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통 지켜온 구룡포의 4대 맛집…10월 추석 연휴 여행객 필수 코스 부상
포항은 철강산업의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속살에는 세월을 견뎌낸 진짜 맛의 보물창고가 숨어 있다.
그중 구룡포는 바다와 어업으로 성장한 항구 마을이자, 오랜 세월을 버텨온 ‘노포(老鋪)’ 맛집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당이 아니라 지역의 기억과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생활문화의 현장이기도 하다.
최근 ‘노포 탐방’이 하나의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구룡포의 오래된 맛집들은 전국에서 온 여행객들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젊은 세대는 부모·조부모 세대의 맛을 체험하며 추억을 공유하고, 지역민은 한결같은 손맛에서 위안을 얻는다.
본지는 50년 이상 전통을 이어오며 여전히 현지인의 발걸음을 붙잡는 구룡포 4대 노포 맛집을 직접 찾아가 그 역사를 살펴봤다.
10월 추석 연휴를 맞아 여행을 계획했다면 꼭 들러 볼 필수 코스가 구룡포 노포 맛집이다.
◇90년 세월, 구룡포 최초 중화요리집 ‘하남성반점’
하남성반점은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중심에 자리한 전통 중화요리집이다. 1930년대 문을 연 이곳은 구룡포 최초의 중화요리 전문점으로, 올해로 무려 90년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조태래 사장(72)은 15세 소년 시절 ‘동화루’ 주방에서 보조 일을 시작해 60년 넘게 손맛을 지켜왔다. 지금은 아들 조정일 씨와 함께 부자가 주방을 지키며, 전통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 메뉴는 짜장면, 짬뽕, 탕수육이다.
짜장면은 면발이 적당히 굵고 탱탱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짬뽕은 구룡포 앞바다에서 잡은 신선한 해산물로 국물을 내 깊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또 탕수육은 바삭한 튀김옷과 새콤달콤 소스가 어우러져 단골들의 사랑을 받는다.
하남성반점이 위치한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는 1883년 조일통상장정 체결 이후 일본인들이 대거 정착하며 형성된 거리다.
현재도 40여 채의 일본식 목조건물이 남아 있으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전통 요리를 맛보며 지역 역사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점에서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얼큰한 바다 해장국, ‘까꾸네 모리국수’
구룡포 어부들의 삶을 대표하는 음식이 바로 모리국수다. 생선과 해산물, 콩나물, 마늘 양념장을 넣고 끓여낸 얼큰한 국수는 과거 뱃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부들의 허기를 달래던 향토 음식이었다.
‘까꾸네 모리국수’는 이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다.
주인 이옥순 할머니(81)의 손맛이 담긴 모리국수는 푸짐한 해산물과 깊고 시원한 국물 맛으로 유명하다. 간판 하나 없는 가게지만, 입소문만으로 전국에 알려졌다.
상호명 ‘까꾸네’는 손녀의 어린 시절 별명에서 유래했다. 가족과 세월의 이야기가 담긴 이곳에서 모리국수 한 그릇은 단순한 해장국이 아니라 구룡포 사람들의 삶을 체험하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해풍에 말린 국수의 자존심, ‘제일국수공장’
1971년 창업한 제일국수공장은 구룡포의 마지막 국수공장이자,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전통 국수 생산지다.
이곳은 밀가루, 물, 소금만을 사용해 바닷바람과 햇볕으로 말리는 ‘해풍 건조’ 방식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해풍국수는 쫄깃하고 탱탱하며, 쉽게 퍼지지 않아 국수 애호가들 사이에서 명품으로 꼽힌다.
이순화 할머니(86)는 날씨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반죽의 수분과 염도를 조절하는 노하우로 국수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해왔다. 현재는 아들 하동대 씨와 함께 공장을 운영하며, 생산된 해풍국수는 전국 각지로 판매된다.
구룡포 여행자들은 제일국수공장의 해풍국수를 기념품으로 챙기곤 한다. “구룡포 국수는 바람과 시간이 만든 예술”이라는 평가가 붙은 것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70년 전통, 겨울의 명물 ‘철규분식’
1950년대 후반 문을 연 철규분식은 70년 가까이 지역민의 사랑을 받아온 분식집이다. 대표 메뉴는 찐빵, 단팥죽, 멸치국수다.
특히 겨울철 단팥죽에 찐빵을 찍어 먹는 독특한 방식은 이 집만의 전통으로, 구룡포 사람들의 세대를 잇는 추억이기도 하다.
현재는 2대째 박상연 사장(83)이 운영하고 있으며, 방송 프로그램 <백종원의 3대천왕>에 소개된 후 외지인들에게도 잘 알려졌다.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이 집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철규분식은 단순한 분식집이 아니라 구룡포 공동체의 삶과 계절, 가족의 기억을 품은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노포, 지역 공동체의 역사와 자산
구룡포의 노포 네 곳은 단순한 맛집이 아니다. 이곳은 세대를 거쳐 전해진 삶의 방식과 지역 정체성을 담고 있는 문화적 자산이다.
산업화와 세대 교체 속에서도 한결같은 맛을 지켜온 장인들의 헌신, 그리고 가업을 이어가는 가족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50년 이상 한자리를 지켜온 노포가 점차 사라지는 오늘날, 구룡포의 노포는 더욱 귀중한 존재다. 관광객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을, 지역민들에게는 삶의 위안과 추억을 제공한다.
◇여행자를 위한 추천 코스
여행자를 위한 코스는 일본인 가옥거리 탐방→하남성반점에서 점심→구룡포시장 산책→까꾸네 모리국수로 간식→제일국수공장에서 기념품→철규분식에서 단팥죽으로 마무리를 추천한다.
포항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40분이 소요되는 구룡포는 겨울에는 단팥죽과 찐빵, 여름에는 시원한 짬뽕과 해풍국수가 제격이다.
포항 구룡포의 노포 네 곳은 ‘세월이 맛을 만든다’는 말의 살아 있는 증거다. 짜장면과 짬뽕, 얼큰한 모리국수, 해풍국수, 단팥죽과 찐빵까지. 한 그릇의 음식에는 구룡포 사람들의 땀과 애환, 그리고 따뜻한 정이 담겨 있다.
포항을 찾는다면 관광지 투어에 그치지 말고, 구룡포의 노포에서 세월이 빚은 맛을 직접 경험해보자. 그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이 지역이 걸어온 시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음미하는 특별한 여행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