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부담과 국내 경영 악화로 해외 생산기지 구축 서두르는 철강 대기업
미국의 고율 철강 관세 부과와 국내 노사 갈등 심화, 건설 경기 둔화, 저가 수입 철강재 유입 등 복합적 요인이 한국 2위 철강기업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달 중 미국 조지아주에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그룹 차원의 대규모 투자 계획과 함께 현대제철의 미국 제철소 건설에 관한 발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은 철강 및 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정책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현대제철을 직접 언급했다.
백악관은 공식 성명을 통해 "최근 현대제철이 미국 내 제철소 건설을 적극 검토 중이라는 사실이 발표됐다"며 "미국철강협회와 철강제조협회를 포함한 미국 철강업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무역 정책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현대제철이 미국에 쇳물 생산이 가능한 제철소를 건설할 경우, 이는 동사의 첫 해외 직접 생산기지가 된다. 지금까지 한국 철강기업 중 미국에 고로나 전기로를 구축한 사례는 전무했다.
국내 철강산업은 현재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중국 등에서 생산된 저가 철강재가 국내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는 가운데, 건설 경기 침체로 철강 수요마저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현대제철은 지난 14일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전 임원 급여 20% 삭감과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전 직원 대상 희망퇴직을 검토할 정도로 경영난이 심각하다.
지난해 국내 주요 철강 3사(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 중 현대제철의 실적 악화가 가장 두드러졌다. 회사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0.6%, 당기순이익은 98%나 감소했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지난 12일부터 한국산 철강재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수출 경쟁력이 크게 약화됐다.
더욱이 오는 4월 2일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자동차 및 반도체 등에 대한 상호 관세 부과도 예고된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관세 부담을 회피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내 생산기지 설립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HMGMA 본격 가동 후 현지 생산량을 기존 연간 75만대에서 125만대까지 확대할 계획이어서, 현지에서 철강을 직접 공급할 경우 물류비 절감과 생산 효율성 향상이라는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노사 갈등 역시 현대제철의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제철과 노조는 지난해 9월부터 임금협상에서 대립해왔다.
회사는 2024년 기준 당기순손실 650억원의 실적 악화에도 1인당 평균 2650만원(450%+1000만원) 수준의 성과금 지급안을 제시했으나, 노조는 이를 거부하고 추가 성과금을 요구하며 파업을 지속해왔다.
이에 회사는 부분 직장폐쇄로 대응하는 등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강성 노조와의 마찰이 경영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상대적으로 노사관계가 안정적인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려는 전략적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현대제철 측은 미국 제철소 투자를 검토 중이나 내부 설비나 착공 일정 등은 확정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공장 건설부터 완공, 실제 생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며, ROI(투자자본수익률) 등 검토할 사항이 많다"며 "노조 문제도 있다. 미국 제철소 진행이 확정되면 노조와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전했다.
강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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