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규 한국교수작가회 부회장

“제발 다른 후유증이나 없어야 할 텐데요. 아버님도 첫날 다녀가셨어요.”

“안 그래도 복잡하신 분인데. 다른 좋은 소식은 없었고?”

“억지로 생사람 잡아넣으려니 쉽겠어요? 아버님도 나도 그 걱정은 안 해요. 시민단체에서 두 눈 부릅뜨고 지키고들 있어요.”

장인 문제에 아내는 언제나 당당하다. 지금도 잠깐 표정이 굳어지다 만다. 저 표정은 신혼 초부터 그랬다.

회복실로 옮기자마자 의사는 일반 병실에서 하루만 경과를 본 뒤 퇴원하라 했고, 리반의 아내는 짐을 정리중이다. 일반 병실에는 침대 여섯 개가 모두 찼는데 대부분 외상환자다. 한쪽 구석의 텔레비전에서는 주부들을 모아놓고 누군가가 한참을 웃기더니 광고방송이 나오고 있다. 벽에 걸린 달력은 그새 5월이다.

“의료진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당신은 의식을 못 찾고 있었지만, 뇌파가 새로운 곳을 여행 중일 때나 나타나는 파장이랬어요.”

아내는 어이가 없는지 배시시 웃는다. 여행을 좋아는 해도 이렇게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 여행이라니! 하긴 이렇게 누워만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뉴스에서 토레스 몰 붕괴사고 보도가 나오자 손짓으로 아내의 말을 막는다. 여자 아나운서는 붕괴의 원인으로 지목한 지상 3층의 폭발은 크지 않았으나 내력벽 약화의 진행이 붕괴로 이어졌다며 반일 세력에 의한 테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메시지 발신자를 추적 중이라고 전한다. 마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사람을 뽑아 올리는 것 같은 화면이 나온다. 광목으로 머리까지 덮은 들것은 시신일 것이다. 그 장면에서 리반의 동공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상하다. 저 장면들이 낯설지 않다!’

취재기자가 폐허로 변한 빌딩 잔해를 배경으로 구조된 사람들의 소식을 전한다. 이따금 예전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자료 화면으로 나온다. 처음에는 삼풍 사고를 편집해서 내보내는 프로인가 했으나 볼수록 눈에 익숙했고, 그건 단순한 기시감이 아니었다. 최슬아라는 글자가 자막으로 뜬다. 최슬아! 그 이름이 머리 위에서 맴돈다. 자막과 함께 화면에 나온 얼굴은 더욱 놀랍다. 채영을 닮았다! 리반은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니 빛이 차단된 속에서 보았던 이미지가 또렷해진다. 어둠까지도 익숙하게 다가온다. 어두운 공간에 빛줄기가 스며들 듯 리반의 머릿속 영상이 차츰 열리고 있다.

‘내가 그 속에 있었을까? 어두운 곳에서 본 건물 부스러기들. 내가 주검 가까이에 있었던 건가. 그동안 나는 죽었었나? 아내도 의사도 내가 닷새 동안을 병원에서 이렇게 누워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건물 무너진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곳은 사후세계로 가는 터널이었을까? 저 처자는 채영을 닮았다! 하필이면 예전에 죽은 채영을 말이다!’

리반은 기억의 실타래를 처음으로 되감아 본다. 홀연 채영이 나타났다. 출발점은 채영을 만나러 갔던 토레스 몰 앞이었다. 반가움을 떨쳐버렸던 승용차의 갑작스러운 발진. 차창 너머에 앉아 미소를 보내던 여인. 그녀는 윤채영이었다. 20여 년의 시간을 건너 채영이 생환을 알려왔다. 설레던 만남의 순간에 건물이 주저앉았다. 그 사고 뒤 자신은 계속 이 병원에서, 이 자리에 누워 있었다고 한다. 리반은 닷새를 고스란히 놓쳐 버렸다. 그때, 조태호라는 이름과 토레스 몰 붕괴, 그 매몰의 현장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리반은 TV 화면에서 눈을 못 떼는데, 뉴스화면과 남편의 표정을 번갈아 살피면서 그의 아내는 말도 못 붙이다가 자초지종을 늘어놓는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 리반 자신은 그녀의 차 앞에 엎어져 있었고, 아내는 현장을 못 보았으며, 연락을 받고서야 병원으로 달려왔다고. 가해 차는 범퍼가 조금 들어갔고, 가해 차주는 신사적이었다고 한다.

“여잔 괜찮아?”

리반이 화면에서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여자라니, 웬 여자요?”

아내의 귀가 솔깃한다. 브레이크가 풀려서 리반을 받았고, 차는 빈 차였다. 그곳이 경사가 조금 진 곳이기도 했고. 그런데 차에 여자가 타고 있었다고 하니 이제는 아내의 표정이 사뭇 달라진다.

“때맞추어 토레스 몰이 무너졌으니 정신이 없었을 거예요. 빌딩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 차가 당신한테로 미끄러졌어요. 경찰도 그렇게 말했어요. 여자가 차를 그곳에 잠깐 세워 두었다던데. 아니 당신 혹시 그 여자, 아는 여자예요?”

“……?”

“아는 여자냐고요?”

“당신이 모르는 여자였어?”

“예? 무슨 말이에요?”

“모르겠어. 뭐가 뭔지.”

리반의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표정을 고친다.

“참, 사고가 난 옆의 토레스 몰이 무너졌어요. 삼풍 사고 이래로 가장 큰 붕괴사고래요. 지금 뉴스도 그 얘기예요.”

리반에게는 놀라운 얘기도 아니고, 자신이 그곳에 있었다는 믿음은 더 단단해진다. 채영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가 차 안에 있는 걸 분명히 보았다. 자신이 본 모든 일이 꿈이었을까. 꿈이라면 너무 생생하다. 자기는 누가 뭐래도 건물이 무너진 밑에 깔렸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벽시계의 바늘은 제대로 돌아가는데, 시간을 거꾸로 읽어야만 할 상황이다. 아내가 고개를 갸웃한다.

“당신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퇴원 미루고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려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할까 봐요. 아니면 시티(CT) 촬영을 해 보든지.”

“모르겠어! 이해가 안 돼.”

또 조태호라는 이름이 생각난다. 리반은 조태호를 입으로 중얼거리다가 입을 손으로 막는다. 아내는 그 이름을 알 리가 없다.

“최슬아라고, 들어 봤어?”

그 이름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입 밖에 내놓았지만 역시 리반 자신도 모르는 이름이다.

“최슬아요? 조금 전에 뉴스에 나왔어요. 며칠 만엔가 구조된 처녀, 맞아요. 그 처자!”

“뭐라고?”

그는 머리를 두 손으로 잡는다. 이건 마치 아내가 자신의 의식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도대체 가리사니를 잡을 수가 없다.

“아니 당신, 그 애 이름을 어떻게 알아요? 지금 뉴스에서 들었어요?”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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