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 명예교수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주의 주도인 해리스버그에는 서스쿼해나(Susquehanna)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다. 이 강은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를 지나 대서양으로 흘러간다. 해리스버그 부근의 이 강에는 스리마일(Three Mile)이라는 섬이 있는데, 이 섬에 1968년부터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시작하여 1974년 완공했다. 1979년 3월 28일 새벽 4시, 이곳 스리마일섬의 원자력발전소 2호기에서 가동 중인 원자로 내의 냉각장치 파열로 원자로가 융해되어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는 원자로에 공급되던 냉각수 급수계통의 고장에서 비롯되었다. 1차 급수계통에 이상이 생길 경우 보조 급수계통이 작동해 냉각수를 공급하도록 설계되었으나, 보조 밸브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계기판에는 밸브가 작동한다는 신호만 표시되었을 뿐 밸브의 실제 개폐 여부를 알려주는 정보는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운전원은 밸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물 공급이 차단되어 원자로가 과열되었고 긴급 노심냉각장치가 작동하면서 냉각수가 다량 공급되었다. 동시에 제어판에 설치된 100여 개의 경고등이 거의 한꺼번에 껌벅이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운전원이 상황을 오판해 냉각수 공급량을 줄이는 실수를 범하게 되어 냉각장치가 파열됐고 노심의 절반 정도가 융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원자로는 1978년 12월에 시험 운전을 해 겨우 4개월이 지난 것이었다.

사고가 나자 가장 먼저 임산부와 아이들에게 피난 권고가 내려졌고 주변 23개 학교가 폐쇄되었다. 긴급 대피 명령이 떨어지자 주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다행히 사고 처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사망자는 없었으나, 20억 달러에 상당하는 원자로는 단 30초 만에 파괴됐다. 이때 누출된 방사성 물질로 인해 스리마일섬 인근의 유아사망률은 다른 지역에 비해 2배 이상 높게 나타났으며, 방사성 물질에 민감한 갑상선에 이상을 가지고 태어나는 신생아가 50% 이상 증가했다고 펜실베이니아주 보건부가 발표했다. 사고 시 방출된 요오드-131은 어린이들에게 갑상선암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지능 감퇴나 발육 부진 등의 피해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고 지역에서는 주민 1만 명당 110명에 달하는 암 발생률이 보고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20세기 미국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했던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기록됐다.

1942년 12월, 미국은 CP-1(Chicago Pile No. 1)이라는 원자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 원자로에서 생산한 방사성 물질을 이용해 핵무기를 제조했고,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해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이 원폭 투하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으며, 이때 시작된 인류의 공포는 지금도 원자력 사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이 참혹한 살상에 대한 속죄라도 하려는 듯 종전 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1953년 12월,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제의하기도 했다.

스마일리 원자력발전소 전경
스마일리 원자력발전소 전경


세계 최초의 원자력발전소는 1955년 구소련에서 건설되었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미국은 1957년 처음으로 펜실베이니아주 서핑포드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했다. 첫 원자력발전소 건설 부지를 펜실베이니아주로 택한 것은 1948년 10월에 20여 명이 대기오염으로 사망한 도노라 사건이 발생한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과거 대기오염 사건을 유발했던 석탄을 새롭고깨끗한 에너지로 대체한다는 의미였다.

미국이 추구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새롭고 깨끗한 에너지라는 이미지는 초기에 매우 성공적이어서 1960년대 이후로는 원자력발전을 계속 확대해나갔다. 스리마일섬 발전소는 이러한 과정에서 건설되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도노라 사건이 발생했고 미국 최초의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섰던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 사고가 일어나기 전인 1975년 앨라배마주 브라운페리 원자력발전소에서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었으나, 방사성 물질의 누출은 일어나지 않았고 인명 피해도 없었다.

그러나 스리마일 사건은 방사성 물질의 누출과 함께 인명 피해도 예상되었기 때문에 원자력이 안전하고 깨끗한 새로운 에너지라는 환상에 젖어 있던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고 후 스리마일섬 발전소는 가동을 중단했음은 물론이고, 미국 내 원자력 산업은 일시적으로 침체됐다.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미국은 그 후 원자력 산업이 계속 확대되어 2020년 현재 생산 전력 총량 97,150㎿를 가진 95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중이며, 2기가 건설 중이다. 미국의 원전 생산 전력은 전 세계 원자력 에너지 총량(392,779㎿)의 약 25%에 달한다.



다음화에 계속

저작권자 © 영남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