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지난달 31일에 개막된 문경시 2021년 특별기획전 ‘나의 고향, 문경의 문화’가 전시된 옛길박물관을 찾아 이곳에 소장된 유물인 ‘사근도형지안(沙斤道形止案)’과 ‘문경옥소고(聞慶玉所稿)’를 살펴봤다.
특히 ‘사근도형지안’, ‘문경옥소고’와 문경의 ‘출토복식’에 들어 있는 오묘한 역사적 가치에 대해 심층 취재했다.
▲사근도형지안(沙斤道形止案)
한국한자어사전에 따르면 형지안은, ‘사실의 전말을 기록한 문서’ 또는 ‘노비의 내력을 기록한 관아의 문서’로 형지기(形止記)라고도 칭한다.
특히 역과 관련해 역참에 소속된 역리(驛吏), 역노비(驛奴婢) 등 역인(驛人)을 관리하기 위해 일반 군현의 호적과는 별도로 작성한 인명장부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역 관련 형지안은 김천도형지안(金泉道形止案:김천), 자여도형지안(自如道形止案:창원), 송라도형지안(松羅道形止案:포항) 이외에는 사근도형지안이 유일하다.
사근도는 사근역(함양), 임수역(안음), 제한역(함양), 안간역(진주), 유린역(삼가), 벽계역(단성), 신흥역(의령), 정곡역(산음), 신안역(단성), 정수역(진주), 소남역(진주), 마전역(하동), 율원역(하동), 횡포역(하동), 평사역(하동) 등으로 구성돼 있다.
속표지에 ‘건륭십이년시월일사근도형지안(乾隆十二年十月日沙斤道形止案)’으로 기록돼 있어, 1747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작성자는 사근도 찰방을 지낸 이인상(李麟祥)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근도형지안의 형태는 가로 61cm, 세로 63cm이며, 사주단변 30행으로 모두 98매로 구성돼 있다. 각 장마다 관인(지방관인으로 추정)도 찍혀있다.
내용을 보면, 15개 각 역의 역리, 역노역비, 일수(日守:지방 관아나 역에 속해 잡무를 보던 벼슬아치) 5000여 명의 호구(戶口)편성과 역민(역리, 역노, 역비, 일수)의 이름, 나이, 4조이름, 외조이름, 거주지명이 기재돼 있다.
또 맨 끝 말미에 도이상조(都已上條)라 하여 전체 통계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사근도형지안은 지난 2015년 옛길박물관에 수집돼, 2016년 DB(데이터베이스)화가 완료됐고, 2017년 학술대회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2월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532호로 지정돼, 현재 옛길박물관에서 보존하고 있다.
▲문경옥소고(聞慶玉所稿)
‘문경옥소고’는 옥소 권섭(1671~1759, 본관:안동, 자:조원, 호:옥소)선생의 필사본 문집으로 한양의 유목한 명문 사대부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20대 이후, 문예활동에 전념해, 무명옹(無名翁), 천남거사(泉南居士), 옥소산인(玉所山人), 백취옹(百趣翁) 등을 썼다.
특히 중년 이후 문경 화지동(現 문경시 문경읍 당포리)에 살면서, 보고 들은 바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많은 저작을 남겼다. 이것이 옥소집(玉所集) 13권 7책과 ‘옥소고(玉所稿)이다.
옥소 권섭(숙종~영조때)이 작품활동을 하던 때는 성리학 이념에서 벗어나 실학이 대두하는 시기로서 예술도 겸재 정선으로 대표할 수 있는 ‘진경산수(眞景山水)’가 유행하는 시기이다.
이 시절의 옥소의 작품은 좀 특이한데, ‘옥소고’에 실린 ‘기몽설(記夢說)’ 작품을 보면, 도교나 불교에 너그러운 태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에 심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옥소고는 문경본과 제천본이 있다. 제천본은 필사본 2종과 석인본 1종이 있는데 그 중 옥소의 장남인 초성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46책이 2015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64호로 지정됐다.
문경본은 문경읍 당포리의 안동권씨 시중공파 화천군연잠공 문중이 옛길박물관에 기탁한 17책(시(詩) 4책, 문(文) 2책, 문답(問答) 1책, 유행록(遊行錄) 2책, 잡저(雜著) 1책, 잡의(雜儀) 1책, 사고(私稿) 1책, 사집(私集) 2책, 추명지(推命紙) 1책, 붕유창수(朋遊唱酬) 2책)이 2020년 12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54호로 지정됐다.
이와 별개로 옛길박물관이 유물수집 과정에서 1책을 더 수집해, 현재 옛길박물관에는 모두 18책이 소장돼 있다.
▲문경평산신씨묘출토복식(聞慶平山申氏墓出土服飾:국가민속문화재 제254호)
지난 2004년 3월 12일, 문경시 산양면 연소리에서 400년 前 미라가 발굴됐다.
이것은 평산 신씨로, 장수황씨(長水黃氏) 황지와 혼인해, 슬하에 두 남매를 뒀다. 훗날 딸을 안동김씨 문중에 출가, 사위 집안에서 외손봉사를 해왔었다.
