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 원자보다 작은 강유전 도메인 구현해 차세대 메모리 혁신 가능성 열어

▲ 최시영 POSTECH 신소재공학과·반도체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이재광 부산대 교수, 최우석 성균관대 교수팀과 공동으로 자연 광물인 브라운밀러라이트(Brownmillerite)에서 원자 크기보다 작은 수준의 강유전 현상을 발견했다. ⓒ포스텍

POSTECH(포항공과대학교)을 중심으로 한 국내 연구진이 자연 광물의 구조를 모방해 원자보다 작은 크기의 강유전 도메인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기존 메모리 소자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차세대 초고밀도 메모리 개발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최시영 POSTECH 신소재공학과·반도체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이재광 부산대 교수, 최우석 성균관대 교수팀과 공동으로 자연 광물인 브라운밀러라이트(Brownmillerite)에서 원자 크기보다 작은 수준의 강유전 현상을 발견했다. 이 연구 결과는 과학 분야 권위지인 '네이처 머티리얼즈(Nature Materials)'에 지난 20일 게재됐다.

현재 전자기기의 메모리는 정보를 저장하는 최소 단위인 '도메인' 크기에 제한이 있어 소형화와 고집적화에 한계가 있었다. 도메인을 구성하는 원자들이 주변 원자들과 집단적으로 진동하는 특성 때문에 도메인 크기를 줄이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단서를 자연 광물에서 찾았다. 브라운밀러라이트는 철(Fe) 원자와 산소(O) 원자로 이루어진 사면체 층(FeO₄)과 팔면체 층(FeO₆)이 번갈아 쌓인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구조는 마치 빵과 햄이 교대로 쌓인 샌드위치와 유사하다.

이 광물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포논 디커플링(phonon decoupling)'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원자가 진동할 때 주변 원자들도 함께 움직이지만, 브라운밀러라이트에서는 사면체 층이 진동해도 팔면체 층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 특성 덕분에 전기장을 가했을 때 사면체 층에서만 독립적으로 도메인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연구진은 SrFeO₂.₅와 CaFeO₂.₅ 두 종류의 브라운밀러라이트 박막과 CaFeO₂.₅ 단결정 등 다양한 형태의 시료에서 이 현상을 확인했다. 실험 결과, 전기장이 사면체 층에만 영향을 미쳐 원자 위치가 변화했고, 팔면체 층은 그대로 유지됐다. 연구팀은 이 구조를 활용한 강유전체 캐패시터와 박막 트랜지스터 소자까지 제작해 실제 작동 가능성을 입증했다.

"자연에서 찾은 지혜가 첨단 기술의 한계를 넘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POSTECH 최시영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자연 현상이 풀리면 다양한 첨단 기술의 활용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기존보다 수십 배 작고 빠른 메모리 개발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는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저장 용량과 처리 속도를 크게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차 같은 고속 데이터 처리가 필요한 기술 발전도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는 기초과학연구역량강화사업(소재이미징해석연구센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기술 개발 사업 등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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