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시대 성씨 유래...정체성 찾는 뿌리 이야기...신라 6부촌 대한민국 성씨의 근간

▲ 경주 계림.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숲이다. ⓒ국가유산청
▲ 경주 계림.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숲이다. ⓒ국가유산청

우리나라는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따라 다문화 시대를 맞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성씨의 이야기는 정체성을 찾고 뿌리를 생각하게 한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너무 빠르게 급변하고 있다. 문화만큼이나 세대 간의 소통 역시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현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급변하는 세상을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오는 동안 오늘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스스로에 대해 돌이켜 생각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같은 때에 성씨에 대해 조명하는 것은 반만년의 유구한 세월을 흘러 우리 민족의 역사를 가장 가깝게 만나고 자신의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성씨로 이어져 온 씨족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많은 씨족들이 씨족만의 사료를 소중히 간직해옴으로써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보학과 귀중한 족보를 갖고 있는 것이 우리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의 자산이자 강력한 씨족의식으로 이어져왔으며, 이것이 곧 오늘날에도 힘을 발휘해 한민족의 정체성을 이루는 뿌리이자 근간이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경주 유래 성씨를 돌이켜보는 이유

경주는 한반도를 최초로 통일한 신라 역사의 처음과 끝을 간직한 천년 도읍으로, 역대 왕들로부터 유래된 박(朴)씨, 석(昔)씨, 김(金)씨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은 물론이고, 민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성을 가지게 된 6부촌의 이(李)씨, 최(崔)씨, 손(孫)씨, 정(鄭)씨, 배(裵)씨, 설(薛)씨까지 많은 성씨의 득성조를 배출한 지역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김, 이, 박씨 중 김해 김씨를 제외하면 세 성씨 모두 경주 김씨, 경주 이씨, 경주 박씨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어, 경주지역은 신라 천년 도읍의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 성씨의 근간이라 할 만하다 하겠다.

본지는 이 같은 배경에 따라 경주지역에서 발원한 주요 성씨들의 유래와 역사적 인물들을 재조명하고 더 나아가 그 유적과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들을 모아 소개하고자 한다.

나정 전경. 경주 탑동에 위치한 나정은 신라의 첫번째 왕이자 경주 박씨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국가유산청
▲ 나정 전경. 경주 탑동에 위치한 나정은 신라의 첫번째 왕이자 경주 박씨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국가유산청

□ 신라건국과 6부촌

신라는 6부촌이 건국했다.

경주 유래 성씨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6부촌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6부촌은 지금의 경주를 중심으로 자리잡은 6개 부락을 뜻하는 말로, 신라의 건국과 수도를 정하기로 의결하고 혁거세를 왕으로 삼은 그야말로 신라 건국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69년경 고조선의 북부여 유민들이 동해변의 여러 산골짜기에 흩어져 살면서 여섯 촌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첫째마을은 알천양산촌, △둘째마을은 돌산고허촌, △셋째마을은 무산대수촌, △넷째마을은 취산진지촌, △다섯째마을은 금산가리촌, △여섯째마을은 명활산고야촌이었다.

이들 6촌의 우두머리들이 각기 자제들을 이끌고 알천 기슭에 모여 덕이 있는 자를 찾아서 군왕을 삼을 것과 수도를 정할 것을 의결했다고 한다.

이에 양산(지금의 경주 남산) 아래 나정 곁에서 발견한 알에서 태어난 혁거세를 얻어 ‘거슬한’으로 추대하고 기원전 57년에 그를 왕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전설은 씨족장들이 모여서 부족장을 선출하곤 하던 원시 신라사회의 모습을 전하는 것으로 해석되면, 따라서 6부촌의 촌장들은 원시 신라를 구성하던 한 유력한 씨족장일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고허촌장 소벌공(훗날 경주 최씨의 득성조가 된다)은 그해 단기 2265년(한무제 원년) 3월에 양산촌장 알평, 대수촌장 구례마, 진지촌장 지백호, 가리촌장 기타, 고야촌장 호진 등 다섯 초전장과 더불어 알천안상에서 회의를 열도록 소벌공이 제안하니 각 촌장들은 이에 모두 찬동하고 각기 자제들을 거느리고 참석했다.

