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독 규모의 죽장연.ⓒ죽장연
▲3천독 규모의 죽장연.ⓒ죽장연

'콩, 물, 소금’ 전통 된장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재료 세 가지다. 재료의 가짓수는 지극히 적지만 정성과 세월을 쏟지 않으면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된장은 그래서 한국인의 정서를 빗댄 음식이라 한다.

좋은 재료와 무한한 정성 그리고 천일(千一)의 시간, 된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십수가지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제일 먼저 콩으로 메주를 만드는 작업부터다. 메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콩을 가져다가 깨끗하게 씻고 불려야 한다.

불린 콩은 가마솥에 넣어 2시간동안 팔팔 삶는다. 이후 뜸을 들인 뒤 잘 삶아진 콩을 네모난 모양으로 만든다. 메주를 성형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메주는 하루 동안 건조해 딱딱하게 굳게 한다.

지푸라기를 준비한다. 깨끗한 것만 가져다가 메주를 묶을 때 쓰는데 이를 각시라고 부른다. 어느 정도 마른 메주를 각시로 엮어 1차 발효를 시킨다. 이때 40~50일의 발효 시간이 필요하다.

2차 발효도 필수다. 이때는 각시를 제거한 메주에 거적을 깔고 메주를 올려놓은 뒤 다시 거적을 엎고 황토방에서 20~25일의 발효를 거쳐야 한다. 옛날 처마 밑에 말려 놓은 메주를 아랫목으로 옮겨와 이불을 덮어놓는 원리와 같다고 볼 수 있다.

▲3천독 규모의 죽장연.ⓒ죽장연

좋은 메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곰팡이가 피어야 한다. 흔히 떠올리는 곰팡이가 아닌 유익한 곰팡이가 필요하다. 깨끗한 위생에 알맞은 온도와 습도 즉 좋은 환경에 피는 유익한 곰팡이가 있어야 잘 발효된 메주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잘 발효된 메주는 깨끗하게 씻어 소금물과 함께 장독에 들어갈 준비를 마치게 된다. 그전에 장독 역시 볏짚에 불을 지펴 내부를 소독하고 묵혀있었던 냄새를 제거해 새로운 메주를 받아들일 단장을 한다.

장을 담글 때는 시기도 잘 지켜야 한다. 음력으로 정월 즉 양력으로 2~3월이 되는데 장을 담고 난 두 달, 정확히 60일 뒤에 장을 가른다. 메주의 유익한 곰팡이들은 발효가 되면서 소금물과 메주와 함께 흘러나온다.

이 때 나오는 갈색물이 짠 장 즉 간장이며, 남은 고형물이 되직한 장 즉 된장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된장과 간장을 가르는 작업이 장 가르기다. 장을 가르면 이제 숙성을 시킴으로 마무리 되는데 애석하게도 손을 놓을 수 있는 순간은 없다.

햇살 가득한 곳에 옹기를 두고 매일 닦아내며 자리한 곳의 잡초를 뜯어야 한다. 옹기에 바람이 잘 통하게 해 숨을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2년을 더 기다려야 만이 장을 맛볼 수 있다. 드디어 전통 된장이 탄생한 것이다.

포항에도 이러한 전통 된장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사리에 위치한 ‘죽장연’은 전국에서도 손에 꼽는 대표 장원이다. 죽장연은 이름처럼 죽장면에서 10년 넘게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죽장연 정연태 대표가 죽장면 상사리와 인연을 맺은 지는 어느덧 23년, 모기업인 영일기업이 죽장면 그 가운데서도 오지마을 상사리와 자매결연을 맺고 화합해오다 함께 담근 장을 맛본 그 순간이 지금의 죽장연을 있게 했다.

좋은 콩과 깨끗한 물 그리고 착한 심성의 주민들이 만든 장, 당시 영일기업은 “이렇게 맛있는 장을 세상과 함께 나누자”는 생각이 꿈틀거렸고 이를 정연태 대표가 뜻을 받들어 현재의 3천독 규모 죽장연을 세운 것이다.

죽장연의 핵심가치는 ‘전통장 위의 전통장’이다. 전통 방법에다 최고의 품질, 최대의 정성을 담았다. 정 대표는 “죽장연의 전통장은 죽장지역에서 자란 재료로 정직하고 바르게 담갔다”며 죽장연 제품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췄다.

▲건조 중인 죽장연 전통 된장.ⓒ죽장연

포항지역 우수 농산물 및 가공품에만 새길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영일만친구’에도 이름을 올린만큼 죽장연은 죽장지역에서 나오는 콩과 구암산 계곡 지하 200m에서 뽑아내는 천연암반수로 장류의 질을 한층 높였다.

죽장연이 죽장면 상사리만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해발 450m 고지대 청정지역, 태백산맥에 위치해 쉴 새 없이 불어오는 골바람과 동해의 바닷바람, 여기에 더해 높은 일교차와 뚜렷한 사시사철은 장의 발효와 숙성을 더하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전국 어디를 돌아다녀도 죽장면 상사리와 같이 장류를 담가 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은 없다”며 “더위와 추위가 분명할수록 장의 풍미는 다양해지며 맛의 깊이 또한 더해진다”고 말했다.

