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일 바탕경영연구소/티인사이드 대표

신변 벽두에 봉길리(문무대왕릉)에 갔다가 청룡을 만났다. 용 모양 연을 서너명의 장정이 날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이 바다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굳이 찾아와 날린 것일테지. 연은 정교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졌다. 연을 띄우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나 비행을 조정하는 기술까지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용이 지키는 바다에서 비상하는 용을 만났으니 반드시 길한 징조다. 주술적인 것을 찾아 믿는 편은 아니지만 기원이나 길상吉相을 애써 배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손바닥에 '왕'자를 쓴다거나 하는 주술적 행위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도사 나부랭이에게 의탁하는 유난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올해가 청룡의 해라고 한다. 청룡은 네방위를 지키는 신(청룡, 백호, 주작, 현무) 가운데 동쪽을 수호한다. 용기, 도전, 출세, 성공, 강력한 힘을 상징하며 신화에서는 생명의 근원인 물을 관장한다. 상상 속의 영물이지만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우리 생활에서 용의 부재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 영물을 하필 봉길리에서 만났다. 이곳에 얽힌 이야기를 잠시 만나보자.

운명적 만남
춘추(603년생)는 유신(595년생)보다 여덟 살 아래다.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은 유신이 꾸민 전략적 사건 때문이다. 가야 출신 아웃사이더 유신에겐 모멘텀이 필요했을 것이다. 생사고락을 함께 할 친구여도 좋고 동지여도 좋다. 비빌 언덕도 필요했을 것이다. 다행히 유신에겐 사람 보는 탁월한 안목이 있었다.

언니 보희가 꿈을 꾸었다. 서악에 올라가 오줌을 누니 서울에 가득 찼다. 아침에 동생 문희와 꿈 이야기를 하는데, 문희가 듣고 말하기를 "내가 이 꿈을 사겠다." 하였다. 언니가 "무엇으로 사려하느냐?" 하니, 말하기를 "비단 치마를 팔면 되겠어요?" 언니가 좋다고 하였다. 열흘 후에 유신이 춘추와 같이 집 앞에서 공을 차다가 일부러 춘추의 옷을 밟아서 옷끈을 떨어뜨렸다. 집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작이었다. 유신이 보희에게 꿰매드리라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이어 문희에게 명하였다. 그 후로 춘추는 유신의 집에 자주 왕래하였다.

유신이 누이가 임신한 것을 알고 짐짓 꾸짖기를 "네가 부모에게 고하지도 않고 아이를 배었으니, 이 무슨 까닭이냐?" 하면서 말을 퍼뜨리길 누이를 태워 죽인다고 하였다. 하루는 선덕여왕이 남산에 놀러 가는 것을 기다려 나무를 마당 가운데 쌓고 불을 지르니 연기가 피어났다. 왕이 바라보고 무슨 연기냐고 물으니, 좌우가 아뢰기를 아마 유신이 누이를 태우려고 하는 것 같다고 하였다. 왕이 그 이유를 물으니, 그의 누이가 남편 없이 임신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왕이 "이것이 누구의 소행이냐?" 하였다. 마침 춘추가 앞에서 모시고 있었는데 얼굴빛이 크게 변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이것은 너의 소행이니 속히 가서 구하라." 하였다. 공이 명을 받고 말을 달려가서 죽이지 못하게 하는 뜻을 전하고 그 후에 곧 혼례를 행하였다. 이 아이가 동해 용이 되신 문무왕이다.

준비된 왕
해몽에 식견이야 있을 리 없으니…오줌은 욕망의 상징이다. 해몽에서 오줌 꿈은 길몽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생명의 시원인 여자가 눈 오줌이 세상을 휘감으니 강력한 권력, 대업의 성취를 상징한다 하겠다.

혈연으로 맺어진 춘추와 유신은 이후 찰떡궁합 승승장구의 길을 걷는다. 춘추가 왕실 내에서 입지를 다져가는 동안 유신은 군부를 장악한다. 특히 외교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춘추는 당과의 동맹을 끌어냈다. 영민한 아버지 춘추는 아들 법민과 인문도 당으로 보내 견문을 넓히게 하고 외교적 역량을 키우게 한다. 비담의 난을 진압하면서 국정을 장악한 둘은 이후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진덕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춘추의 기나긴 기다림은 결실이 되었다. 춘추는 51세에 왕(태종무열왕)이 되었다. 그가 운명의 부름을 받기까지 인내한 시간은 노심초사였을까 분골쇄신이었을까. 준비된 왕이었지만 재위 기간은 길지 않았다. 8년의 재위 기간 백제를 멸하고 후일 아들이 이룰 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대업을 이룬 아들
당군을 따라 돌아온 법민은 죽은 아비를 이어 왕(문무왕)이 되었다. 약한 자가 살아남는 방법은 강한 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왜소한 통일이라고 비판받을지언정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것이다. 유신은 춘추가 죽고도 12년을 더 살았다. 강력한 세력으로 조카 법민(문무왕)을 도와 삼국통일의 중추가 되었다. 고구려가 무너진 것이 668년이고 유신이 죽은 것이 673년이니 만년에 통일의 기쁨을 맛보았으리라. 당의 힘을 빌어 고구려와 백제를 멸한 왕은 신라까지 날름 먹으려는 당을 몰아내고자 진력하였다. 그 간절한 염원을 담아 사천왕사를 열고 불력의 힘을 빌었다. 왕은 불력의 힘을 빌어 왜구를 몰아내고자 동해 바닷가에 절을 짓기 시작했으나 완성을 보지 못했다. 왕은 나라를 다스린지 21년(681년, 56세) 만에 죽으면서 바다에 장사하라고 유언하였다. 평소에도 왕은 "내가 죽은 뒤에는 원컨대 나라를 수호하는 큰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킬 것이다."고 말하였다.

효심 깊은 아들
정명(신문왕)은 아버지 왕이 돌아가자 즉위하여 부왕의 유지를 이었다. 절을 완성하고 아버지 왕을 기리기 위하여 감은사라 했다. 지금도 남아있는 금당터 바닥은 60cm 높이의 텅 빈 공간이다. 절의 남쪽에 대종천과 연결된 수로를 만들고 웅덩이도 만들었다. 동해 용이 된 아버지가 드나들면서 편히 쉬시라는 효심이다. 더불어 거대한 두 개의 탑을 올렸다. 감은사터 3층 석탑이다. 이 탑은 남아있는 탑 가운데 가장 우람하다. 자부심과 당당함이 넘친다. 생각건대 아들은 동해 용이 되겠다던 부왕의 기상을 닮은 탑을 지었을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를 멸하고 당을 몰아냈으며 통일 제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진력하였다. 죽어서까지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던 왕은 돌아가 용이 되었다. 아들은 부왕의 서원이 서린 대왕암을 바라보기 좋은 바닷가 언덕 위에 이견대를 짓고 감은사와 삼각 축을 만들었다. 유신의 혼령에게서 만파식적을 얻은 곳도 바로 이곳이다.

부자의 위대한 이야기가 서린 이곳에서 바람으로 남은 유구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오줌으로 완성된 욕망에 대해서 생각했다. 대왕이 용으로 돌아간 이 바다에서 만난 청룡이 파란 하늘에 각인된다. 오줌 꿈을 꿨으면 좋겠다.

청룡의 우람하고 강건한 기운을 독자 여러분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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