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규 한국교수작가회 부회장

간단한 글이었다. 만나기 전 문자 메시지만 짧게 주고받는 정도였지만 메일의 소통법도 좋을 듯했다. 다만 편지로 문자화한다는 것이 조금은 부풀려지는 감이 있어 내가 윤 작가에게 쓴 메일은 보내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내 감정을 메일함에 쌓아놓곤 하였다.

요즘은 손님들 발길이 뜸하여 매출 지표가 마이너스에서 머물고 있지만, 사실은 사람 접하는 것이 두렵다. 방역에도 한계가 있으니 이제는 알아서 해야 할 것 같다. 나만 해도 몸이 전 같지 않아 더 두렵다. 나는 소위 말하는 기저질환자이다. 언제나 내 뒷덜미를 잡는 바이러스의 횡포, 이 공포는 언제 끝나려나.

그리고 환(幻)
유경에게 변고가 생겼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유경의 번호에서 ‘고객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를 듣는다. 통화 절벽은 갑자기 시작되었는데 바닷가에 다녀온 뒤,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부터였다. 유경을 한 달 가까이 만나지 못하고 있다. 유경이 소통의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돌연 전화를 닫아버리면 코로나19에 확진된 것은 아닌지 애가 탈 수밖에 없는 시기다. 이건 어려운 시기를 견디며 시간 가기를 기다리자던 얘기와는 다르다. 어떤 경우라도 불통의 이유는 알렸어야 했다. 유경은 메일까지 닫아버렸다. 유경과 나는 전화나 메일밖에 소통할 길이 없는 사이다. 만날 때도 그녀의 일터 가까이에는 접근하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만 흘려보내며 나쁜 상상에 시달리니 그녀와 보낸 짧은 시간이 더욱 절절하다.

거듭되는 변종의 출현이 방역 수준을 앞서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져 가는 방역 전선, 외국의 거리에 넘쳐나는 시신들 영상,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하는 확진자 숫자는 급기야 세계 인류를 바이러스 공황 속으로 몰아넣었다. 더구나 유경은 백신 접종도 거부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유경으로부터 연락이 끊긴 지 2개월 가까이 된다. 메일을 확인하던 중 유경의 아이디가 떴다. 유경의 아이디 SOSO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고물고물 소름을 돋게 한다. 두려운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다. 보관함에 있던 메일을 한꺼번에 보낸 것처럼 메일의 내용을 일별로 갈무리했는데 독백 형식이다. 정상적인 편지 형태가 아닌 것은 이상했으나 유경이 보냈으니 그녀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조마조마 읽어내렸다.

<5월 13일>
-지난겨울, 모든 것이 여의찮았다. 고객과 만나야 하는 일의 성격상 사회적 거리 두기는 치명적이었다. 가게를 접어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우울증이 오면서 매사가 어긋나고 있었다. 그때 그대 소설을 접했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으나 읽어갈수록 반갑고 놀라웠다. 소설 속에서는 내가 아닌 내가 윤 작가의 손가락에서 내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있었다. 가물가물 잊혔던 과거를 소환하면서 온갖 상상이 펼쳐졌다. 윤 작가를 다시 생각하며 전화를 걸 때는 남자를 처음 만나는 것처럼 설레었다. 우린 건강하게 다시 만났다. 나의 일과는 관계없는 그대였지만, 그대 만남은 오히려 구원이 되었다. 막힌 벽 앞에 서 있는 나에게 그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릴 적 같이 살 때의 그대 마음, 살아오면서 사십여 년을 보고 싶었다는 그대의 말이 귓가에 서성인다. 그 말에 눈물이 나왔다. 지금도 아프다. 어린 시절 고학하던 그대를 생각했다. 그때 나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왜 못 했을까?

<5월 15일>
- 창밖에 비 내린다. 지친 마음을 추스른다. 말로 상처를 주는 손님도 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비수가 될 수 있다. 타인의 지나가는 말에 상처받고 그댈 떠올리다니, 내 맘을 모르겠다. 어렸을 땐 비 오면 옷 속을 헤집고 살갗에 닿는 느낌이 좋아 일부러 비 맞으며 하굣길을 걸어가곤 하였다. 지금도 이 비로 많은 생각에 젖는다. 누군가와 속마음을 나누고 싶다. 그대라면 더욱 좋을 텐데. 이럴 때 만나지 못하니 야속하다.

그대 눈빛은 따듯한 커피 같다.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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