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 명예교수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한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이탈리아인이 나이지리아인과 공모해 1987년 8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총 5회에 걸쳐 이탈리아로부터 3,884만 톤에 달하는 유해 폐기물을 화학제품으로 위장 반입해 나이지리아 벤델주의 코코항에 방치한 사건이 있었다. 반입된 유해 폐기물은 처음에 민간인이 운영하는 코코항의 한 야적장에 방치되어 있다가 이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가 발생하면서 국제 문제로까지 비화했다. 방치된 유해 폐기물에서 나온 침출수로 식수가 오염되고 유독성 가스가 대기로 이동하면서 코코항 인근 주민들에게 각종 질병이 발생했던 것이다.

피해의 원인이 타국의 산업 쓰레기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나이지리아 정부는 이탈리아의 비양심적인 행위를 국제사회에 고발했다. 나이지리아 정부의 강력한 대응에 유해 폐기물은 다시 국외로 반출됐고 폐기물을 실은 선박은 1988년 7월부터 8월까지 바다를 떠돌며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에 입항을 시도했으나, 어느 국가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이 유해 폐기물은 국제 여론과 수차례에 걸친 나이지리아 정부의 외교 교섭을 통해 이탈리아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정부는 오염 지역을 정화하고 환자를 치료하느라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코코 사건 때 유해 폐기물을 실은 배의 이동 경로.
코코 사건 때 유해 폐기물을 실은 배의 이동 경로.

이처럼 선진국이 자국의 유해 폐기물을 개발도상국에 보내는 것을 제3세계 투기(Third World Dumping)라고 부르는데, 당시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이를 외화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85년 한 해 동안 유럽에서 국경을 이동한 유해 폐기물의 양은 무려 300만 톤에 달했다.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도 대량 산업 쓰레기를 해외로 보냈다. 그러나 코코 투기 사건을 계기로 나이지리아는 환경오염으로부터 국토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타국의 산업폐기물을 수입하지 말 것을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호소했다. 그리고 선진국에 대해서는 자국의 이익만을 꾀한 이러한 수출은 더 이상 하지말 것을 촉구했다. 같은 해 아프리카 연합기구(Organization of African Unity)는 타국의 산업 쓰레기 수입 금지를 회원국들에게 촉구했다. 세계은행 역시 유해물질의 국제 거래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차관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과거 선진산업국에서는 유해 폐기물 처리와 처분에 관한 법적 규제가 엄격한 반면, 개발도상국은 극히 미약했기 때문에 선진국의 유해 폐기물을 개발도상국에 반입하는 일이 용이했다. 유해 폐기물을 받아들이는 개발도상국에서는 법적 규제뿐만 아니라 이것이 갖는 위해성에 관한 지식이나 관리 기술도 전무했다. 따라서 유해 폐기물의 위험성은 이를 배출한 국가보다 받아들인 개발도상국에서 엄청나게 증폭된다. 실제로 코코 지역에 살던 나이지리아인들은 유해 폐기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에 방치된 폐기물을 수거하는 일에 동원된 현지인들이 심각한 건강 피해를 입었다. 수거 작업을 하던 150여 명의 나이지리아인들은 폐기물에서 유출된 유독성 화학물질로 인해 구역질과 객혈, 마비 증상을 보였으며, 화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코코 투기 사건의 폐기물을 싣고 바다를 떠돌아다니던 카린호.
코코 투기 사건의 폐기물을 싣고 바다를 떠돌아다니던 카린호.

이 사건과 유사한 사례로는 미국의 키안시(Khian Sea)호 사건을들 수 있다. 1986년 8월, 키안시호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폐기물 소각장에서 나온 재를 싣고 여러 항구를 전전하다가 서인도 제도에 있는 아이티 공화국에 도착했다. 이 재는 카드뮴과 수은이 포함된 유해 폐기물이었다. 키안시호는 이를 비료라고 속이고 부두에 하적하는 도중에 발각되었고 아이티 당국은 화물을 다시 선적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키안시호는 이를 다시 선적하다가 2,000~4,500톤의 재를 아이티 근해에 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이 배는 1년여에 걸쳐 서부 아프리카를 떠돌다 수에즈 운하를 통해 인도양으로 건너갔고 마침내 싱가포르에 입항했다. 그러나 이때 배의 화물창고는 텅 빈 상태였다. 키안시호의 파렴치한 행위는 국제적 비난을 면치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1975년경에 국내 수입상이 일본의 한 업체로부터 처리 비용을 받고 폐유기용제가 포함된 산업폐기물 5,000여 톤을 원자재로 가장해 수입했다. 그러나 세관 통관 과정에서 이 사실이 발각되어 수입상은 처벌을 받았고 수입 폐기물은 정부에서 예비비를 지출해 처리했다. 그런데 부산에서 이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심한 악취가 인근에 퍼져 또 한번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다음화에 계속

저작권자 © 영남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