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관대표회의가 26일 임시회의를 열고 재판 독립성과 사법부 신뢰 회복을 주제로 논의했으나, 어떤 안건도 의결하지 않고 대선 이후 회의를 속행하기로 결정했다.

정치적 민감도가 높은 시점에서 사법부의 공식 입장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임시회의에는 전국 126명의 법관대표 중 87~90명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했다.

회의는 약 2시간가량 진행됐으며, 참석자들은 김예영 의장(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이 상정한 두 건의 주요 안건을 포함해 총 7건에 대해 논의했다.

핵심 쟁점은 사법부 독립성과 관련된 입장 표명 여부였다. 상정된 안건에는 특정 대법원 사건에 대해 “이례적인 절차가 사법 신뢰를 흔들었다”며 우려를 담거나, 최근 불거진 ‘정치의 사법화’ 흐름에 대해 “재판 독립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대법원 판결 절차가 일부 법관 사이에서 논란이 된 배경이 반영됐다.

추가 발의된 안건들도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사법부를 방어하자는 취지였다. 한 안건은 ‘개별 재판에 따른 법관 책임론은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고, 또 다른 안건은 법관대표회의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결의를 포함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의 말미, 안건 표결 여부를 둘러싼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표결을 당장 진행하자는 의견과, 대선 이후 신중하게 판단하자는 의견이 맞섰으며, 최종적으로 속행 여부에 대한 표결 결과 90명 중 54명이 찬성해 회의를 연기하기로 의결됐다.

전국 법관이 모이는 대표회의가 입장 없이 회의를 연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구성원 간 정치적 민감성을 신중히 고려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회의에 참석한 한 법관대표는 “사법개혁이 이번 대선의 핵심 의제로 부상하면서 회의 결과가 자칫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며 “사법부의 정치화 위험을 피하고자 연기를 택한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임시회의는 특정 사안을 둘러싼 법원 안팎의 긴장감 속에서 한 법관대표의 제안으로 추진됐다.

단체 대화방에서 실시한 비공식 투표 결과, 회의 소집에 필요한 정족수 26표를 간신히 넘겼으며, 소집 반대 의견도 70표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사법부 내에서도 입장 표명을 둘러싼 이견이 적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표회의는 대선 이후인 6월 3일 이후 원격회의 방식으로 속행되며, 구체적인 일정은 법관대표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될 예정이다.

이번 사안의 결론이 향후 사법부와 정치권 간 긴장 관계, 나아가 국민의 사법 신뢰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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