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시작·생업 현장 복귀 출발점...마을총회 열고 한 해 살림살이 논의...달집 태우는 ‘망월이’로 풍년 기원...동제 제외 대부분 여성 중심 놀이

▲ 울진군 울진읍 월변청년회가 주관한 2023년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와 폭죽놀이 장면. ⓒ울진군

정월대보름은 우리나라 농어촌 전통사회에서 농사(農事), 해사(海事) 등 한 해의 생업을 앞두고 행해지는 마지막 명절이자 세시의례이다.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생업력은 ‘달의주기’를 품은 태음력에 바탕을 두고 전개돼 왔고, 우리 선조들은 태음력에 바탕한 생업활동을 펼치며 ‘노동과 제의’를 담은 독특한 세시력과 세시의례를 창조했으며, 이들 세시력은 오늘날 전통문화의 근간인 세시풍속으로 전승되고 있다.

대표적 명절로 여겨지는 ‘설’과 ‘추석’이 ‘조상모시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가족이나 문중 중심의 세시인 반면, ‘단오’와 ‘정월대보름’은 생업력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마을공동체 중심의 세시이다.

정월대보름은 바로 한 해의 생업을 위한 노동의 시작이자 생업 현장으로의 복귀를 알리는 출발점이다. 때문에 정월대보름의 풍속은 전통사회에서 독특한 세시의례를 동반하며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전승되고 있다.

울진과 영덕 등 동해 연안 지방에서 전승되는 대표적인 정월대보름 세시의례는 △부럼깨물기 △오곡밥먹기 △마을제사(동제) △성주고사·텃제 등 가신신앙 △윷놀이·풍물 △쥐불놀이·망월이 △줄당기기·달넘세 등 공동체 의례와 집단놀이로 진행되고 있다.

윷놀이
▲ 윷놀이. ⓒ울진군

특히 정월보름의 민속은 생업공동체와 구성원들의 안녕과 결속을 위해 ‘공동제의’와‘가족제의’를 동시에 담아 전개됐으며, 이 중 마을 공동제의와 대표격이 ‘마을제사(동제)’로 가족제의의 대표격은 성주고사와 텃제 등 ‘보름제사’로 전승된다.

◇“동제는 엄숙한 비의의 세계”…마을공동체 안녕과 결속 기원
마을제사(동제)는 ‘성황제’나 ‘서낭제’, ‘동제’, ‘용신제’로 불리며 마을의 구성원이 모은 ‘마을기금’으로 제수를 장만해 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 수행하는 대동제의다.

울진지방의 성황제(동제)는 주로 보름이 드는 날 자시(밤 12시 무렵)에 마을 구성원 중에서 선출된 제관들이 제사를 주관한다.

동제는 유교적 절차에 따라 매우 엄격하게 수행된다. 특히 동제는 남성중심의 제의로서 여성과 외부인은 절대 참여가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비의·폐쇄적’ 구조를 띠고 있다.

어린이들이 소원성취 장면
▲ 어린이들이 소원성취 장면. ⓒ울진군

정월보름이 드는 ‘음력 정월 열나흘’ 저녁무렵이면 마을은 ‘엄숙한 비의의 세계’로 들어간다. 마을은 강아지 울음마저 경계할 만큼 ‘정적의 세계’로 들어간다.

마을 각각의 집에서는 보름이 드는 새벽 2시 무렵에 오곡으로 정승스레 지은 찰밥과 나물국을 차리고 4대조에게 보름제사를 올렸다. 이를 ‘찰밥제사’라고 불렀다.

동제가 마을의 안녕과 결속을 기원하는 공동체 집단의례라면 찰밥제사는 가정의 안녕과 자손의 발복을 기원하는 가정단위의 개인의례이다.

보름이 드는 정월 열나흘날 밤에는 온 가족이 모여 덕담을 나누며 호두와 땅콩 등 부럼을 깨며 온 가족이 건강하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아침이면 오곡찰밥으로 지은 보름밥을 먹기 전에 온 가족이 모여 ‘귀밝기술’을 먹었다. 이는 한 해 농사의 풍년과 잡귀의 접근을 막는 유감주술적 벽사의 의미가 있었다.

