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 명예교수

현대 인류는 화학물질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중 많은 것이 생활공간을 통해 인체에 항상 접촉되고 흡입될 수 있는 생활 화학물질이다. 급속히 발달하고 있는 과학은 끊임없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고 정부의 허가를 받아 시판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그 물질에 관해 잘 모른다. 대중은 단지 정부가 사용을 허가한 물질이라는 것만 알고 사용하게 된다. 여기에 사각지대가 있다. 정부의 화학물질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생활 화학물질의 문제점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외부로부터 물질이 인체에 들어올 수 있는 주요 경로는 세 가지다. 물과 식품을 통한 소화기관(Ingestion), 공기를 통한 호흡기관(Inhalation), 그리고 피부 접촉(Skin Contact)이다. 같은 물질이 같은 농도로 인체에 들어오더라도 경로가 다를 경우 인체에 주는 영향은 아주 다르다.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가 된 것은 호흡기관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살균제에 들어있던 PHMG, PGH, MCI 등이 호흡기관으로 흡입될 때 나타나는 독성을 검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을 허가한 것이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는 공산품으로 분류되어 있었기 때문에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 관리법’에 따른 일반적인 안전 기준만이 적용되어 피해를 예방하지 못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2013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약칭 화평법)’을 제정했다. 화학물질로부터 국민건강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여전히 허점투성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정부가 일부 유해 화학물질 항목을 정해두고 사용을 불허하는 금지 규제(Negative System)를 적용하고 있다. 반면에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정부가 일부 안전한 화학물질 항목을 정해두고 그것만 사용을 허용하는 사용 규제(Positive System)를 적용하고 있다. 사용 규제에서는 정부가 생산판매자의 항목까지 관리하기 때문에 일반인이 유해 화학물질을 사용할 가능성이 없다. 반면 금지 규제에서는 국가가 정해둔 항목이 아닌 유해 화학물질은 생산판매자에게 관리를 위임하기 때문에 일반인이 사용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국제환경정책전문가인 예일대 제임스 스페스(James G. Speth) 교수는 저서『아침의 붉은 하늘(Red Sky in the Morning, 2004년)』에서 현대 사회의 8대 전환을 강조하면서 그중 하나로 학교에서 배출되는 모든 학생들에게 환경교육을 필수로 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이유는 급속히 발달하는 과학기술과 정체되어있는 일반 대중의 관련 지식 격차를 줄이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현대 문명이 만들어 내는 생활환경에는 도처에 건강 위해성이 숨어 있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지식수준으로 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고로 이어지고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하면 생존을 위한 환경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경 지식이 부족하면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 현대 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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