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공제 구조·사회적 합의 등 선결 과제 산적…“현장 적용은 시기상조” 지적도

정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연내 근로기준법에 명시하고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같은 업무를 수행하면 고용 형태·성별과 관계없이 유사한 처우를 보장받게 하겠다는 취지다.

17일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사용자는 동일가치노동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항을 근로기준법에 추가할 방침이다. 그간 남녀고용평등법에만 규정돼 사실상 성차별 방지 원칙에 머물렀던 동일임금 원칙을 근로기준법에 직접 명문화하겠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379만6천원, 비정규직은 204만8천원으로 정규직의 절반(53.9%) 수준에 그쳤다.

임금 격차는 5년 전(143만6천원)보다 더 벌어진 174만8천원에 달했다. 정부는 이번 개정을 통해 정규직·비정규직 간 차별 철폐를 제도화한다는 목표다.

이재명 대통령도 후보 시절부터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 “비정규직은 오히려 추가 보상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원칙 도입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문제는 한국의 임금체계가 여전히 연공제 중심이라는 점이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구조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사실상 작동하기 어렵다. 정부도 대안으로 직무급제를 제시했다.

직무급제는 직무의 난이도·책임·작업 조건 등에 따라 임금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영국·독일 등 유럽 주요국들이 동일임금 원칙 실현을 위해 채택했다.

정부는 또 ‘임금분포제’를 통해 직무·직위·근속별 임금 수준을 공개해 객관적 기준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기업별 노조 중심의 한국 노동시장 특성상 업종별 기준 마련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기업 담장을 넘어서는 ‘초기업 교섭’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합의도 관건이다. 정규직 일각에서는 “어렵게 들어온 정규직이 역차별 받는다”는 불만이 나오고, 경영계는 “같은 노동이라도 개인 능력 차이가 있는데 획일적 임금은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계 역시 환영 기조 속에서도 “제도적 장치 없이는 선언적 구호에 불과하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법제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내년 시행은 무리라는 데 의견을 모은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교수는 “법에 명시한다고 곧장 현장에 적용되기는 어렵다”며 “임금분포제, 직무급제, 초기업 교섭 등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교수도 “노사 간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모델부터 다르다”며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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