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리쇼어링 압박 속 물밑 협상 가동…APEC 앞두고 ‘트럼프식 통상외교’ 재가동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플로리다 팜비치 골프장에서 한국의 4대 그룹 총수들과 8시간 가까이 함께한 것은 단순한 친교 행사가 아니라 관세·투자 협상을 앞둔 고도의 물밑 접촉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수입품 50% 고율 관세 방침이 한미 통상 현안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대 카드가 사실상 맞교환 성격으로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1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오전 9시 8분 마러라고 별장을 출발해 자신이 소유한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클럽’으로 향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등 한국 주요 그룹 총수들이 모두 참석했다.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과 대만 TSMC 관계자도 함께 자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4시 50분 골프장을 떠날 때까지 약 8시간 동안 머물렀다.

재계에선 이번 회동을 두고 “트럼프식 비공식 경제외교의 서막”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정상 대신 민간 기업인을 직접 접촉한 것은, 관세 정책의 중심축이 ‘정치’가 아닌 ‘경제 실익’에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특히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의 공급망 재편을 주도하는 한국 기업이 미국의 ‘리쇼어링 전략’에서 핵심 협상 파트너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취임 직후부터 “중국산을 포함한 외국 제품에는 최대 50%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제조업 회귀를 강조해 왔다.

이에 따라 한국산 전기차·철강·배터리 소재에 대한 관세 부담은 연간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 현대차그룹 등은 이미 미국 현지 공장을 통해 세액공제를 받는 전략을 세웠지만, 관세율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투자 조건이 협상 테이블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골프 회동은 바로 이 ‘조건부 완화 시그널’을 전달하는 자리였다는 게 재계의 공통된 해석이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연출을 즐기는 인물이지만, 외교 대신 경제를 매개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이번 라운딩은 ‘얼마나 더 미국에 투자할 수 있느냐’에 대한 압박과 동시에 기회 제시의 성격을 띤다”고 분석했다.

한국 정부의 통상라인도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이다. 산업부와 외교부 실무진은 워싱턴 D.C.에서 막판 협상을 진행 중이며, 이번 골프 회동 결과가 한미 정상회담(이달 말 APEC 계기)에서 관세 완화·투자확대 MOU 형태로 구체화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미국 내 고용 창출 수치’와 한국 기업의 ‘현지 생산·배터리소재 자립계획’이 맞물리면, 향후 한미 경제협력의 구조가 단순 무역에서 ‘공급망 동맹’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손정의 회장이 사실상 이번 회동을 주선한 점도 주목된다. 손 회장은 이날 한국 총수단과 같은 호텔에 머물며 로비에서 목격됐다.

이는 반도체·AI 투자와 관련된 삼성-소프트뱅크 간 AI 칩 협력, SK하이닉스의 ARM 투자 등 구체적 현안과 연결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에도 “내가 좋아하는 건 골프와 거래(Deal)”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골프 외교’는 단순한 여흥이 아니라, 트럼프식 통상협상의 전초전이자 한국 대기업의 ‘투자 확대 vs 관세 완화’ 빅딜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가 직접 움직였다는 건 이미 협상의 중심이 정치가 아니라 경제로 이동했다는 의미”라며 “한국 기업들의 투자 규모에 따라 관세 결정이 좌우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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