트트랙’ 방침을 명확히 한 만큼 실제 진행 속도가 전국에서도 가장 빠른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CCB, 480년 역사 영국 왕립 명문…STEM·보딩스쿨 모델 포항에 도입
CCB는 1541년 영국 왕립 칙허를 받은 480년 전통의 명문 보딩스쿨로,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중심 교육과정과 영국식 진학 시스템을 갖춘 학교다.
포항시 방문단은 지난달 14일 본교를 직접 방문해 교육과정·시설·운영 모델을 살폈고, CCB 측도 포항의 과학·산업 기반과의 교육적 시너지를 높게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CCB는 포항국제학교에 영국 본교 커리큘럼을 직접 이식하고 교사를 파견하는 등 ‘본교 직영형 운영모델’을 제시해 국제학교의 교육 품질을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국내 일부 외국교육기관이 초기에 운영 미숙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구조다.
협약식에 앞선 현장 방문에서 CCB 방문단은 포항경제자유구역 내 예정부지, 포스코 홍보관, 경북과학고를 둘러보며 “포항은 STEM 기반 교육과 결합하기에 최적의 도시”라고 평가했다.
주한영국대사관도 양국 협의 과정에서 교섭 창구를 제공하며 프로젝트의 실질적 성사를 끌어냈다.
◇이차전지·바이오·수소 산업 전환 맞물린 ‘교육 인프라 혁신’
포항 국제학교 유치는 지역 산업구조 전환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포항은 최근 철강 중심 산업에서 이차전지 소재, 바이오·의생명, 수소환원제철, AI·로봇 등 미래산업 중심의 구조 개편을 추진 중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CCB의 공학교육 역량이 지역의 미래산업과 연계된다면 산업·교육·고용이 맞물리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해진다”며 “국제학교 설립은 단순한 교육시설 신설이 아니라 경북의 산업 전략을 촉진하는 기반 투자”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도 “국제학교는 첨단산업에 필요한 글로벌 인재 확보를 뒷받침하는 핵심 여건”이라며 “포항이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산업도시로 성장하려면 교육 인프라가 반드시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구·기업·교육 삼각축 맞물리는 ‘혁신도시 모델’ 구축
포항시는 국제학교 설립을 중심축으로 포항경제자유구역 확장, 글로벌 기업 투자 유치, R&D 인력 확보, 청년 정주 여건 강화 등을 연계해 ‘글로벌 혁신도시 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다.
특히 국제학교 설립은 외국기업의 포항 진출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첨단산업 글로벌 기업들은 임직원 가족의 교육환경을 기업 투자 우선순위로 고려하기 때문이다.
포항철강관리공단·포스코·포스텍 등이 추진하는 공동 R&D·기술사업화 전략과 결합될 경우, 포항은 대한민국 동해안권 최초의 완성형 글로벌 도시로 도약할 가능성이 높다.
지역 경제계 관계자는 “포항의 미래 50년을 좌우할 핵심 투자”라며 “해외 본사들이 투자지역을 선정할 때 국제학교 유무는 절대적 판단 기준”이라고 말했다.
◇“포항의 새로운 성장엔진”…교육·산업·정주 동시 개선 효과 기대
포항시가 국제학교 설립에 강력하게 나선 배경에는 ‘교육·산업·정주’의 세 요소가 동시에 개선되는 구조적 변화가 있다.
국제학교는 지역 청소년의 글로벌 교육 접근성을 대폭 확대하며, 해외 유학 수요의 일부를 지역 내로 흡수할 수 있다.
또한 외국인 연구원 및 임직원의 포항 정착을 촉진해 지역 인구구조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포항은 이제 교육·산업·문화가 결합하는 글로벌 혁신도시의 문을 열었다”며 “국제학교 설립은 포항이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미래도시로 자리 잡는 결정적 시점”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