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8월 1일부터 부과하려던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한 데 이어, 이미 부과 중이던 자동차 관세도 15%로 인하키로 하면서 당장의 통상 위기를 넘겼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번 타결은 '프레임워크 합의' 성격이 강해 실질적인 위험이 제거된 것은 아니라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특히 디지털·농축산물 등 비관세 분야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향후 한미 통상관계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번 합의는 양국이 공식 합의문조차 발표하지 않은 ‘선언적 협상’에 가깝다.
실제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 SNS 플랫폼인 소셜트루스를 통해 “한국이 자동차, 트럭, 농산물 등 미국산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사실상 전면적 시장 개방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발표했다.
백악관 역시 “한국이 자동차와 쌀 등 미국산에 대한 역사적 개방을 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쌀을 포함한 농산물은 논의조차 없었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수석, 구윤철 부총리,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은 일제히 “농업 레드라인은 지켜졌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미국 측 주장은 자국 유권자들을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거 일본과의 무역 합의 당시에는 구체적인 쌀 수입 수치를 언급했으나, 이번에는 '개방'이라는 모호한 표현만을 사용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문제는 이러한 모호한 합의 구조가 미국 측에 추가 요구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데 있다.
통상전문가들은 “미국이 본격적인 세부 협상 단계에서 한국의 농축산물 시장과 디지털 규제 정책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것”으로 내다본다.
실제로 미국이 강하게 반발해 온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 ▲구글 정밀지도 반출 허용 ▲데이터 현지화 정책 등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특히 플랫폼 규제와 데이터 주권은 디지털 주권과 직결되는 문제로, 한미 통상마찰의 최대 잠재 변수로 꼽힌다.
한 통상 소식통은 “여당 일각에서 미국이 더는 온라인 플랫폼법을 문제 삼지 않을 것처럼 해석할 경우, 미국 측이 오히려 더 강한 반발로 돌아설 수 있다”며 “합의 이후 오히려 더 치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런 점을 경계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는 워싱턴DC 현지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이번 합의는 시작일 뿐이며, 디테일 협상에서 ‘악마’가 나올 수 있다”며 “앞으로 구체적인 전략과 정무적 감각을 총동원해 협상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협상의 실무를 주도한 여한구 본부장도 “이번 고비는 넘겼지만 앞으로도 언제든지 관세든 비관세든 미국의 압박이 재개될 수 있다”며 “국내 법제도적 대응체계도 함께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한미 협상은 단기적인 무역 분쟁의 파국은 피했지만, '비관세 지뢰밭'은 여전히 건재한 상태다. 트럼프식 ‘선언형 합의’ 뒤에 숨은 압박전략에 맞서, 한국 정부의 중장기적 대응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병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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