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이번 행보는 취임 후 불과 두 달 만에 이뤄지는 연속 정상외교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정치권에서는 “한일관계 복원으로 한미일 협력 강화에 물꼬를 트고, 이를 지렛대로 삼아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에 임하겠다는 계산”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23일 도쿄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은 예정 시간보다 30분 이상 길어진 113분간 진행됐다. 회담 직후 양국은 공동 언론발표에 이어 17년 만에 별도의 공동발표문까지 채택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을 “가까운 친구 같은 총리와의 최적의 파트너”로 규정하며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이시바 총리 역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화답했다.
이번 회담의 특징은 과거사 갈등을 최소화했다는 점이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등 그간 양국을 옥죄어 온 민감한 현안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AI, 저출산·고령화 대응, 워킹홀리데이 확대 등 미래 협력 어젠다에 집중했다. 이 대통령은 “너무 가깝다 보니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필요한 것은 서로 얻을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게 바람직한 이웃관계”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찾은 것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처음이다. 지난 6월 G7 정상회의에서 이뤄진 첫 회담 이후 불과 67일 만의 재회담이라는 점에서도 속도감이 두드러진다.
대통령실은 “이번 순방은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기치로 내세운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 국면에서 일본과의 공조를 보여줌으로써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에서 협상력을 높이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최근 대미 통상 협상 타결 과정에서 일본 측과 사전 조율을 거쳤음을 공개하며 한미일 공조의 외교적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부각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과의 회담에서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흔들림 없는 한일, 한미일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25일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미일 공조의 ‘선순환 구조’를 어젠다로 제시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은 “한일관계 발전이 한미일 협조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계속 만들어 나가자고 합의했다”고 전했다.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지난달 타결된 한미 관세협상 세부 협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문제 등 안보·경제 핵심 현안이 집중 논의될 전망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로 비관세 장벽을 요구할 수 있는 만큼, 이 대통령은 일본과의 협력을 외교적 지렛대로 삼아 미국 측의 압박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이다.
여권은 “실리와 실용을 앞세운 국익 중심 외교가 본격화됐다”며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반면 야권은 “과거사 문제를 지나치게 외면했다”며 비판 가능성을 남겼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일관계 정상화가 한미정상회담에서 협상력을 높이는 동시에, 향후 5~10년간 외교적 안정성을 담보할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이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외에도 한미 재계 인사들과의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미 싱크탱크 CSIS 초청 연설 등 일정을 소화한다. 순방 마지막 날인 26일에는 필라델피아로 이동해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리조선소를 방문, 방산·조선 협력 확대 메시지를 낼 예정이다.
강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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