경주 표암. 6부촌의 첫번째 씨족인 알천양산촌의 족장 알평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으로 알려진 장소이다. 알평은 훗날 이씨 성을 사성받아 경주 이씨의 득성조가 된다. ⓒ국가유산청
▲ 경주 표암. 6부촌의 첫번째 씨족인 알천양산촌의 족장 알평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으로 알려진 장소이다. 알평은 훗날 이씨 성을 사성받아 경주 이씨의 득성조가 된다. ⓒ국가유산청

소벌공은 이 회의에서 의장 격이 되어 말하기를, “지금 우리들의 많은 민중이 기름진 좋은 땅에서 태평성대하게 살면서도 우리를 다스릴 어른이 없는 까닭에 백성이 모두 제멋대로 하며 살고 있으니, 뭉치고 단합하는 힘을 갖지 못하는 형편이므로…(중략)…우리는 지금부터 좋은 군주를 얻어 뫼시고 국가정사를 새롭게 하면 이것이야말로 자손만대에 백년대계를 이르게 될 것이니 이를 위해 총력을 다함이 어떠하겠는가?”라고 말하니 모든 촌장과 자제들은 이에 동의함은 물론, 크게 협력할 것을 결의하게 됐다.

이후 소벌공이 남쪽의 양산 밑 나정(계림 부근) 옆 수풀 사이로 마치 번개 같은 서광이 번쩍거리며 그 속에서 한 백마가 있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이를 이상히 여긴 소벌공은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본 즉 말은 앞발을 꿇어 절하는 모양으로 몇 번 굽히다가 긴 소리를 지르더니 하늘로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에는 푸릇 불긋한 큰 알이 한 개 놓여있었다.

소벌공은 그 알을 얻어 깨어보니 알 속에서는 뜻밖에도 동자하나가 나오는데 형태와 용모가 대단히 단정하고 아름다웠던 한편 놀라고 기이히 여겨 서둘러 안고 동천사에가서 목욕을 시키니 아이의 몸에서는 광채가 나고 그 주변의 새들이 날아와 춤을 추고 천지가 진동하며 일월이 청명해지는 것이 심상치 않음을 보고 좋아서 집으로 데리고 와서 귀하게 길렀다.

또 그 때의 광경을 상징하며 이름을 혁거세라고 지었다.

혁거세가 13세가 되던 해 단기 2277년에 소벌공은 다시 각 촌장들을 불러 회의를 열고 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할 것을 제의하니 모든 촌장들이 이에 찬성해 곧 제위에 오르고 국호를 서군벌이라 하였다.

□6부촌장들 ‘성씨’를 내려받다.

신라의 3대 유리왕(신라 9년, 단기 2365) 구 진한의 6부에 지명을 개칭해 △양산촌을 급량부, △고허촌을 사량부, △대수촌을 잠량부, △간진촌을 본피부, △가리촌을 한저부, △명활촌을 습비부로 하는 동시에 그 6부의 장에게 각각 성을 내렸으니 △사량부(고허촌)의 장 소벌공은 최(崔)씨, △양산촌 알평에게는 이(李)씨, △대수촌 구례마에게는 손(孫)씨, 진지촌 지백호에게는 정(鄭)씨, 가리촌 기타에게는 배(裵)씨, 명활촌 호진에게는 설(薛)씨를 내렸다.

삼국유사. 고려 일연스님이 1281년(충렬왕 7년) 편찬한 책으로, 신라 건국설화를 비롯해 유리왕이 6부촌 족장 6인에게 성씨를 하사한 이야기가 기록돼있다. ⓒ국가유산청
▲ 삼국유사. 고려 일연스님이 1281년(충렬왕 7년) 편찬한 책으로, 신라 건국설화를 비롯해 유리왕이 6부촌 족장 6인에게 성씨를 하사한 이야기가 기록돼있다. ⓒ국가유산청

유리왕이 사성(성을 내리다)은 본디 진한의 6촌장이었던 이들이 신라의 건국에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며, 이들 여섯 촌장들은 당시 민간으로서는 처음으로 성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성씨는 계속 이어졌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경주부 내용에서도 “신라의 옛 수도”라고 하며, “경주의 토성(土姓 : 조선 초기 지역 사회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온 양반의 성씨를 뜻하는 말로 쓰였음)이 여섯이니, 이(李), 최(崔), 정(鄭), 손(孫), 배(裵), 설(薛)이다”라고 서술했다.

이어 “삼가 선원(璿源 : 임금의 집안)을 거슬러 올라가면, 본디 나온 곳은 바로 경주 이씨이다”라고 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관은 전주(全州)이지만 전주 이씨 역시 경주 이씨에서 유래됐다는 뜻으로, 실제 경주 이씨 대종보에는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이렇듯 경주는 이 지역 유래 성씨들의 역사를 통해 신라의 도읍에 국한되지 않고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우리 민족사의 큰 뿌리가 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기획 연재를 통해 경주 유래 성씨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와 유적들을 통해 경주로부터 유래된 한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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