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바다를 건너는 인간의 실존

포항 출신 허화평 전 국회의원 등 허씨 삼형제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대환 작가의 장편소설 《붉은 고래》의 북 콘서트가 지난 24일 포항 포은중앙도서관 어울마루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과 이대환 작가가 함께한 특별대담 '분단의 격랑과 청춘의 초상'이 진행되었으며, 포항 시민과 문학인들이 참석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소설 《붉은 고래》(아시아)는 광복 80년, 분단 80년을 맞아 포항 출신 삼형제가 겪은 청춘의 사상 여정을 760쪽의 대서사로 담아낸 작품이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냉전의 소용돌이를 살아낸 세 형제의 삶을 통해 분단의 역사 속에서 흔들리는 신념과 인간의 양심을 기록했다. 140개의 짧은 소제목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개인의 이야기이자 한 세대의 초상이며, 에세이 같은 서정적 문체로 이념의 격랑을 건넌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2004년 초간된 《붉은 고래》는 2023년 문학뉴스 재연재를 거쳐 20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새롭게 출간됐다. 이번 개정판은 초판보다 인물의 내면 묘사가 한층 깊어졌고, 분단이라는 정치적 현실을 넘어 인간 존재의 분열과 화해를 탐구하는 철학적 성찰이 더해졌다.

이대환 작가는 “분단의 아픔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은 삼형제의 삶은 오늘날 청년들에게 자기 성찰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며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내면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현실”이라고 말했다. 허화평 이사장은 “이 소설은 개인의 가족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억이자 교훈이며, 시대가 흘러도 잊어서는 안 될 인간의 윤리를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북 콘서트에서는 작품의 집필 과정과 삼형제의 실제 경험담, 그리고 작가가 20년에 걸쳐 탐구해온 ‘분단과 인간의 화해’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소개됐다. 관객들은 질의응답 시간에서 “분단은 끝난 역사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분열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

이대환의 《붉은 고래》는 분단을 국가의 경계로 보지 않고 인간 내면의 분열로 해석한다. 작가가 말하는 ‘분단’은 곧 ‘자기 안의 남과 북’이며, 이념의 갈등을 넘어 존재의 균열을 응시하는 문학적 시선이다. 스피노자의 일원론처럼 모든 존재가 하나의 실체에서 비롯된다는 통합의 철학이 작품의 밑바탕에 흐르고, 인간이 서로 다른 사상을 넘어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작품 속 인물들은 정치적 주체가 아니라 윤리적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의 고통은 체제의 폭력에서 비롯되지만, 구원의 가능성은 ‘기억과 양심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처럼, 이대환의 문학은 일상의 어둠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묻는다. 또한 하이데거의 존재론처럼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이며, 잊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간으로 남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붉은 고래’라는 상징은 비극의 짐승이 아니라 생명을 품는 구원의 존재다. 그것은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처럼 타자의 얼굴 앞에서 느끼는 윤리적 책임의 표상이며, 분단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연대와 회복을 의미한다.

결국 《붉은 고래》는 통일의 문학이 아니라 존재의 화해를 향한 문학이다. 20년 만에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붉은 고래는 여전히 우리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인간성의 상징이며, 분단은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상처임을 일깨운다. 그 상처를 기억하고 직면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의 존재로 돌아갈 수 있다.

'붉은 고래' 북 콘서트는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며, 미래의 화해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바다 속에서 어떤 붉은 고래를 품고 사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서 잔잔히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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