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구 전통장 오가향 대표

세월이 참 빨리도 흘러간다. 올해도 달랑 2장의 달력만 남겨 놓았다. 매년 11월이 되면 온 동네 여기저기서 김장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김장은 겨울철 별다른 찬거리가 없었던 시절에 소소한 반찬이 아니라 밥과 함께 겨울을 날 귀중한 음식이었다. 그렇기에 김장 담그는 일은 늦가을 매년 치루어야 하는 큰 연례행사 중의 하나였다. 시대가 변했지만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 김장 담그기이다.

김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발효음식 중의 하나다. 발효된 음식은 장을 튼튼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 요즘 세계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한국인의 밥상에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반찬이다. 냉장 보관 시설이 없던 시절에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음식문화이기도 하다.
김장은 한번에 많은 양의 김치를 담궈, 겨울 동안 먹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옛날 시골에서는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서 항아리를 묻고 그 항아리에 김치를 담아놓았다. 그렇게 하면 천천히 익으며 향미도 더 느낄 수 있었다.

옛날에는 입동이 지나면 김장을 해야할 시기라고 했다. 기온이 높을 때 하면 너무 빨리 익고, 기온이 낮을 때 하면 채소가 얼기 쉬워 자칫 김장을 망칠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에 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겨울의 시작인 입동도 지났으니 오가향에도 김장을 담궈야 될 것 같다. 김장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배추와 무 같은 주재료가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갖가지 양념도 만들어 놓아야만 비로소 김치를 담글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오가향에서는 매년 배추와 무, 고추는 직접 재배하여 사용하고 있다. 배추와 고추의 상태는 그해 자연환경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올해에는 배추가 튼실하게 자란 것을 보니 주변환경과 궁합이 잘 맞은 것 같다.

김장 담그기에서 가장 중요하고 힘든 것이 김치양념을 만드는 것이다. 마늘, 생강, 양파는 까서 갈아야 하고, 쪽파는 잘 다듬어서 썰어야 한다, 찹쌀풀도 끓여 놓아야 하고, 무는 채를 썰어야 한다. 올해는 배도 깎아서 갈아 넣었다. 멸치 액젓과 새우젓은 미리 구입하여 준비해 두었다. 그 다음에는 무, 파뿌리, 멸치, 표고버섯 등 많은 재료를 넣어서 오래 오래 끓여 육수를 만들었다. 미리 준비한 것들을 모두 섞어 저으면 맛있는 김치양념이 완성된다. 재료가 많기에 다듬고, 씻고, 썰고, 갈고, 끓이고 하다 보면 하루해가 짧고 팔, 다리, 허리 안 아픈 데가 없다.

양념 준비가 다 되면 이제는 배추를 절여 놓아야 한다. 8월 한여름에 심어 아내가 매일 매일 사랑과 정성으로 키운 배추를 뽑았다. 그리고 배추의 겉잎을 떼어내고 깔끔하게 다듬어 4등분으로 나누어서 소금물에 절여 놓았다. 저녁에는 배추가 잘 절여지도록 아래 위가 바뀌게 뒤집어 주었다. 간을 알맞게 맞추어야만 맛난 김치가 되기에 내려오는 눈꺼풀을 끌어올리며 골고루 뒤집어 놓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배추가 잘 절여진 것 같다. 배추를 건져서 네 번을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그리고 물기를 뺀 후에 김장을 담기 시작했다.

낭만농부는 절인 배추잎 사이로 양념이 쏙쏙 잘 베도록 한 장씩 발라주면 아내는 김치양념에 버무린 무우채를 사이사이에 넣고 겉잎으로 감싼 후 김치통에 차곡차곡, 가지런히 담았다. 아내는 버무린 것을 입에 넣어 주며 간이 맛는지 묻는다.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것이 낭만농부의 입맛에 딱 맞다. 올해는 김치 맛이 좋아 많이 담가도 부족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낭만농부와 장아지매는 김장을 담그며 조잘조잘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샌가 김치통에 맛있는 김치와 함께 사랑도 차곡차곡 담긴다. 점심 먹고 시작한 김장 담그기는 저녁이 되어서야 끝났다. 저녁에는 오늘 갓 담은 김치를 가져와 삼겹살을 싸 먹으니 배추 한 포기가 금새 동이 난다.

우리는 김장을 담그면 일년 내내 먹는다. 오늘 담근 김장은 올 겨울부터 내년까지 가장 중요한 반찬이 될 것이다. 올해는 낭만농부가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한 김장이었기에 더 뜻깊었다. 김장 담그는 것이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줄을 예전에는 몰랐다. 역시 직접 해보아야 안다. 김장 담그는 일이 너무 힘들었지만 큰일 하나를 마무리 한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하다. 맛난 음식에는 추억과 사연이 담기게 되어 있다. 추억은 지나간 시간의 그리움이기에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오늘 아내와 좋은 추억거리 하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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