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이 세부 조건을 두고 장기 교착에 빠진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의 요구가 과도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제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협상에서 불리한 고리를 끊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공개된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통화 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3,500억달러를 전액 현금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같은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타임지 인터뷰에서도 “그 조건을 수용했다면 탄핵당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일련의 강경 발언은 미국이 현금 투자 비중 확대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난항에 빠진 가운데 나온 것이다.

미국은 지난 7월 한국과 상호 15% 관세,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합의를 이끌어냈으나 이후 현금 직접 투자 비율을 높일 것을 추가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환율 급등 리스크를 우려해 통화 스와프를 제안했지만, 양국이 접점을 찾지 못하며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이 탄핵이나 IMF 구제금융 같은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적 키워드를 언급한 것은 협상의 절박성과 동시에 국민 여론을 통한 압박 효과를 겨냥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관세 문제와 맞물려 안보 협상도 병행되는 점 역시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전날 페이스북에서 “외국 군대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하다는 굴종적 사고가 문제”라며 ‘스마트 강군’을 통한 자주 국방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미국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와 한국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는 가운데 나온 메시지다.

한국은 동맹 현대화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대북 억지력 약화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자주 국방 발언은 협상에서 수세적 태도를 벗어나겠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대북 정책과 관련해선 ‘3단계 비핵화론’이 핵심 화두로 부각됐다. 이 대통령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핵 동결은 실행 가능하고 현실적인 첫 단계”라며 북한이 핵무기 생산을 멈춘다면 한국은 일부 보상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타임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중단-축소-비핵화’ 구상의 연장선상이다. 그는 미국이 ‘피스메이커’로 나서면 한국은 ‘페이스메이커’로서 북·미 대화의 동력을 살리겠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문제는 북한의 반응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이 대통령의 3단계론을 “전임자들의 숙제를 옮겨 베낀 복사판”이라고 비난하며 ‘비핵화 포기’를 북·미 대화 조건으로 내걸었다.

자칫 북·미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한국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결국 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과제는 복합적이다.

관세 협상에서는 과도한 현금 투자 요구를 완화하면서도 한·미 경제 협력 틀을 유지해야 하고, 안보 협상에서는 동맹 현대화 속에서 한국의 방위 태세를 훼손하지 않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동시에 대북 협상에선 비핵화 원칙을 고수하되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낼 새로운 묘수를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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