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구 전통장 오가향 대표

우수, 경칩이 지나니 불어오는 바람 결이 바뀌었다. 뾰족하고 차갑던 것이 순하면서도 따뜻해진 것 같다.

봄이 오는 들판에는 거름 냄새가 난다. 겨울 동안 굳었던 땅이 녹으면 대지가 숨을 쉬게 되는데 이때 농부들은 거름을 뿌린다. 그리고 부지런한 농부는 벌써 흙을 갈아 엎는다. 땅이 간직한 수분과 영양분을 작물이 쉽게 빨아 들이도록 농사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낭만농부도 꽃샘추위가 느슨해지면 바깥으로 나가는 횟수가 늘어난다. 따뜻한 봄바람이 산등성이를 넘어오는 날에 산보를 하다가 개울가에 있는 개구리알을 발견하였다. 보통 경칩이 지나면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 알을 낳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따뜻해서인지 먼저 만나게 되었다.

아마 며칠 전에 비가 왔는데 비가 온 후에 날씨가 포근하니 봄이 온 줄 알고 겨울잠에서 깨어나 종족 보존을 위한 행위를 한 것 같다. 개구리는 낯선 이방인의 갑작스런 출현에 재빨리 바위틈으로 몸을 숨긴다. 개구리가 지나간 물가에 개구리 알이 껍질 깐 포도 알갱이처럼 소복소복 붙어 있다. 개구리 알을 살며시 만져보니 물커덩하며 미끌거린다. 건져올리면 손가락 사이로 자꾸만 빠져나간다. 마치 묵을 만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점성이 강해서 그런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억지로 떼어내도 알은 손상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다는 걸 보여 주는 것 같다.

자연에서 생명체들을 관찰하다보면 참 오묘하고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개구리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는데도 계절의 변화를 알고 언제 어느 곳에 알을 낳아야 하는지를 안다. 그리고 그 알들은 물속에서 자연 부화되어 올챙이로 바뀌고, 여름이면 어김없이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개구리가 된다. 가을에는 짝짓기를 위해 개굴개굴 소리로 온 사방을 시끄럽게 하여 밤잠을 설치게도 한다. 겨울이 되면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겨울잠을 자는데, 이때에 개구리들은 알을 잉태하여 산란을 준비한다. 그리고 따뜻한 봄이 되면 준비한 알을 낳게 되는데 개구리의 일생은 이렇게 1년을 주기로 반복되어진다. 그러고 보면 낭만농부와 장아지매의 1년도 개구리의 일생처럼 비슷하게 반복되어지는 것 같다.

이제 개구리도 알을 낳아 놓은 걸 보니 정말 봄이 온 것 같다. 지난 겨울은 춥지도 않더니 봄을 일치감치 데려다 놓았다. 이왕이면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이 얼른 지나가고 따뜻한 봄볕 아래,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가 뒷다리가 쏘옥 앞다리가 쏘옥, 팔딱팔딱 개구리가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농부들은 밭일 들일로 눈코뜰새없이 바빠질 것이다.

원래 농사의 農(농) 자는 노래 曲(곡) 자 밑에 별 辰(진) 자가 붙어 만들어진 글자라고 한다. 辰자는 ‘별’이나 ‘새벽’, ‘아침’이라는 뜻을 가졌다. 辰자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부에서는 조개를 본뜬 것으로 보기도 하고 또는 농기구의 일종을 그린 것이라며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별의 노래’라는 뜻이라고 하니 얼마나 아름답고 낭만적인가? 하지만 실제 농부(農夫)의 일은 글자처럼 아름답기는커녕 고되고 험난하다. 하지만 낭만농부는 땅을 사랑하고 정성껏 식물을 키워서 추수철에는 아름다운 별의 노래로 채워지기를 꿈꾸며 오늘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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