주민들이 강강수월래 놀이 재현
▲ 주민들이 강강수월래 놀이 재현. ⓒ울진군

동제를 치른 보름날 아침이면 마을주민 모두가 마을회관에 모여 ‘동제 음복’을 나눈 뒤, 마을의 한 해 살림살이를 결산하고 계획을 짜는 ‘연시총회(동네공사, 마을총회)’를 갖는다. 지나온 한 해의 살림살이와 마을 공동기금의 쓰임새를 결산하고 새로운 한 해의 살림살이를 구상한다.

연시총회가 끝나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물을 앞세우고 윷놀이와 줄당기기를 벌이며 신명의 세계를 펼쳤다. 특히 갓 시집 온 새댁들이나 아낙들은 ‘남색’을 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걸립을 하며 이른바 여성해방의 속내를 담은 여성중심의 집단놀이이다.

이 무렵 마을의 아이들은 바가지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며 오곡밥을 얻어 반드시 ‘방아간의 디딜방아’에 걸터앉아 걸립한 오곡밥과 나물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한 해의 건강과 부스럼이 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저녁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을 앞의 밭이나 동산에 올라 ‘보름달 보기’를 즐겼다. 이 때 쥐불놀이가 치러지거나 달집태우기 행사가 진행된다. 울진지방에서는 ‘망월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 달집태우기. ⓒ울진군
▲ 달집태우기. ⓒ울진군

주로 마을 친구들끼리 짝을 이룬 후에 망월이는 주로 ‘깡통’에 ‘옹이불(소나무 옹이덩이)’을 담아 마을의 높은 뒷동산에 올라 휘둘렀다. 또한 나이 든 총각들은 이웃마을과 ‘달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망월이는 남녀노소 모두 모여 옹이불을 담은 깡통을 돌리면서 ‘망월아’를 연호하며, 보름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보름달을 끄실려 풍년의 기원’을 담은 집단놀이이다.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별 읍면별로 청년회, 부녀회 등 지역사회단체 주관으로 ‘달집태우기’행사로 정착됐다.

◇정월보름서 이월초하루까지 ‘여성해방구’…여성중심 집단놀이 성격이 강해
울진지방 해촌의 아낙들은 정월보름 저녁이면 마을 앞 ‘불가(백사장)’에서 ‘망아지띠기’, ‘남대문열기’의 단락을 가진 ‘달넘세’ 놀이를 즐겼다. 달넘세는 인근 안동이나 영덕지방에서 전승되고 있는 ‘지에밟기’나 ‘월월이청청’과 같은 강강술래유형의 여성놀이로서 울진지방에서는 주로 해촌에서 왕성하게 전승됐다.

▲ 손병복 울진군수가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술잔을 올렸다. ⓒ울진군
▲ 손병복 울진군수가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술잔을 올렸다. ⓒ울진군

빠르고 경쾌한 노랫가락과 역동적인 몸동작이 담긴 게 특징이다. 보름달 저녁에는 ‘소 밥먹이기’라는 민속이 치러지며, ‘보름달 저녁에 소가 나물을 먼저 먹으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들고, 밥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든다’고 전해지고 있다.

동해연안 해촌에서는 세습무가 주재하는 대규모 굿판이자 축제판인 ‘동해안 별신굿’이 치러지며, 별신굿은 울진을 비롯한 동해 연안 해촌에서 주기적으로 어촌 중심의 ‘대동제의’이자 신명나는 마을 대동축제이다.

정월보름 세시 중 망월이나 줄댕기기 따위의 농촌 중심의 놀이라면 달넘세와 별신굿은 해촌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정월보름이 끝나면 아낙들이 웃가줏대를 붙잡고 운다”는 향언이 전승되듯이 정월대보름과 2월 초하루날 영등제가 끝나면 아낙들은 1년 내내 밭농사와 해사(海事)에 매달렸다.

정월보름가 이월초하루 영등맞이를 기점으로 농어촌은 눈코뜰새 없는 노동의 세계로 들어가며 동해 연안 마을의 정월보름세시는 동제를 제외하고 대부분 여성 중심의 놀이로 구성돼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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