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뱅킹 감시 허점 악용해 장기수선충당금까지 빼돌려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40대 B씨는 지난 5일부터 갑자기 출근하지 않았다. 이날은 직원 급여 지급일이었기 때문에 다른 직원이 관리비 통장을 확인하려 했으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의심을 품은 관리사무소 측이 은행을 직접 방문해 확인한 결과, 통장 잔액이 전혀 없었으며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적립해둔 7억원도 사라진 상태였다.
"B씨는 인터넷뱅킹이 도입된 2016년부터 약 10년간 지속적으로 관리비를 빼돌린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가 밝혔다.
인터넷뱅킹 도입 이전에는 관리소장과 입주자대표회장의 승인 도장이 필요했으나, 전자금융 시스템으로 전환되면서 출납 권한이 B씨에게 집중됐다. B씨는 이체 시 '받는 사람' 명의를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는 인터넷뱅킹의 특성을 악용했다.
자신의 계좌로 관리비를 이체하면서도 정상적인 거래처에 송금한 것처럼 기록을 조작해 의심을 피했다. 300가구 이상 아파트단지에 의무적으로 적용되는 외부 회계감사도 무력화시켰다.
"B씨는 잔액증명서 등 회계 자료와 서류를 위·변조해 제도적 감시망을 교묘히 빠져나갔습니다," 수사 관계자는 전했다.
회계감사는 주로 표본조사 방식으로 진행되며, 제출된 서류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담당자가 의도적으로 조작한 문서는 진위 파악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전수조사가 어렵고, 담당자가 의도적으로 속이려 한다면 감사에서 적발하기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사유재산에 대한 개입 권한이 제한적이라 대응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아파트는 사유재산이며 자치 관리기구를 통해 운영되기 때문에 행정기관의 직접 개입이 어렵다"며 "공동주택 자체적으로 관리·감독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광주 광산경찰서는 관리사무소 측의 고소장을 접수해 B씨에 대한 업무상 횡령 혐의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번 사건은 디지털 금융 시대에 공동주택 관리비 운영 시스템의 투명성과 견제 장치 강화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아파트세대가 많은 우리나라의 주거환경특성상 더 큰 피해를 부를 수 있다. 제도권으로 입주민 혹은 입주민대표가 은행시스템을 공유할 수 있는 공유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