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씨 원조(元祖) 소벌도리, 알에서 깨어난 혁거세 데려다 키워 왕으로 추대...24세손 최치원 중시조로 삼고 본관을 경주(월성)로 삼아

▲ 고운 최치원 영정. 
▲ 고운 최치원 영정. 

한반도 최초 통일 국가를 세운 신라의 천년 도읍인 경주는 신라 왕들로부터 유래된 박(朴)씨, 석(昔)씨, 김(金)씨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은 물론이고, 민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성을 가지게 된 6촌의 이(李)씨, 최(崔)씨, 손(孫)씨, 정(鄭)씨, 배(裵)씨, 설(薛)씨까지 많은 성씨의 득성조가 있어 우리나라 씨족 문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위를 가진다.

본지는 연속 기획으로 경주에서 유래한 성씨, 특히 6촌 촌장들로부터 유래한 성씨들을 중심으로 그 유래와 역사를 조명하고, 그 후손과 발자취를 찾아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최씨의 대종(大宗), ‘경주 최씨’
경주 최씨는 우리나라 최씨의 근간으로, 신라 사랑부(沙梁部) 촌장 소벌도리(蘇伐道利)가 씨족의 원조(元祖)이다.

이후 그의 24세손이며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을 중시조로 모시고, 본관을 경주(옛 월성)로 삼아 현재까지 그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최씨의 득성조(得姓組)가 되는 소벌도리는 신라의 개국공신으로, 원시 신라 초기를 구성한 육촌(六村) 중 하나인 고허촌(高墟村) 촌장이었으며, 뒤에 육부(六部) 중 하나인 사량부(沙梁部)의 시조가 됐다.

▲ 과거 양산재로 불리던 육부전은 신라 건국 공신 6부 촌장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경주시

□경주 최씨의 시조 ‘소벌도리’와 박혁거세
삼국사기에 의하면, 나정 곁에서 혁거세를 발견하고 그를 집으로 데려와 신라의 초대 왕으로 추대할 때까지 양육한 이가 소벌도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한의 양왕 5년(단기 2265년), 당시 육촌 촌장들은 자신들이 속한 진한의 백성들이 마한의 침략을 수시로 받아왔기 때문에 군주를 중심으로 한 국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에 고허촌장 소벌공은 다른 촌장들을 소집해 건국회의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해 3월 삭일에 양산촌장 알평, 대수촌장 구례마, 진지촌장 지백호, 가리촌장 기타, 고야촌장 호진 등 다선 촌장과 더불어 알천안상에서 회의를 열도록 소벌공이 제안하니 각 촌장들은 이에 모두 찬동하고 각기 자제들을 거느리고 참석했다.

소벌공은 이 회의에서 “지금 우리들의 많은 민중이 기름진 좋은 땅에서 태평성대 하게 살면서도 우리를 다스릴 어른이 없는 가닭에 백성이 모두 제멋대로 살고 있어 뭉치고 단합하는 힘을 갖지 못하는 형편이다. 항상 남의 나라(마한)의 부당한 간섭과 제어를 받게 되고, 또 인접한 변한도 종종 침해하는 일이 자주 있을 뿐 아니라, 멀리 북으로부터 한(漢)의 4군이 머리를 누르고 있어 언제나 그것들이 우리의 진전에 크게 방해되는 바인즉 우리는 지금부터 좋은 군주를 얻어 뫼시고 국가정사를 새롭게 하면 이것이야말로 자손만대에 백년대계를 이르게 될 것이니 이를 위해 총력을 다함이 어떠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에 모든 촌장과 자제들은 이에 동의함은 물론, 크게 협력할 것을 결의했다.

소벌공은 ‘이제 군주를 정하는 것만이 남았는데 어떤 군주를 간택해 백성들의 축복을 받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 채 높은 언덕에 올랐는데, 그 때 우연히도 이상한 조짐을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발 길을 그곳으로 옮겼다.

