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 명예교수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이 자주 일어나고 세계적인 이슈가 되자 이를 규제하기 위한 국제 협약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코코 투기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1989년 3월 22일 스위스 바젤에서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을 규제하기 위한 국제 협약이 채택되었다. ‘바젤협약(Basel Convention)’이라 불리는 이 협약은 1992년 발효되었으며 우리나라는 1994년 비준했다. 이 협약의 주요 내용은 규제 대상 폐기물의 종류를 명시하고 수출입에 관한 규약 및 책무를 정하며, 수입국과 수출국, 통과국에 이르기까지 유해 폐기물 이동 시 사전에 통보해 동의를 얻도록 의무화했다는 점이다. 바젤협약은 궁극적으로 유해 폐기물의 발생을 최소화하고 자국에서 발생한 유해 폐기물은 스스로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이 협약은 유해 폐기물을 환경친화적인 방법으로 처분할 만한 능력이 없는 국가에 보내는 것을 철저히 규제하고 있다.

1997년 국제사회에서 큰 이슈가 된 대만 핵폐기물의 북한 반입 시도도 바젤협약의 규제 대상이다. 당시 대만과 북한은 2년에 걸쳐 총 20만 배럴에 해당하는 핵폐기물을 황해북도 평산 지역의 폐광에 매립할 계획이었다. 이 폐광은 갱도가 무계획적으로 개발되어 있어 지하수 오염에 노출되어 있고 지질 구조상 지진의 위험이 큰 곳이었다. 또 20만 배럴의 핵폐기물을 배로 운반할 경우 해상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과 대만 모두 바젤협약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규제할 수단이 없었다. 다행히 이 계획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대와 북한이 경제난으로 대만이 요구하는 핵폐기물 저장 시설을 완공하지 못해 성사되지는 못했다.

유해물질 국가 간 이동을 규제하기 위한 세 종류의 국제협약.
유해물질 국가 간 이동을 규제하기 위한 세 종류의 국제협약.

 

제3세계 투기와 유사한 것으로 선진국에서 생산한 유해 화학물질을 후진국으로 수출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그물질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고 적절한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의 남용과 오용으로 인한 인체와 자연생태계 피해 가능성이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일부 농약은 난분해성이면서 독성이 매우 강해 선진국에서는 자국에서 사용을 금지하는 물질을 생산만 하여 개발도상국에 수출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발도상국에서 이러한 농약을 사용해 생산한 농산물을 다시 선진국이 수입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선진국은 자신들이 생산해 해외에 판매한 자국사용 금지 농약을 수입 농산물을 통해 다시 들여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8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유해 화학 물질 및 농약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이 채택되었다. 이 ‘로테르담협약(Rotterdam Convention)’의 목적은 유해물질을 수입하는 국가가 유해성에 관한 충분한 지식도 없이 이를 사용함으로써 환경과 인체에 유발하게 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이 협약에 따라 유해 화학물질을 수출하는 국가는 수입국에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고 사전에 동의를 구해야 하는 사전승인원칙(PIC: Prior Informed Consent)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로테르담협약은 1998년 채택되어 2004년에 발효되었으며 우리나라는 2003년에 비준했다. 이 협약은 농약과 산업용 유해물질 총 37가지를 규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

유해물질의 국가 간 이동을 규제하기 위한 또 다른 국제협약이 2001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채택되었다. ‘스톡홀름 협약(Stockholm Convention)’은 난분해성 유기오염물질(POPs: Persistent Organic Pollutants)로 인해 초래되는 인체 및 환경에 대한 위해를 감소시키기 위한 것으로, 다이옥신, 디디티, 퓨란 등 더러운 12가지(Dirty Dozen)라 불리는 난분해성 물질을 규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 분해될 때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 이러한 물질은 일단 자연계에 방출되면 전 지구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국제적 협약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2004년 발효되었고 우리나라는 2002년 비준했다.


실제로 바젤협약 이후 국가 간 유해 폐기물 이동은 크게 줄어들었다. 로테르담협약을 통해 자국에서 사용 금지된 유해 화학물질을 생산해 타국에 판매하는 행위에는 보다 강력한 규제가 가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앞서 북한과 대만의 핵폐기물 거래에서 보듯이 국제 협약은 해당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 또 협약에 참여했다 해도 감시의 눈을 교묘히 피해 일어나는 국제적 환경 범죄는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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