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구 전통장 오가향 대표
김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발효음식 중의 하나다. 발효된 음식은 장을 튼튼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 요즘 세계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한국인의 밥상에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반찬이다. 냉장 보관 시설이 없던 시절에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음식문화이기도 하다.
김장은 한번에 많은 양의 김치를 담궈, 겨울 동안 먹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옛날 시골에서는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서 항아리를 묻고 그 항아리에 김치를 담아놓았다. 그렇게 하면 천천히 익으며 향미도 더 느낄 수 있었다.
옛날에는 입동이 지나면 김장을 해야할 시기라고 했다. 기온이 높을 때 하면 너무 빨리 익고, 기온이 낮을 때 하면 채소가 얼기 쉬워 자칫 김장을 망칠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에 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겨울의 시작인 입동도 지났으니 오가향에도 김장을 담궈야 될 것 같다. 김장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배추와 무 같은 주재료가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갖가지 양념도 만들어 놓아야만 비로소 김치를 담글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오가향에서는 매년 배추와 무, 고추는 직접 재배하여 사용하고 있다. 배추와 고추의 상태는 그해 자연환경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올해에는 배추가 튼실하게 자란 것을 보니 주변환경과 궁합이 잘 맞은 것 같다.
김장 담그기에서 가장 중요하고 힘든 것이 김치양념을 만드는 것이다. 마늘, 생강, 양파는 까서 갈아야 하고, 쪽파는 잘 다듬어서 썰어야 한다, 찹쌀풀도 끓여 놓아야 하고, 무는 채를 썰어야 한다. 올해는 배도 깎아서 갈아 넣었다. 멸치 액젓과 새우젓은 미리 구입하여 준비해 두었다. 그 다음에는 무, 파뿌리, 멸치, 표고버섯 등 많은 재료를 넣어서 오래 오래 끓여 육수를 만들었다. 미리 준비한 것들을 모두 섞어 저으면 맛있는 김치양념이 완성된다. 재료가 많기에 다듬고, 씻고, 썰고, 갈고, 끓이고 하다 보면 하루해가 짧고 팔, 다리, 허리 안 아픈 데가 없다.
양념 준비가 다 되면 이제는 배추를 절여 놓아야 한다. 8월 한여름에 심어 아내가 매일 매일 사랑과 정성으로 키운 배추를 뽑았다. 그리고 배추의 겉잎을 떼어내고 깔끔하게 다듬어 4등분으로 나누어서 소금물에 절여 놓았다. 저녁에는 배추가 잘 절여지도록 아래 위가 바뀌게 뒤집어 주었다. 간을 알맞게 맞추어야만 맛난 김치가 되기에 내려오는 눈꺼풀을 끌어올리며 골고루 뒤집어 놓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배추가 잘 절여진 것 같다. 배추를 건져서 네 번을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그리고 물기를 뺀 후에 김장을 담기 시작했다.
낭만농부는 절인 배추잎 사이로 양념이 쏙쏙 잘 베도록 한 장씩 발라주면 아내는 김치양념에 버무린 무우채를 사이사이에 넣고 겉잎으로 감싼 후 김치통에 차곡차곡, 가지런히 담았다. 아내는 버무린 것을 입에 넣어 주며 간이 맛는지 묻는다.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것이 낭만농부의 입맛에 딱 맞다. 올해는 김치 맛이 좋아 많이 담가도 부족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낭만농부와 장아지매는 김장을 담그며 조잘조잘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샌가 김치통에 맛있는 김치와 함께 사랑도 차곡차곡 담긴다. 점심 먹고 시작한 김장 담그기는 저녁이 되어서야 끝났다. 저녁에는 오늘 갓 담은 김치를 가져와 삼겹살을 싸 먹으니 배추 한 포기가 금새 동이 난다.
우리는 김장을 담그면 일년 내내 먹는다. 오늘 담근 김장은 올 겨울부터 내년까지 가장 중요한 반찬이 될 것이다. 올해는 낭만농부가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한 김장이었기에 더 뜻깊었다. 김장 담그는 것이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줄을 예전에는 몰랐다. 역시 직접 해보아야 안다. 김장 담그는 일이 너무 힘들었지만 큰일 하나를 마무리 한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하다. 맛난 음식에는 추억과 사연이 담기게 되어 있다. 추억은 지나간 시간의 그리움이기에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오늘 아내와 좋은 추억거리 하나를 만들었다.
영남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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