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사업 재위탁하며 과업 전부 맡긴 정황 확인...총 사업비 3억 중 2억 챙겨 ‘부정 수급’ 의혹까지
경주시 출연기관인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하 신문연)이 대행사업을 수행하면서 예산 편취 의혹이 제기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신문연은 기관 설립 목적 및 기능과 관계없는 연구용역을 경주시로부터 공기관 대행사업 형태로 수주해 무분별한 ‘공기관 대행사업’의 전형이자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례로 지적받고 있다.
신문연이 지난해 수주했던 ‘경주시 공간환경전략계획 수립’ 사업의 경우 직접 수행해야 할 과업를 민간 업체에 위탁한 것으로 밝혀져 경주시와의 협약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신문연은 아무런 과제 수행도 하지 않고 전체 사업비 3억원 가운데 2/3 규모인 1억9352만원을 챙겼다. 이는 예산 낭비를 넘어 ‘예산 부정수급’ 내지는 ‘예산 편취’ 에 해당되는 사안이다.
본지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경주시는 지난해 8월 신문연에 ‘경주시 공간환경전략계획 수립 용역’ 공기관 대행사업 협약 체결 요청을 위한 공문을 발송하면서 협약서 및 과업지시서를 첨부했다.
협약서 내용에는 업무 범위와 관련해 “주요 사안 결정 시 ‘연구원’은 ‘시’와 사전 협의해야 한다” 규정했다.
또 관련 분야 전문가 또는 기관에 용역을 위탁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사전에 시와 협의할 것을 명시했다.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사항은 과업지시서를 따르고 상호 협의해 시행하기로 협약했다.
신문연은 사정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업체 위탁 과정에서 과업의 범위와 내용을 경주시에 성실히 보고 또는 협의하지 않았다.
신문연이 민간 업체 용역 입찰을 위해 작성한 과업지시서 내용을 살펴보면 총 4개의 과업내용 중 △경주시 지역여건분석 및 중점권역 설정 항목은 신문연과 위탁업체가 공동으로 수행하고, △중점추진권역 설정 및 기본구상 항목은 신문연이 단독으로 수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나머지 △중점추진권역 공간구상 및 사업계획 구체화 △중점추진권역 사업추진계획 항목은 위탁업체가 전부 수행하도록 했다.
과업 수행 주체에 대한 이 같은 구분은 경주시가 신문연에 요청한 과업지시 내용과 같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겠으나 실제 과업 수행은 과업지시서와 다르게 이뤄졌다는 정황이 확인되고 있다.
본지가 민간 용역 업체가 제출한 ‘경주시 공간환경전략계획 수립 용역 설계예산서’ 자료를 확보해 살펴본 결과 신문연이 민간 업체에 자체 수행 과업까지 모두 맡겼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용역을 위탁받은 C건축사사무소가 신문연에 제출한 용역비 산출 세부내역을 살펴보면 총 계약금액 1억648만원 중 △중점추진권역 설정 및 기본구상 항목 수행에 직접인건비 2637만원을 책정했다.
과업지시서에 의하면 △중점추진권역 설정 및 기본구상 항목은 신문연이 단독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위탁하는 과업에서 제외됐어야 했다.
하지만 이 과업에 C건축사사무소가 투입하겠다 밝힌 인력은 책임연구원 1명(44일, 741만원), 연구원 1명(88일, 1136만원), 연구보조원 1명(88일, 759만원)으로, 전체 직접인건비의 약 31%를 차지한다.
이 세부내역은 C건축사사무소가 용역 수행을 위해 실제 투입되는 인력과 그에 따른 비용을 산정한 것으로, 이 세부내역서는 C건축사사무소가 어떤 과업을 몇 명의 인력을 투입해 며칠 동안 수행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결국 신문연은 경주시가 협약서와 과업지시서를 통해 단독 수행토록 한 과업을 협약 내용을 위반하면서 민간 업체에 떠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신문연 김창섭 건축연구팀장은 “단독 수행 과업 부분은 우리 팀에서 직접 수행하고 내용을 작성해나가고 있다”며, “다만 위탁 용역사가 맡은 ‘구체화’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호 보완이나 조정이 이뤄지기도 하기 때문에 위탁 용역사의 산출내역서에 우리 과업에 대한 부분도 비용이 잡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탁 용역사의 과업 수행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신문연 과업 부분에 대한 조정과 협의가 이뤄져 인건비 등의 비용을 책정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문제의 과업 부분이 전체 위탁 용역비(직접인건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1%나 되고, 위탁 용역사가 단독 수행하는 과업에 투입되는 인건비(2697만원)와 고작 60만원 차이 나는 부분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경주시는 본지 취재가 시작되자 뒤늦게 신문연의 과업 수행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해 경주시 주택과 담당자는 “단독 수행 과업을 위탁한 것과 관련해서는 신문연에 확인한 결과 전체적인 내용은 신문연이 수행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위탁업체에서 부분적으로 수행한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며, “업체가 제출한 세부내역서와 같이 실제 신문연이 단독 수행 부분을 떠넘긴 것인지 아닌지는 신문연에 직접 확인해볼 것”이라 말했다.
지역 업계 관계자는 “독자 수행 과업까지 위탁에 넘기면서도 사업비의 3분의 2를 챙겨간다는 것은 관급 용역 수주를 위해 전문 인력을 채용하고 조직을 구성해 실적을 쌓아온 다른 민간 용역사들 입장에서는 갑질을 넘어 기본 윤리를 파괴하는 행위다”라며 경주시의 면밀한 조사를 주문했다.
이어 “만약 업체가 제출한 세출내역서가 단순 견적서이고, 실제로는 신문연이 정상적으로 문제의 과업을 수행한 것이라면 신문연은 업체가 제시한 산출내역서 상 해당 과업 부분 비용을 감액하고 정산해야 한다”며, 업체 측의 용역비 과다 산출 가능성도 함께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