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규 한국교수작가회 부회장

아내는 눈이 동그래서 침상에 바싹 붙어 앉는다. 자기가 왜 리반의 의식에 들어와 있는지를 묻는 것으로 들린다. 그냥, 그 이름이 떠올랐을 뿐인데 이 말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이렇게 누워서 마치 꿈꾼 것 같은 일들이 모두 실제로 일어났다니! 리반 자신은 초능력자도 아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당신이 말한 최슬아라는 처자가 그 여자예요?”

리반은 대답을 못 한다. 이상했다. 그 사고가 난 비슷한 시간에 교통사고가 났다. 아내가 소식을 듣고 이 병원으로 오는 동안에도 사고 뉴스를 계속 방송했고, 며칠간을 방송들이 생방송으로 중계했다고 한다. 리반은 그때부터 의식 불명으로 이 병원에 누워 있었다. 꿈을 꾼 것이 아니다. 아무도 모르게,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이 병실을 벗어나 붕괴한 빌딩 속에 갔다는 말인가? 아니면 몸이 두 개여야 한다. 의식 따로 몸 따로 분리되어 활동했어야 말이 된다. 손목까지 소름이 타고 흐른다.

“조태호 씨와 최슬아는 따로 구출되었지?”

리반이 묻는다. 그냥 물어본 것인데 아내의 표정이 뜨악하다.

“최슬아가 위치를 알려줘서 조태호 씨를 구출했다고 했어요. 최슬아가 먼저 구출되었어요. 맞아요. 아니, 이제까지 의식을 잃었던 당신이 어떻게 그 사람들 일을 그리 잘 알아요? 다 들리던가요”

남편의 말이 헛소리로 들렸을까. 그녀는 결국, 더 묻기를 포기했는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퉁명스레 말한다.

“당신 아무래도 이상해요. 정신 치료라도 받아야 하나 봐요.”

아니다. 얘기가 그리로 흐르면 안 된다. 리반은 목청을 키운다.

“멀쩡해!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만있어 봐요.”

“아홉수가 안 좋데요. 당신 올해 조심해야 해요.”

“알았어. 가만, 이제 좀 가만있어 보래도.”

리반은 손사래를 치며 눈을 감는다. 토레스 앞에서부터 기억을 되짚어간다. 사고 순간과 토레스 몰 붕괴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으나 리반은 그곳에 있었다. 엉킨 실 가닥이 풀리듯 조금씩 기억이 되살아난다. 건물이 무너진 속에서 최슬아와 대화를 나눴는데 그 시간에 자신의 몸은 이 병원 침상에서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몸이 둘이어야 가능한 얘기다. 그렇다! 조태호가 답이다. 사고현장에서 리반 자신은 조태호라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신은 허물만 이곳에 있었다. 조태호라는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왔었다고 하니, 그 사람은 자기와 얼굴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건 엉터리 같은 추론이지만 그래야만 얘기가 된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최슬아 말인데…….”

“네? 최슬아나 조태호, 두 사람 다 화면에서는 흙 범벅이었어요.”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계속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 들릴 것이다. 리반은 얼른 입을 단속한다. 이야기를 계속할수록 자기만 이상한 사람이 되리라. 어쩌면 정신병원으로 보내질지도 모른다. 혼자 풀어야 한다. 퇴원하면 먼저 조태호부터 만나야 하겠다. 그 사람이 이 세상 사람일까? 사고는 확실히 있었고, 조태호나 최슬아도 아내가 알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윤채영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가 느닷없이 나타나면서 많은 일이 태풍처럼 몰아쳤다. 채영이 무사해서 다시 만난다면 이 모든 의문을 공유할 수 있으려나.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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