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경주선언’으로 다자질서 재가동…AI·인구구조 대응·콘텐츠 산업까지 포괄 새벽 협상 끝 타결…한국 외교 리더십 부각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개최되며 ‘경주선언’을 비롯해 △APEC 인공지능(AI) 이니셔티브 △APEC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공동 프레임워크 등 3건의 성과 문서를 채택했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와 미·중 갈등 심화 속에서 정상선언문 도출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컸지만, 회원국들은 새벽 7시 30분까지 이어진 마라톤 협상을 거쳐 무역 및 투자 관련 문구까지 포함하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적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다자 협력의 복원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정상들은 ‘연결(Connect)·혁신(Innovate)·번영(Prosper)’을 틀로 △자유무역 질서 강화 △디지털·혁신 협력 △포용 성장 및 인적자원 개발 확대 등 핵심 경제 의제를 포괄했다.
특히 인공지능과 인구 변화를 APEC 차원의 공동 도전 과제로 명시하고 협력 방향을 제시하면서 향후 아태지역 정책 연계의 기준점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경주선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문화창조산업이 APEC 공식 정상문서에 처음 명시됐다는 점이다.
문화·콘텐츠 산업을 아시아·태평양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인정하고 공동 육성을 선언함에 따라, K-콘텐츠가 역내 경제 협력 의제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분석이다. 문화 산업을 핵심 경제 전략으로 추진하는 한국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AI 분야에서도 굵직한 성과가 나왔다. ‘APEC AI 이니셔티브’는 △AI 혁신 통한 성장 촉진 △역량 강화 및 혜택 공유 △민간 주도의 AI 인프라 투자 촉진 등을 포함했다.
미국과 중국이 모두 참여한 최초의 AI 공동비전 문서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AI 기본사회’ 목표와 ‘아시아·태평양 AI 센터 설립’ 구상이 반영되며 한국 AI 전략의 국제적 확장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인구구조 변화 대응 프레임워크 역시 APEC 최초의 포괄적 인구 협력 문서다. 저출생·고령화라는 공통 과제에 대해 △사회 시스템 회복력 강화 △기술 기반 돌봄 시스템 혁신 △미래세대 역량 강화 등 5대 협력 방향을 제시했다. 한국은 내년 ‘APEC 인구정책포럼’을 개최하며 정책 주도권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한국 외교의 중재·조정 능력도 재조명됐다. 대통령실은 “의장국으로서 1년간 14차례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마지막까지 밤샘 협상을 주도해 미·중·일·러 등 주요국 간 입장 차이를 조율했다”며 “APEC이 포용적·지속가능 성장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경제 블록의 균열 위험 속에서 다자 협력의 복원과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 강화에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메시지다.
한편 같은 기간 열린 APEC 외교·통상 장관회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중요성을 명시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의 WTO 부정기류가 지속돼온 가운데 다자무역체제의 의미를 재확인한 것으로, 경주선언문에는 빠졌던 ‘WTO 규범 준수’ 관련 문구가 장관 성명에 담겼다.
이는 글로벌 통상질서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확보를 위한 아태 국가들의 공감대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의가 “AI·인구·문화산업 등 미래 아젠다에서 한국이 선도적 목소리를 낸 자리”라고 분석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 강화 흐름 속에서 한국이 다자주의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하고, 미래 성장 영역에서 경쟁력을 확장할 기회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경주가 세계 외교 무대 중심에 서며 국가 브랜드 강화에도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