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구조 자체를 손보지 않고선 해결 안 돼”
지난 20일 포항제철소 야외 배수로에서 슬러지(찌꺼기) 청소 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근로자 3명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유해가스를 흡입해 쓰러졌다.
세 사람 모두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으며,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 중이지만 여전히 중태다. 불과 열흘 전인 5일에도 같은 제철소 스테인리스 압연부 소둔산세공장에서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해 하도급 근로자 1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포항제철소에서는 올해 초에도 포스코PR테크 직원이 냉연공장에서 설비 수리 중 기계에 끼어 목숨을 잃은 바 있다. 포스코이앤씨만 놓고 보더라도 올해 7월까지 4명이 숨졌다. 올해 들어 포스코그룹 계열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모두 7명에 달한다.
이처럼 대형 사고가 이어지자 포스코는 21일 이동렬 포항제철소장을 보직 해임하고, 후임을 두지 않은 채 이희근 사장이 직접 제철소장을 겸임하기로 했다.
포스코 내부에서는 “현장에서 안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만큼 사장이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포스코는 그룹 차원의 조직 정비도 함께 발표했다. 포스코홀딩스 산하 안전 전문 자회사 ‘포스코세이프티솔루션’ 유인종 대표를 회장 직속 ‘그룹안전특별진단TF’ 팀장으로 임명해 전사 안전진단과 제도 개선을 총괄하도록 했다.
유 팀장은 삼성물산 안전기술팀장과 쿠팡 안전부문 부사장을 지낸 업계에서도 인정받는 안전 전문가다.
그럼에도 지역사회와 노동계에서는 이번 대책을 여전히 “근본을 건드리지 못한 임시 처방”으로 보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하청·협력업체 중심의 고질적인 작업 구조라는 지적이 반복된다.
전국금속노조 포항지부 방성준 수석부지부장은 “하청업체는 설비 교체, 보호구 지급, 안전 인력 충원 등 가장 기본적인 안전조차 스스로 개선할 권한이 없다”며 “현장의 안전을 책임지는 구조가 아닌데 사고가 줄어들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사고 피해자 대부분이 원청인 포스코 직원이 아닌 협력업체 소속이었으며, 이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난 7월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이 대국민 사과 자리에서 “위험이 외주화되지 않도록 하도급 구조를 혁신하겠다”고 밝힌 내용도 현실과 동떨어진 대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은 현재 사고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포항제철소 현장에서 CCTV 영상, 작업기록, 공기질 측정 자료 등을 확보하고, 사고 당시 작업 지시 체계와 안전수칙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당국 역시 포스코와 합동으로 감식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희근 사장은 사과문을 통해 “중태로 쓰러진 근로자들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즉시 시행하겠다”며 “안전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는 “사고 때마다 반복되는 사과문만으로는 신뢰 회복이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포항 지역 산업계 관계자는 “포스코는 지역경제 핵심이지만, 안전 문제는 포항시민 전체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문제”라며 “하청 구조 개선, 안전투자 확대, 위험 공정 자동화 등 뼈를 깎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 사이에서도 “대기업의 안전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현장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포항제철소의 잇따른 사고는 단순한 현장 부주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간 누적된 구조적 안전 리스크를 드러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안전특별진단TF가 어떤 구조 개편안을 내놓을지, 그리고 포스코가 실질적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 지역사회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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