▲ 나정. ⓒ국가유산청

그곳은 남쪽의 양산 및 나정(蘿井: 계림 부근) 옆 수풀 사이로, 마치 번개 같은 서광이 번쩍거리며 그 속에서 한 백마가 있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이를 이상히 여긴 소벌공은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본 즉 말은 앞발을 꿇어 절하는 모양으로 몇 번 굽히다가 긴 소리를 지르더니 하늘로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에는 푸릇 불긋한 큰 알 한 개가 놓여 있었다.

소벌공이 그 알을 얻어 깨어보니 알 속에서는 뜻밖에도 동자하나가 나오는데, 그 생김새나 모양이 대단히 단정하고 아름다워 놀랍고 기이히 여겼다.

서둘러 아이를 안고 동천사(東泉寺 : 우물사)에 가서 목욕을 시키니 아이의 몸에는 광채가 나고 그 주변의 새들이 날아와 너울너울 춤을 추고 천지가 진동해 일월이 청명해졌다.

심상치 않음을 보고 좋아하며 집으로 데리고 와서 귀하게 기르며 그 때의 광경을 상징해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했다.

혁거세가 13세가 되던 해(단기 2277년) 한선재오봉(漢宣宰五鳳) 원년에 소벌공은 각 촌장들을 불러 회의를 열고 혁거세의 자질이 비범함을 알린 후 왕으로 추대할 것을 제의하니 모든 촌장들은 이에 찬동하므로 곧 왕위에 오르게 하고 국호를 서군벌이라 했다.

□소벌도리의 24세손 최치원, ‘경주’를 본관으로 삼다.
국내 대부분의 최씨는 원시조 소벌도리의 24세손이며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인 최치원을 주축으로 해 선대 및 후대에서 분파됐다고 보는 것이 유력하다.

▲ 소벌도리공기적비 : 경주 최씨 시조인 소벌도리를 기리기 위해 1986년 최씨 문중에서 건립했다. ⓒ경주최씨대종회

‘경주최씨상세계보(慶州崔氏上系世譜)’의 기록에 의하면 소벌도리 24세손 최치원의 윗대에 분파된 본관으로는 개성(開城)·동주(東州 : 철원)·전주(全州 : 군옥파) 등이 있고, 최치원의 후대에서는 함양(咸陽)·청주(淸州)·영흥(永興)·충주(忠州)·용강(龍崗)·수원(水原)·부안(扶安)·강릉(江陵)·강화(江華)·화순(和順)·통천(通川)·양천(陽川)·원주(原州)·해주(海州)·진주(晋州)·탐진(耽津)·전주(全州 : 순작, 균)가 분파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최씨가 소벌도리의 후손으로 경주 최씨를 원조로 하고 있으며, 소벌도리와 최치원을 잇는 같은 후예에 속한다.

최치원을 시조로 삼은 경주 최씨는 크게 26파로 분류하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으로 관가정 청파(觀稼亭淸派)·사성공 예파(司成公汭派)·화숙국 현우파(和淑公玄祐派)·광정공 단파(匡靖公鄲派)·정랑공 호파(正郞公灝派)·충렬공 광위파(忠烈公光位派) 등 6개 파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관가정파와 서성공파의 후손이 가장 많다.

결국 경주 최씨는 다른 경주 육촌의 성씨(이(李)씨, 최(崔)씨, 손(孫)씨, 정(鄭)씨, 배(裵)씨, 설(薛)씨)들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씨족으로, 역사상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전통있는 명문거족으로 꼽힌다.

역사상 선현들이 이룩해 놓은 찬란한 업적에서 더듬어 볼 수 있는 최씨 특유의 기개·강기·신념·절조 등은 ‘최고집’, 혹은 ‘최씨 앉은 자리는 풀도 안난다’ 등의 많은 애칭을 낳기도 했다.

▲ 육부전.
▲ 육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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