미라와 함께 많은 유물들이 수습됐는데, 이 유물은 모두 옛길박물관에 기증돼, 소장하고 있다.
수습된 유물은 저고리, 치마, 바지, 단령(團領:조선시대 관리들의 관복)등 복식을 비롯해, 습신, 악수, 현훈 등의 염습구(殮襲具:수의를 제외한 여러 가지 도구와 시신을 관에 안치할 때 사용하는 수의 용품) 및 치관류 등 70여점으로 보수·보존 처리과정을 거쳐 보관하고 있다.
수습된 복식 중 특이점은 전체적으로 직금단(織金緞:비단 바탕에 금실로 무늬를 짜 넣어 만든 직물)이 사용된 금선단(金線緞)치마인데, 매우 화려하고 독특한 유물로 복식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이다.
평산 신씨묘 출토복식은 조선전기 복식의 구성과 직물연구에 사료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400년간 이어온 독특한 외손봉사의 전통과 16세기 문경 일대 향촌사회사를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11건 12점이 2007년 10월 국가민속문화재 제254호로 지정됐다.
▲문경최진일가묘출토복식(聞慶崔縝一家墓出土服飾:국가민속문화재 제259호)
2006년 9월 16일 아침, 문경시 영순면 의곡리 도연마을, 전주 최씨 문중의 이장 작업 과정에서 최진과 부인, 그 아래쪽에 있던 전주 최씨 문중 구성원(미정)의 묘 등 3곳에서 65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최진 묘 26점, 부인 묘 34점, 묘주 불확실한 묘 5점 등 모두 65점이 나와, 보존처리를 거쳐 문경시에 기증됐고, 현재 옛길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특히, 이중에서 '중치막(中致莫)'과 족두리형 ‘여모(女帽)’는 현존 발굴된 출토복식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치막’은 사대부가 외출 시 착용하던 옆트임이 있는 곧은 깃의 도포로, 현재까지 발견된 것은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의 것이었으나 최진 일가 묘 출토복식의 중치막 발견으로 임진왜란 전 중치막의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이 시기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족두리형 여모는 정수리 부분에 원형조각이 있어 족두리 초기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4월 훼손이 심한 6점을 제외한 59점이 ‘문경 최진 일가 묘 출토복식’ 이라는 명칭을 갖고 국가민속문화재 제259호로 지정됐다.
이 자료는 16세기 중후반기 남녀 복식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 이미 지정된 '문경 평산 신씨묘 출토복식(국가민속문화재 제254호)'과 함께 당시 지역의 사회문화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 수
2013년부터 문경시는 (사)한국서학회와 함께 ‘세상의 모든 아리랑 노랫말’모으기 사업을 시작한 결과, 노랫말 1만68수를 수집, 이를 선별하는 작업을 거쳐 국내 최고의 서예가 120명이 7천장의 문경 전통한지에 500일 동안 기록해 제작한 것이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수" 51책이다.
또 문경시에서는 ‘일만 수’를 도서로 편찬해 보급하는 사업도 펼치고 있다.
이와 함께 ‘아름다운 한글서예 아리랑전’, ‘국립한글박물관 순회 전시’를 개최해 한글사랑 사업을 전개했고, 결혼이민여성을 위한 한글 교육사업, 어르신 한글 교육 및 청춘학당 한글 교실 운영 등 다양한 한글사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2016년 한글날에는 음악의 아리랑을 한글과 서예로 접목해 한글보급에 기여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옥소고’는 1997년 안동권씨 시중광파 화천군연잠공 문중 옥소고 17책을 기탁, 2003년 8월 14일 이창희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옛길박물관의 책 9집 ‘내 사는 곳이 마치 그림 같은데’를 발간, 15년 후인 2018년 6월 문화재 지정 신청, 2020년 1월 문화재 지정조사 후, 2020년 12월에 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23년의 긴 여정의 시간을 거쳐 얻어낸 값진 수확물이다.
‘사근도형지안’은 2015년 옛길박물관 유물을 수집하고, 2016년 DB작업 실시, 2017년 6월 9일 사근도형지안 학술대회 개최, 2017년 12월 옛길박물관의 책23집 ‘1747년 사근도역 사람들’ 발간, 2017년 7월 문화재 지정신청, 2018년 문화재 지정조사후 4~5년의 연구와 준비를 통해 2019년 3월에 문화재로 지정됐다.
고윤환 문경시장은 “이곳 옛길박물관은 옛길관련 문화유적의 이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길’로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는 문경의 문화적 정체성을 잘 나타내기 위한 역사적 가치가 잘 보관돼 있는 우리 문경이 자랑하는 역사가 담긴 곳”이라고 말했다.
조영득 담당자(학예연구사)는 “향후 박물관은 다양한 주제의 전시 콘텐츠를 개발, 관람객에게 제공하고, 소장 유물의 문화재 지정도 적극 추진해, 유물보전에도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