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칠판 납품 비리’ 사태로 가격 크게 낮아졌는데도…환경개선비 외면한 탁상행정으로 예산 낭비…전자칠판 예산, 여전히 ‘혈세 블랙홀’…취재 시작되자 뒤늦게 수정 공문 발송
경북교육청이 대표적 혈세 낭비 사례로 지적돼온 전자칠판 사업에 대해 뒤늦게 관리 강화에 나섰지만,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현재까지 투입된 예산만 90억원이 넘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싼 제품을 사도 설치하지 못하는 구조”라는 푸념이 끊이지 않는다.
전자칠판 구매는 학교별 자체 집행 방식으로 진행돼왔으며, 대당 600만원의 예산이 편성돼있다. 시장에는 이미 330만원대 저가형 제품이 출시돼 있음에도 여전히 500만~600만원대 고가 제품이 학교에 설치되면서 혈세 낭비가 이뤄지고 있다.
전자칠판은 올해 3월부터 300만원대 제품이 등장했고, 6월 이후에는 330만~400만원대의 신형 제품이 다수 등록됐다. 그러나 본지가 조사한 결과, 여전히 성능에 차이가 없는 500만원대 제품 판매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인천에서 불거진 ‘전자칠판 납품 비리’ 사건 이후, 시장 가격은 크게 하락했다. 전국적으로 가격이 낮아지는 가운데서도 경북교육청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은 채 ‘학교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했다.
실제로 50억원 규모의 매출로 절반 이상 과점하고 있는 특정 업체 A사가 경북교육청 각 학교에 공급한 890대 전자칠판 중 400만원 이하 제품은 고작 21대에 불과했다. 이 중에도 상당수는 전자칠판이 아닌 전자교탁이었다.
즉 최대 판매 업체인 A사마저 300만원대 제품이 나온 지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400~500만원대 제품으로 경북교육청 내 전자칠판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질적인 구매 구조 자체가 예산 낭비를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같은 시가 전체 전자칠판 판매 대수는 1885대인 반면 300만원대 제품은 449대 수준이다. 이중 일부는 전자교탁 또 일부는 대량 구매로 인한 낙찰률 적용이라는 점에서 실제 판매는 300대도 채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상황이 펼쳐진 이유는 경북교육청이 지난 5월 보낸 공문 속 ‘독소조항’에 있다. 교육청은 “전자칠판 구매로 잔액이 발생한 경우 ‘전자칠판의 추가 구매만 가능’하고 그러지 않을 경우 사업비를 반납하라”는 조건을 학교에 내려보냈다.
전자칠판은 단순히 제품만 사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기존 칠판에 맞춰 전자칠판을 고정하는 틀을 제작하기 위해 약 200만원의 환경개선비가 추가로 필요하다. 그러나 이 비용에 대한 언급은 공문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결국 학교들은 싼 제품을 선택해 예산을 아끼더라도, 남은 돈을 환경개선비로 돌릴 수 없어 “차라리 비싼 전자칠판을 사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실제로 8월 말 현재까지도 500만원대 제품들이 여전히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포항지역 한 학교 관계자는 “350만원대 전자칠판이 있다는 걸 알지만, 남은 돈을 환경개선비로 쓸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그럴 바에는 비싼 걸 사는 게 결국 속 편하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본지가 질의하자, 경북교육청은 “사실관계가 다소 잘못 알려졌다”며 이후 “잔여 예산으로 전자칠판 추가 구매뿐 아니라 설치를 위한 환경개선비도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수정 공문을 지난달 26일 각급 학교에 내려보냈다.
이처럼 학교 현장에서는 전자칠판 구매 문제로 수개월 간 속을 태웠으며, 본지 취재가 시작되자 뒤늦게나마 해결의 길이 열린 셈이다.
그럼에도 교육행정 전문가들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애초에 경북교육청이 명확하게 전자칠판 예산 공문에 환경개선비를 반영했더라면, 애당초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미 90억원 가까운 세금이 투입된 상황에서, “뒤늦게 공문 하나로 땜질하는 행정”이 과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경북도의회 의원 B씨는 “전자칠판 사업은 ‘예산 절감과 교육환경 개선’이라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예산 낭비의 상징이 되고 있다”며 “교육청이 진정으로 혈세 낭비를 막을 의지가 있는지 스스로 증명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