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인 용도 변경에 따른 개발이익환수법 적용 대상 아냐...제도 무력화… 공익적 취지, 일부 기업 특혜 시비 가능성 높아
국내 1호 관광단지인 경주보문관광단지가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대대적인 조성계획(용도) 변경에 나서며 기존 입주기업의 노후 시설 및 유휴 시설에 대한 투자를 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토지이용계획 변경을 통해 기존 입주기업이 얻을 지가상승 등의 개발이익에 대한 환수 또는 공공기여 방안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모양새다.
경북문화관광공사(이하 공사)는 용도변경 신청 기업에 대한 사업계획 수용 심사 기준에 ‘공공기여 방안’을 평가 항목에 삽입해 공공기여 계획을 제시토록 했지만 구체적인 평가 기준과 요구 내용을 살펴보면 막연한 표현에 그쳐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심사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통상의 개발사업이나 토지이용계획 변경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토지 가치 상승분(개발이익)을 정부 또는 지자체가 일정부분 환수하는 개발이익환수제도를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노후 관광단지를 다시 살리겠다는 공익적인 취지가 일부 기업에 특혜를 제공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경주보문관광단지는 1974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로부터 지원받은 1285만 달러의 차관을 통해 개발된 것인 만큼, 당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한국 정부의 역량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할 만한 곳이다.
그만큼 보문관광단지의 개발과 운영은 그 어느 개발사업보다 공익적 가치 실현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최근 보문관광단지를 관리‧운영하는 공사는 ‘POST APEC’을 준비한다는 취지로 대규모 민간투자 유치에 나섰다.
공사의 이번 투자유치는 올해 4월 관광진흥법 개정으로 관광단지 내 설치할 수 있는 시설 용도에 ‘복합시설지구’가 추가된 것을 계기로 실시됐다.
‘복합시설지구’에 “숙박시설지구, 상가시설지구, 관광 휴양·오락시설지구 또는 기타시설지구에 설치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어, 사실상 도로나 주차장 등과 같은 공공편익시설을 제외한 모든 시설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다.
기존 관광단지 입주 기업들은 기존의 용도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시설을 설치‧운영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용도 변경 승인 시 토지 가치와 사업성이 큰 폭으로 오르게 된다.
이 경우와 같이 토지이용계획 변경을 통한 개발이 이뤄질 경우 국내 법령은 용도 변경 후 토지 가치 상승분에 대해 개발이익환수제도에 근거한 환수를 명령할 수 있고, 환수된 자금은 개발로 인한 피해지역 보상 및 낙후지역 인프라 투자 등에 활용된다.
이는 행정 판단이자 공공의 권한인 토지 용도 변경을 통해 특정 기업이 얻게 되는 불로소득을 환수해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함이다.
이같은 취지에 의거해 이번 보문관광단지의 시설지구 용도 변경 역시 공공기여분에 대한 엄격한 심사와 세밀한 약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공사는 투자유치 기업의 투자 규모를 홍보하는데만 열을 올릴 뿐, 정작 기업의 공공기여 규모에 대해서는 ‘비밀 유지 사항’이라며 감추기에 급급하다.
이에 대해 공사 측 담당자는 “경주 보문관광단지는 기 조성된 관광단지로, 개발이익환수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용도 변경을 통한 투자유치가 특혜 제공 시비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심사 항목에 ‘공공기여방안’ 항목을 마련하고 30점의 높은 배점을 배정해 철저히 심사했다”고 말했다.
공사 측이 설명하는 심사항목은 시설지구 용도 변경을 위한 입주 기업의 사업계획에 대한 수용 여부 심사 기준으로, ‘개발계획’, ‘재무계획’, ‘공공기여방안’이 각각 30점씩 배점됐고, ‘관리운영계획’에 10점을 배정하는 한편, ‘복합시설지구 도입’에 가산점 5점을 배점했다.
얼핏 보면 공공기여 방안에 상당한 배점을 두고 심사했다고 볼 수 있으나 세부 항목을 들여다보면 ‘관광단지 활성화 및 공헌 계획’, ‘이해관계자 및 지역 친화 계획’ 등 막연한 평가 항목이 설정돼있다.
작성요령을 살펴보면 △보문관광단지 활성화 및 발전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 △보문관광단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유‧무형의 구체적 공헌 방안 및 실행계획, △일자리 창출 및 지역 친화 계획 등을 제시하도록 돼있다.
결국 막연한 지표들로 구성돼있어 공공기여의 규모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향후 제시한 방안의 실현 여부를 엄격히 따지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기업이 제시한 공공기여방안이 용도변경으로 인한 토지 가치 상승분에 상응하는지 여부 역시 판단하기 힘들어 심사위원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대해 지역개발 전문가는 “관광진흥법 상 관련 규정이 없다고 해도 공공기여 방안에 대한 심사기준을 통상적인 개발이익환수제도에 준하는 객관적 기준을 마련해 공공기여 요구액을 산정하고 충족도에 따른 배점을 두면 될 일”이라며, “공사는 이번 투자유치를 진행하며 행정적 정무적 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그 비용 역시 공공자원이라는 점에서 상생을 위한 공익적 기준 마련에 더 힘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사 측 담당자는 “이번 투자유치 및 시설지구 용도 변경은 보문관광단지의 새로운 50년을 준비하기 위해 새로운 시설과 관광컨텐츠를 마련하기 위한 것인 만큼, 규제보다는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유치를 끌어내 보문관광단지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며, “이는 결국 지역 경제 활성화와 APEC 정상회의 개최지로서의 경주의 위상을 더욱 이어가게 하는 것”이라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