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현행법상 기업이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가 8천 개가 넘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단순 행정적 의무 위반이나 착오에 따른 오류까지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는 조항이 적지 않아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경제인협회는 경제 관련 법률 속 형벌 조항을 전수 조사한 결과, 기업 활동과 연관된 형사처벌 대상 행위가 총 8천403개에 달한다고 10일 밝혔다.

조사는 21개 부처 관할 법률 중 기업 활동과의 관련성이 낮거나 형벌 조항이 없는 법률을 제외한 346개의 법률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에 따르면 기업 행위의 91.6%에 해당하는 7천698개 조항이 ‘양벌규정’ 적용 대상이다.

이는 위반자 개인뿐 아니라 법인도 동시에 처벌받을 수 있는 구조로, 위반 행위가 발생할 경우 경영진과 기업 모두가 형사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처벌 수위도 단순하지 않다. 2개 이상의 형사·행정 제재가 동시에 부과되는 ‘중복제재’가 가능한 조항이 2천850개(33.9%)에 달했다.

구체적으로는 ▲2중 제재 1천933개 ▲3중 제재 759개 ▲4중 제재 94개 ▲5중 제재 64개 등이다.

예컨대 사업자끼리 가격·생산량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는 공정거래법상 부당공동행위로 간주돼 최대 3년 징역, 최대 2억 원 벌금, 과징금, 징벌적 손해배상 등이 한꺼번에 적용될 수 있다.

한경협은 일부 처벌 조항이 위반 정도에 비해 과중하다고 지적했다. 조사된 전체 처벌 항목의 평균 형량은 징역 4.1년, 평균 벌금은 6천373만 원으로 나타났다.

실제 사례도 소개됐다. 점포 앞 테라스를 설치하거나 경미한 구조물 변경만으로도 ‘증축’으로 간주돼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화장품 판매자가 라벨이 훼손된 제품을 진열만 해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이처럼 실무 과정에서 발생하기 쉬운 단순 실수나 경미한 위반까지 형사처벌로 규정해 놓은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또 기업집단 지정 관련 신고 의무의 경우, 매년 특수관계인 현황과 주식 소유 현황 등을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소한 누락이나 착오 가능성이 항시 존재하지만, 현행법상 이러한 실수 역시 형사처벌로 연결될 수 있다. 기업들은 이를 “과도한 규제”로 호소하고 있다.

한경협은 경영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기업에 대한 중복·과잉 규제는 혁신 활동을 제약하고 리스크를 확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중복제재와 단순 행정 의무 위반까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현 제도는 기업 활동의 예측 가능성을 심각하게 저해한다”며 “정부가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만큼, 기업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경협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행정 의무 위반의 행정벌 전환 ▲중복제재 정비 ▲양벌규정 개선 등의 필요성을 건의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형사처벌 중심 규제가 강화될수록 기업의 리스크 관리 비용이 늘고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진다며, 글로벌 경쟁 환경 속에서 규제 체계 전반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저작권자 © 영남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