죽장연은 더욱 품질 좋은 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재료에 집중했다. 죽장지역 콩과 구암산 계곡 천연암반수에 이어 3년간 간수를 뺀 신안천일염을 사용한다. 그 밖에 화학조미료나 색소, 방부제는 전혀 넣지 않는다.

어우러지는 도구 역시 최상의 것만 사용한다. 무쇠로 만든 가마솥과 참나무 장작, 황토방 모두 전통 된장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자존심이다. 장이 가장 오랜 기간 머무는 옹기는 그 중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

무형문화재인 청송 이무남 옹기장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숨 쉬는 옹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중에서도 죽장연을 존재하게 한 근본은 맘씨 좋은 상사리 주민이다. 이들이 직접 명인이 되어 죽장연의 처음과 끝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죽장연과 함께 일하시는 상사리 주민들께서는 단순히 기업이 지역사회에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차원이 아니다”라며 “실제로 그분들께서 착한 마음과 베테랑의 실력으로 장을 담갔기에 지금의 죽장연을 있게 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최고의 품질로 탄생한 죽장연의 전통장은 포항을 넘어 전국으로, 전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특히 한식의 세계화가 가속화되는 현 시점에 정현태 대표의 어깨도 무겁다.

마케팅 전문가이기도 한 정 대표는 전통장의 현대화·세계화를 위해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된장을 와인과 같이 숙성 연도에 따라 연산을 매기는 방식의 ‘빈티지화’는 참신하고도 성공적인 시도였다.

정 대표는 똑같은 방식으로 만든 된장이라 하더라도 그해의 날씨나 환경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점을 발견, 이를 상품화했다. 실제로 2011년산은 깊은 맛이 강하고 2012년산은 신 맛이, 2013년산은 짠 맛이 강하다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빈티지화는 셰프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요리는 특성상 재료의 조그마한 맛 차이로도 크게 좌지우지될 수 있는데 빈티지화를 통해 된장의 성질이 어느 정도 정형화되는 효과를 가져오면서 고객들에게 일정한 맛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발표 중인 죽장연 전통 된장.ⓒ죽장연

정 대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밀키트를 통해 죽장연의 된장과 고추장을 더욱 알려나갔다. 밀키트 전문회사 프레시지와 콜라보해 된장은 두부강된장 케일쌈밥, 우렁강된장과 곤드레밥으로, 고추장은 오징어 제육불고기와 얼큰 파스타로 변신시켰다.

밀키트를 선호하는 젊은이들의 반응이 뜨겁다. 한 누리꾼은 “한식 레스토랑 등 미쉐린 스타 셰프들이 사용하는 죽장연 제품이 밀키트에 들어가 더욱 기대가 된다”며 “고품격 브랜드로 일반 밀키트와 차별화된 점이 더욱 눈에 띈다”고 입을 모았다.

죽장연은 또 스프레드(잼류)까지 만듦으로써 차별화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잼 형태인 스프레드는 트러플치즈된장, 고추장아몬드, 갈릭된장으로 빵이나 비스킷과 어울리도록 구성돼있어 젊은층과 세계인의 입맛을 노리고 있다.

죽장연의 변화는 끝이 없다. ‘나만의 항아리’ 시스템을 개발, 일반인들도 개인 장독을 분양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분양된 장독은 죽장연에 3년 동안 특별 관리되며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 나만의 장을 배송 받을 수 있다.

이미 미쉐린 스타 셰프들은 이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뉴욕 ‘단지’의 후니킴 셰프, 샌프란시스코 ‘베누’의 코리리 셰프, 서울 ‘가온’ 김병진 셰프, 서울 ‘밍글스’ 강민구 셰프도 개인 장독이 있으며 현재 이러한 장독들만 100개에 달하고 있다.

▲죽장연의 봄.ⓒ죽장연

죽장연만의 훌륭한 제품과 신선한 마케팅은 해외에서도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세계 6개 와이너리 CEO이자 전 세계적으로 300명에 불과한 마스터 소믈리에 자격을 갖고 있는 칼튼 맥코이가 직접 죽장연을 찾기도 했다.

그가 이끄는 ‘노매드 위드 칼튼 맥코이’라는 방송은 미국 CNN의 식도락 여행 프로그램으로서 한국의 대표 음식을 찾는 과정에서 죽장연이 소개된 것이다. 포항에 자리 잡은 하나의 장원이 세계적으로 뻗어나간 순간이다.

그 결과 현재 국내에서는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AK플라자, 반얀트리 호텔 등 다수 업체와 해외에서도 미국 뉴욕 레스토랑 단지, 일본 한식레스토랑 처가방, 홍콩 명가 등 죽장연을 찾으며 국내외에서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자연과 세월 이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았습니다” 죽장연을 가장 잘 표현하는 한 줄의 문장이다. 이 문장 안에는 좋은 재료, 애환 서린 눈물, 구슬 같은 땀방울 그리고 인내의 시간 등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

포항시 북구 죽장면 그 가운데서고 작디작은 오지마을 상사리, 20여년 전 하나의 기업과 하나의 마을이 꿈꿔왔던 “이 장을 세상과 함께 나누자”라는 말이 이제는 현실이 됐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그래서 된장은 매력이 있다”고 말하는 죽장연의 정연태 대표. 그의 말처럼 오랫동안 전통장을 세계에 알림으로 포항과 한식의 매력을 널리 전파하는 죽장연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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