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 수필가

순리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현상, 거스를 수 없는 천부적인 것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세상을 지탱하는 근본이 순리다. 당장은 순리에 어긋날지라도 결국에는 순리에 따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순리는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임과 동시에 메시지라 하겠다.

우주의 질서는 만고불변의 순리다. 우주의 질서, 자연의 질서는 무궁무진한 시공에서 이뤄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찾고 그 신묘함을 알아내고자 부단한 노력을 해 오고 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일정한 궤도로 회전하기에 사계절이 있고, 자전을 하기에 밤낮이 있다. 만약에 공전궤도가 변하거나 자전 속도가 변한다면 큰 혼란이 있겠지만 그런 적은 없었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자연현상이고 순리다.

살아가면서 매사를 순리에 따르려고 하지만 때로는 순리에 어긋나기도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순리에 따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피로감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잠자는 것이 정상이고 순리이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그 반대일 수도 있으나 벗어나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순리에 역행하는 경우도 있으나, 나쁜 의도를 갖는 경우도 있다. 즉 인륜에 반하는 비도덕적인 행위이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자신만의 욕심에서 비롯된다. 눈앞의 욕심을 위한 사회적 질서 파괴행위는 결국에는 자신과 타인에게 해악이다. 질서 파괴 행위는 파급 효과도 커서 사회 불안을 조장하기도 한다. 국가의 역할 중 첫째가 사회질서 유지로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곳이면 국가가 있고 질서 유지를 위한 수많은 법률이 제정되어 집행되고 있다.

만약 사람이 모두 선하고 순리에 따른다면 사람을 다스리는 별도의 법은 필요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복잡한 현대 생활은 자신도 모르게 범법을 저지른다. 대표적인 것이 차량 운전 시 신호와 속도위반이다. 과거 감시카메라가 부족할 때는 경찰관이 곳곳에서 단속을 했다. 당시에는 위반 경위를 잘 설명하면 현장 선도 조치로 마무리되는 미덕(?)도 가끔은 있었다. 간혹 감시카메라에 단속되면 기분이 나쁘다. 경찰관의 현장 선도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적잖은 범칙금을 물리고 있다. 어쨌든 질서 위반행위는 나와 타인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에 단속의 끈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정의와 양심, 순리는 일맥상통한다. 순리대로라면 정의롭지 않은 것이 없고, 양심에 거리낄 것도 없다. 순리는 이들 모두를 포괄한다고 하겠다. 누구나 자신은 순리대로 산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복잡한 세상에 순리대로 살기란 쉽지 않음에도 그렇게 여기고 있다. 나만 정의롭고 상대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오십보백보다. 연일 각종 사건·사고가 매체를 장식하거나 비판이 난무하고 있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렇다고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민주사회에서 건전한 비판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판은 하되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하고 상대에 대한 인격적인 배려는 있어야 한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안은 순리적이어야 한다.

개인적인 일은 순리에 따르고 스스로 책임지면 되겠지만, 나랏일은 무엇이 순리인지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첨예한 정책을 두고 국론이 엇갈릴 때는 더욱 그렇다. 모두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책이 순리라고 주장하기에 국민들은 헷갈리고 국론이 분열되기도 한다. 그럴 때 위정자들은 국민의 지지도가 높은 쪽을 선택하기도 하고, 섣불리 시행해 놓고는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며 한걸음 물러서기도 한다. 시대에 맞게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고 국론을 결집하는 것이 위정자의 역할이다. 그때 위정자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국민을 설득함에 있어서는 공공의 이익과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진솔한 소통이 있어야 한다. 당리당략만 앞세워 정책을 호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모든 정책은 위민적이되 순리여야 한다.

명심보감에서 하늘의 뜻을 따르는 자는 살아남고 어기는 자는 죽는다 (順天者存 逆天者亡)고 했다. 뿐만아니라 순리는 아름답고 세상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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