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폭등·수출길 막힌 ‘이중고’…전기로 전환비용·전력요금 인상까지…지역경제 전반 ‘경고등’

한국 철강산업의 맏형 포스코가 ‘이중 규제’의 거센 파고에 직면했다.

미국의 철강관세 50% 유지로 수출길이 막힌 데다 정부의 탄소배출권 규제 강화로 막대한 추가 비용이 예상되면서 포스코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9일 산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최대 60% 감축하는 상향 목표안을 산업계에 제시했다.

당초 철강업계가 제안한 48%보다 높은 수준으로, 철강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대폭 감축을 위해 막대한 설비투자와 배출권 확보가 불가피해졌다.

포스코의 경우 연간 약 1500만t의 배출권이 필요하다. 현재 톤당 1만원 수준인 배출권 가격이 향후 6만원까지 오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연간 9천억원 이상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탄소 감축 기술 상용화가 더딘 상황에서 규제만 강화되면 철강업의 경쟁력은 급속히 떨어질 수 있다”며 “배출권 가격 급등은 사실상 ‘탄소세’와 같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미국의 철강관세 50% 유지가 겹치며 포스코의 수익성은 이중으로 압박받고 있다.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2018년부터 25%의 기본 관세와 반덤핑·상계관세 등을 합쳐 최대 50% 수준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포스코의 주요 수출품인 열연강판·냉연강판 등이 직격탄을 맞으며 수출 단가 경쟁력이 약화됐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올해 말까지 대미 철강 수출액이 최대 36%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포스코는 대응책으로 내년부터 전라남도 광양제철소에 6천억원을 투입한 전기로(電氣爐) 가동에 나선다.

이는 용광로(高爐) 대비 탄소 배출을 최대 70%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설비다.

다만 전기로는 철스크랩과 저탄소 원료(HBI)를 사용하기 때문에 원료비가 철광석보다 비싸고, 전기요금 부담도 크다.

최근 산업용 전기요금이 급등하면서 국내에서 전기로 비율이 70%를 넘는 동국제강의 지난해 전기료 납부액은 3천억원에 달했다.

포스코 역시 전기로 도입 이후 연간 수천억원의 추가 전력비 부담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내년 1월부터 본격 시행되는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역시 포스코의 수출 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CBAM은 철강·알루미늄 등 탄소집약 산업 제품에 대해 탄소 배출량만큼 비용을 부과하는 ‘탄소 관세’ 제도로, 유럽 수출 제품에는 별도의 CBAM 인증서 구매가 의무화된다.

인증서 가격이 유럽 ETS(배출권 거래제)와 연동되기 때문에 배출권, 전기료, 관세가 한꺼번에 오르는 ‘트리플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

포스코는 올해 3분기 매출 17조 2610억원, 영업이익 6390억원을 기록하며 일단 선방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3.5% 감소했다.

고로 중심의 공정 구조상 단기 탄소 감축이 어렵고, 배출권 비용이 상승하면 내년 이후 수익성 방어가 더욱 힘들 전망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탄소 감축을 위한 전기로 전환과 하이렉스(HyREX) 기술 개발을 서두르고 있지만, 전기료 상승과 관세 유지, 배출권 급등이 동시에 닥치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비용 압박에 놓여 있다”며 “정부의 에너지 지원과 국제 협의가 병행되지 않으면 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탄소중립을 향한 구조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비용부담이 과도하게 쏠리면 기업의 투자 여력과 고용이 위축될 것”이라며 “포스코 같은 대표 제조업체의 경쟁력 유지는 곧 국가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정부가 탄소감축 목표 조정과 에너지 세제 지원 등 산업 현실을 반영한 보완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비용 상승이 포항·광양 지역경제에도 직격탄이 된다는 점이다.

두 제철소는 지역 고용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1차 협력사를 포함하면 약 10만명이 넘는 일자리가 포스코 생태계에 연결돼 있다.

포항시는 그간 포스코를 중심으로 도시 성장을 이끌어 왔지만, 최근 포스코의 해외 투자 확대와 탈탄소 전환 비용 증가로 지역 내 자금 순환이 더욱 둔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포항 상공계 한 관계자는 “탄소 감축비용이 급격히 늘어나면 신규 설비투자와 지역 일자리 창출 여력이 줄어든다”며 “전기로 전환과 수소환원제철 투자로 국부는 빠져나가고, 지역경제는 투자 공백을 맞게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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