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아파트 주민들, 평면화 공사에 따른 유림숲 훼손 반대...낙동강유역환경청, 도로개설 위한 하천구역 침범 불가 입장...市 ‘이러지도 저러지도’… 하천·숲 훼손 최소화할 개선안 必

▲ 19일 오전, 집중호우로 침수된 경주시 유림지하차도에 물이 가득 찬 가운데, 오리 두 마리가 떠다니고 있다. ⓒ경주시

경주 유림지하차도가 일주일 사이에 3번이나 침수되면서 현재 중단된 구조개선공사(평면화)에 대한 촉구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경주시는 평면화 공사에 따른 유림숲 훼손을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과 하천 폭 침범 불가 방침을 세운 낙동강유역환경청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장기간 공사 중단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경주시는 최근 기존 왕복 6차로에서 왕복 4차로로 도로폭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일각에서는 몇몇 특정 주민 민원에 병목도로를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하루 건너 침수되는 유림지하차도
지난 16일부터 이어진 폭우는 전국적으로 18명의 사망자와 9명의 실종자를 발생시켰다. 경주지역 역시 지난 13일부터 19일까지 평균 314.1㎜의 폭우가 쏟아졌으며, 외동읍은 429㎜로 관내 최대 강수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집중되면서 유림지하차도, 금장교 하상도로, 동방교 임시우회도로 등 주요 도로가 잇따라 침수됐고, 석굴암 진입로 일부가 유실되는 등 국가유산의 피해도 잇따랐다.

특히 유림지하차도의 경우 일주일 사이 세 번(14·17·19일)이나 침수되면서 일대 교통이 통제돼 주민들은 일주일 내도록 교통 불편을 감내해야 했던 것은 물론이고, 재난 위험에 그대로 노출됐다.

이 가운데 인근 아파트 주민들과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된 평면화 공사를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평면화 계획 수립과 환경청의 불가 방침
경주 유림지하차도는 황성동과 용황지구 등 경주시 주거밀집지역과 도심 및 외곽을 잇는 관내 주요도로 중 하나인 강변로에 위치해있다.

이 곳은 황성동 진입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구간으로 출퇴근 시간을 포함해 상시 많은 통행량을 보이는 곳이다.

경주시가 세운 최초 계획은 형산강 점용허가를 통해 하천 방향으로 도로를 확장할 계획이었으나 낙동강유역환경청과의 하천점용 협의 과정에서 불허 결정이 나면서 하천 방향이 아닌 유림숲 방향으로 도로를 확장키로 변경됐다.

경주시에 따르면 2022년 태풍 힌남노로 포항지역 형산강 및 냉천 범람으로 막대한 인명 및 재산피해가 발생한 뒤 2023년 형산강 하천기본계획을 변경하면서 형산강의 강우빈도가 상향된 것이 결정적 이유라고 한다.

당시 낙동강유역환경청은 경주시의 하천점용허가 신청에 대해 보완 요청을 통보하며 “신청구간은 현 하폭이 상·하류 대비 약 100m 이상 협소한 구간으로서 하류에 구)철도교와 강정보가 위치하고 지방하천이 합류됨에 따라 유수의 정체 등으로 상류구간 홍수위 증가에 따른 취약지구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림지하차도 평면화 공사가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계획하폭 대비 약 19m가 축소돼 통수단면 잠식으로 인한 홍수위 상승 및 유수정체에 따른 치수안정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검토된다”며, “현 하폭을 잠식하지 않는 안으로 계획 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로 선형 변경, 이번엔 주민들의 반대
결국 경주시는 하천 폭을 침범하는 않고 유림숲 일부 수목을 제거해 도로를 확장하고 직선화·평면화하기로 계획을 변경했지만 이번에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경주시는 2024년 총 사업비 70억원(전액 시비)을 투입키로 결정하고 올해 12월까지 완공하는 내용의 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이때 공사 계획은 기존 지하차도를 평면화하고 길이 540m에 폭 28.5m의 왕복 6차선 도로를 개설하는 것으로, 유림숲 대부분이 도로에 편입되고 기존 인도는 아파트(e편한세상황성) 쪽으로 이동해 3.5m 폭으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이듬해 2월 본격 착공에 들어서면서 유림숲 수목 제거를 시작하자마자,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됐고, 주낙영 경주시장과 입주민들 간의 면담 이후 주 시장이 공사중지와 함께 낙동강유역환경청과의 재협의를 추진토록 지시하며 현재까지 공사 중단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경주시의 재협의 요청에 앞서 주민들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동일 민원을 접수하면서, 경주시와 낙동강유역환경청과의 재협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낙동강유역환경청 입장에서는 먼저 접수된 국민신문고 답변이 우선되는 상황이 됐고, 이에 따라 경주시는 재협의를 진행할 기회조차 사라지게 된 것이다.

결국 낙동강유역환경청은 도로개설을 위한 하천구역 침범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재차 통보했고, 결국 경주시는 유림숲 방면으로의 도로 개설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나마 이후 진행된 협의에서 기존에 불허됐던 ‘공사 시 하천 둔치 임시도로 개설’에 대해서는 우수기를 피하는 조건으로 추진할 시 긍정적으로 검토키로 해 사업추진의 여지는 살려뒀다.

◇딜레마 빠진 경주시, 결국 ‘병목도로’로 추진 검토중
이제 경주시는 낙동강유역환경청의 하천 폭 침범 불허 방침과 주민들의 유림숲 훼손 불가 입장 사이에서 유림지하차도 평면화를 실현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태다.

이 딜레마 상황 가운데서 경주시는 결국 차로 폭을 축소하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경주시 김철우 도로과장은 “현재 당초 계획 대비 차로폭을 줄여 유림숲 내 메타세쿼이아 수목 대부분을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중이다”라며, “차로폭 축소 및 중앙선 이동으로 인해 주행성이 당초보다 다소 불리하지만 유림숲 훼손을 최소화하고 아파트와의 차폐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황성동 주민 A씨는 “주낙영 경주시장이 주민들의 민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입장은 반길만한 일이지만, 특정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경주시민은 물론 경주를 찾는 많은 방문객이 이용하는 도로가 왕복 6차선에서 4차선으로 변경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용강동 주민 B씨 역시 “이 도로는 경주 최대 주거밀집지역과 경주 도심 및 포항을 잇는 주요 도로인데 이 도로 한 가운데를 병목 형태의 교차로를 만든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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