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일 바탕경영연구소/티인사이드 대표

보름만에 랩에 돌아왔다. 현관을 열어 환기하고 블라인드를 열었다. 풍죽이를 비롯한 나무들과 다육이 형제들 안부 확인하고 넘치게 물도 줬다. 난초잎 몇가닥이 말라가고 있었지만 다들 안녕하다. 멀티탭 전원을 넣고 튜너, 앰프 전원을 차례로 켰다. 진공관에 불이 들어오고 튜너 시그널도 신호가 들어온다. 이 녀석들도 안녕하군. 전기포트에 생수 반병 까서 넣고 전원을 넣을때쯤 진공관 열이 오르면서 스피커가 울기 시작한다. 운남 다녀 오는 동안 그사이 생생클래식 진행자가 바뀐 모양이다. 생생하고 촉촉한 목소리에서 도톰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물이 끓는다. 운남에서 만들어 온 이른 햇차를 덜어 달그락달그락 내릴 준비를 하는데 손놀림이 경쾌하다. 저절로 흥이 오른 것인지 베인 몸놀림인지 설렘까지 살짝 묻었다. 햇차 향이 싱그럽다. 늘 남보다 늦게 햇차 맛을 보곤 했는데 올해는 찻잎이 막 터지기 시작할 무렵 운남에 있었던 덕에 남보다 일찍 햇차 맛을 본다. 때마침 클래식 FM 라디오에선 차 맛 운율과 어울리는 곡이 흘렀거나 도톰 따뜻한 DJ 목소리가 배경으로 소복하게 깔렸던 것 같다. 나는 오래된 튜너와 앰프, 그리고 더 오래된 스피커로 클래식 FM 듣는 것을 참 좋아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랩에서는 종일 라디오가 켜져 있다. 클래식 FM을 켜놓는 이유는 음악을 듣기 위한 것도 있지만 진행자들의 목소리 듣기 위함이다. 나이 든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그들 목소리는 촉촉, 따뜻, 포근한 위로여서 좋다.

프로그램 막간에 ‘FM 라디오를 즐기는 스마트한 방법’이라며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설치하면 전 세계 어디서나 FM 라디오를 즐길 수 있고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참여할 수 있으며 신청 곡을 요청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애플리케이션으로 라디오 듣는 것이 스마트한 방법이라면 나처럼 오래된 방법으로 라디오를 즐기는 것은 스마트하지 않다는 거지! 괜스레 심통이 났다. 트집 잡으려고 ‘smart’ 반의어를 찾아보니 ‘후줄근’, ‘유행에 뒤떨어지는’ 이런 단어를 추천한다. 이미 내 핸드폰엔 그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되어 있고 블루투스 리시버를 통하거나 블루투스 스피커, 블루투스 이어폰…이조차도 여의찮을 땐 내장 스피커로 라디오를 듣곤 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많은 장치 들을 성가시게 다 가지고 있다는...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고만고만한 식구수만 무한정 늘어난다. 이 식구들은 촉촉, 따뜻, 포근한 위로 따윈 결코 건내는 일이 없다.

랩에서는 실내안테나를 사용하는데 수신율이 좋을 때는 선명하고 맑은소리를 뽑아내지만 이런 날은 그렇게 많지 않고 대부분은 ‘치지직 지직 치직’ 노이즈가 낀다. 한번은 손님이 이 소리가 거슬렸던지 스마트폰으로 들으면 깨끗하게 들을 수 있다고 조언해 주기도 했다. “저는 이 소리도 음악으로 들려요. 이 소리를 요즘 어디서 듣겠어요. 좀 있으면 듣고 싶어도 못 들을지도 모를걸요.” 랩을 처음 열었을 때 테이블이나 다기보다 먼저 가져와 설치한 것이 오디오다. 공간에 오디오가 없는 풍경은 삭막하고 건조하기 짝이 없다. 걱정 반 염려 반 라디오 주파수를 잡았더니 감도가 좋지 않았다. 수신 감도를 높이려고 처음 몇 달은 고민하고 노력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노이즈가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들을 수 없을 만큼 심한 것은 아니기도 했거니와 때때로 강약을 조절하면서 들리는 노이즈가 살아 있는 것의 몸짓 같다고 생각했다.

스마트한 세상이 물밀듯이 밀려올 때 ‘라디오’는 생명이 다한 문명이라고들 말했고 누구도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곧 사라질 것 같던 문명은 무지막지하게 발전해가는 스마트 세상에서 분명하고 선명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오히려 발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용 애플리케이션, 보이는 방송, 다시 듣기(보기) 등 스마트한 방식을 통섭하며 진화하여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했다. 아날로그를 버리지도 않았다. 라디오를 유통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다양해졌으나 라디오가 가지는 본연의 방식(또는 가치)은 변하지도 버리지도 않았다.

애플리케이션, 유튜브 등을 통해 이어폰으로 블루투스 리시버로 블루투스 스피커로 클래식 FM을 가끔 때때로 어쩔 수 없이 들을 때가 있지만 대부분은 튜너로 듣는다. 일단 소리의 질감, 온도, 느낌 등이 스마트한 방식으로는 ‘후줄근한’, ‘유행에 뒤떨어지는’ 방식을 따라오지 못한다. 여기에 ‘갬성’까지 한 숟가락 곁들이면 끝이다. 덧붙이자면 스마트한 방식이라고 하는 것들은 사람을 귀찮게 하고, (안해도 되는) 공부하게 하고, 주기적으로 주머니를 털어간다. 그러니까 경제적이지도 편리하지도 간편하지도 않다. 결정적으로 인간을 시스템에 종속시켜간다. 주도성을 거세시켜 가는 것이다. 따라오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매우 불편한 느낌을 조장한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본 사람은 이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안다. 반면 불편하고 귀찮고 복잡하다고 느끼는 구닥다리 방식은 우리를 최대한 주도적으로 만들며 주머니 여는 일을 기쁨으로 만든다. 한번 배워 놓거나 한번 구축해 놓으면 더 배울 것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거나 새로 바꿀 필요 없다. 원하기만 한다면 대를 이어 물려 쓸 수도 있다. 고장 나면 고쳐 쓸 수 있고 노력을 좀 한다면 자가 정비도 가능하다. 심지어 직접 제작할 수도 있다. 쓸고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즐거움은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것이다.

나처럼 ‘후줄근한’, ‘유행에 뒤떨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스마트한 방식을 ‘건조한’, ‘차가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 같다. 젊은 시절 한때 누구보다 얼리어댑터였을 필자가 이런 이야길 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차 마시는 일은 아날로그 그대로다. 물 끓이는 정도가 자연에서 전기세대 정도로 옮겨 왔을 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나 스마트한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차를 가공하고 섭취하는 다양한 방법이 개발되었지만 이런 것이야 산업적인 것이어서 여기서 길게 논할 것은 없겠다. 먹고 마시는 것은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것이어서...차 마시는 것도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전통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인들의 쉼과 안식에 차가 점유하는 공간이 늘어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운남 갔다가 어떤 사찰에 들렀는데 불전함이 없어지고 위챗페이 결재할 수 있는 QR코드가 놓여 있었다. 시주받는 일이야 현금이거나 현물이거나 스마트 패이면 어떤가! 스마트한 것은 길이고 목적물…콘텐츠…본질은 아날로그다. 본말이 전도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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