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중엽 인간제물 된 신장 135㎝ 女
2017년 국내 첫 사례 발굴처 인접
왜소한 20대 성인 여성으로 추정
장신구 있지만 고급유물은 없어
낮은 신분의 인물 희생 가능성 커

▲ 경주 월성에서 나온 성인 여성 인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경주 월성 성벽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인골이 4년 만에 또다시 나왔다. 경주 월성은 신라시대 왕성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인골이 발견된 곳은 2017년 국내 최초의 인신공양 사례로 알려져 화제를 모은 50대 남녀 인골 2구 발견 지점으로부터 불과 50㎝ 떨어진 곳으로, 신라인이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치른 의례 행위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7일 월성 서성벽 문터 주변 발굴조사를 통해 4세기 중엽에 인신공양으로 희생된 신장 135㎝ 전후의 왜소한 성인 여성 인골과 동물 뼈, 토기를 출토했다고 밝혔다.

20대 전후에 사망한 것으로 짐작되는 인골은 얕은 구덩이를 판 뒤 안치했으며, 위에는 풀과 나무판자를 덮었다.

상반신이 하반신보다 조금 낮은 상태였고, 목은 부자연스럽게 꺾여 있었다. 저항 흔적이 없어 사망한 뒤 묻은 것으로 판단됐다.

인골은 굽은옥 모양의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했다.

왼손 손가락 사이에서 복숭아씨 한 점이 나왔고, 머리맡에서는 토기 2점이 포개진 채로 확인됐다. 큰 토기에 작은 토기가 들어 있었고, 큰 토기에는 절반가량 흙이 있었다.

동물 뼈는 말·소·사슴·멧돼지 등 덩치가 큰 포유류 유체로 분석됐다. 완전한 형태의 개체가 아니라 늑골 부위만 해체해 묻은 점이 특징으로, 의도적으로 절단한 자국이 남은 늑골도 있었다.

이러한 인골 특징과 매장 양상은 4년 전 조사된 인골들과는 다소 다르다. 2017년 당시 신장 165.9㎝인 남성 인골은 똑바로 누워 있었고, 153.6㎝인 여성 인골은 곁에서 남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물 뼈나 장신구는 없었고, 남성 인골 발치에서 토기 4점이 나왔다.

다만 조사단은 치아와 골격을 살피면 인골 3구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고 고급 유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신분이 낮은 인물들이 희생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장기명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성벽의 중심 골조 가장자리에 맞춰 평행하게 시신을 둔 점이나 문지 근처라는 위치를 볼 때 계획적으로 인신 제사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며 “성벽이 무너지지 않기를 기원하거나 문으로 지나다니는 기운을 잡기 위해 제의를 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골을 덮은 토층 높이는 50∼70㎝ 정도밖에 안 된다”며 “50대 인골 2구가 먼저 묻히고 여성 인골이 거의 연속적으로 매장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연구소는 인골 2구 조사 전해인 2016년 같은 장소에서 찾은 5세 전후 유아 인골도 제물로 묻혔을 확률이 높다고 봤다. 이를 통해 제물이 된 사람의 연령과 성별, 체격이 다양했음이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이와는 별개로 이번 조사 지점으로부터 약 10m 떨어진 곳에서 1985년과 1990년에 조사하며 수습한 출처 불명의 인골 20여 구는 인신공양의 결과일 가능성이 있으나, 출토 정황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아 단정하기 어렵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장 연구사는 “성벽 축조 과정에서 20여 구가 들어간 것은 확실하다”며 “연구 결과를 꾸준히 재검토해서 의미를 유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라의 월성 성벽 인신공양은 국내에서 나타난 유일한 사례로, 제방을 쌓거나 건물을 지을 때 사람을 주춧돌 아래에 매장하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인주 설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에서는 상나라(기원전 1600∼기원전 1000년께) 시기에 성벽 건축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쓰는 풍속이 유행했다고 전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사’에 충혜왕 4년(1343) 인주 설화와 관련된 유언비어가 항간에 돌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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