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일 바탕경영연구소/티인사이드 대표

데스크탑 하드디스크가 사망했다. 지난 여름까지 5년여 데이터가 사라진거다. 어마무시한 양의 차관련 글과 사진, 논문, 표준, 스크랩 자료들이 사라져 버렸으니 당분간 글쓰기는 어림없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작업물은 또 어쩌나! 필름 스캔본은 필름이 있으니 다시 작업하면 복원할 수 있다지만 디지털 파일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나. 사망한 하드디스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혹시나 인식할 수 있을까 마운트를 반복하면서 반쯤 넋 나간 사람이 되었다.

나라 잃은 사람처럼 좌절, 분노, 자책을 반복 중이다. 업무용 파일이나 심사 관련 파일이 사라진 것은 먹고사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아쉽다 정도인데 사진 작업 파일이나 차 관련 자료를 잃어버린 것은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귀찮다고 하루 이틀 백업을 미룬 게 자그마치 5년이다. 기본을 잃었으니 언젠가는 닥칠 재앙이었다. 그사이 한두 번만 백업해 두었더라면 재앙은 면할 수 있었으리. 소 없는 외양간 고치려니 뼈가 아프다. 이게 머슨 일이고!

망연자실! 이럴 때는 시계를 되돌리려고 바둥거리기보다 일단 멈추고 평정을 찾아야 한다. 눈앞이 캄캄하고 식은땀이 나지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다음 스텝을 준비할 수 있다. 상처받은 마음과 붕괴된 정신을 토닥이려면 차다. ‘차’밖에 없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하거나 차고플 때 저절로 손이 가는 차가 있다. 나는 이런 차를 ‘밥차’라고 한다. 차고프면 언제나 일상적으로 밥처럼 마실 수 있다. 그렇다고 만만한 것은 아니어서 일용할 양식처럼 소중함, 간절함이 베어 있는 것이다.

없어서는 안 될…일용할 것이기 때문에 사치스러워도 허접해도 안 된다. 그러고 보니 ‘밥’이란 말은 심연에서 올라오는 짠함이 있다. 보릿고개를 넘은 지 50여년 남짓이니 밥이란 말은 그 어간을 견딘 사람에겐 생명과 같은 말이지 싶다.

“식사하셨습니까?” 밥 안부를 묻는 것은 세상 따뜻한 인사다. “언제 밥 먹자”는 인사도 그렇다. ‘밥이 보약’이라거나 ‘밥심으로 산다’는 말은 우리가 밥 먹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대변한다.

심지어는 밥배가 따로 있다...물론 술배, 차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고기를 배터지게 먹고도 밥을 먹어야 식사자리가 끝난다. 이쯤 되면 이 땅을 사는 사람들에게 밥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신앙이다.

“그게 밥 먹여주냐?” 뻘짓을 많이 한 나는 이 말을 많이 들었는데 들을 때마다 내가 세상 쓸모없게 느껴져서 몹시 아팠다. 밥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앉았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렇듯 밥은 그저 밥이 아니었다.

중국 사람 들이 밥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물 대신 마시는 것이 차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 사람 들은 밥 먹으면서도 차를 마신다. 오랫동안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고 있지만 거의 모든 자리에서 차가 빠진 것을 본 적 없다.

심지어 음주가무를 즐기는 곳에서 조차 따뜻한 물 달라고 하니 따뜻한 차를 내오는 곳이 중국이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에게는 차가 양식(口粮茶)이었다. 물론 차를 마시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겠지만 예부터 차는 그들에게 양식만큼 중요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양형은 내가 자문하던 회사 생산 담당 부서장이었다. 제법 친해져서 집에서 저녁 대접을 받고 휴일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이 친구에게서 선물 받은 차가 십 오륙년이 지나도록 남아 있는데 이 친구 양식(口粮茶)을 얻어 온 셈이다.

양식을 한 덩어리 뚝 떼어준 것이니 맘 씀씀이가 여간 귀한 것이 아닌데 그저 그런 차라고 던져두고 있었으니 겸연쩍다. 양형은 차철이 되면 일 년 마실만큼 한꺼번에 차를 구입한다.

물론 때때로 다른 차도 구입하지만 때가 되면 양식 마련하듯 차를 구입하는데 보이차 5통(35편), 철관음 5근을 산다고 했다. 차에 취미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처럼 미쳐 있는 것은 아니어서 덤덤하고 편안해 보였다.

구입한 보이차는 창고에 쌓아 두고 미리 저장해 둔 5~10년쯤 된 차를 꺼내 마신다. 이 친구 따라 구입한 대익 숙차가 한 바구니 그대로 창고에 있다. 이 차를 살 때 차가게 주인이 2005년 차라고 말했는데 생산 일자 도장은 너무도 선명하게 2007년이라고 찍혀 있었다.

왜냐고 물었더니 시커먼 이를 드러내며 세상 착한 표정으로 웃을 뿐이었다. 쌓인 추억 덕분에 마실 일 없는 이 차는 버려지지 않았다. 차봉투만 봐도 스친 인연 들이 떠올라 따뜻하고 흐뭇하다.

가볍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차를 ‘데일리 차’라고들 하던데 내가 밥차(口粮茶)라고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으니 같이 두고 살펴보자. 차꾼이라면 밥차 한두 가지 정해 두고 마시면 정서적으로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정돈된 차 생활을 누릴 수 있다.

당신이 오만가지 섭렵해야 하는 성향이라면 밥차주의는 재미없을지도 모르겠다. 기준 없이 즐기는 오만가지 취향은 정리 안 된 방과 같아서 뒤죽박죽 차 생활이 될 여지가 많다. 주위에서 흔하게 만나는 사례인데 정작 본인 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밥차를 선택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범주를 정해서 말하기 어렵다. 다만 자신의 소비수준, 취향, 차 생활의 여건이나 행태에 따라 선택하면 되는데 자신에게 맞는 차를 선택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정도는 고려하자. 첫 번째, 매일 마시거나 장시간 마시는 것이므로 건강하고 안전한 것이어야 한다. 품질이 담보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녹차나 커피처럼 종일 마신다고 할 때 몸에 자극을 주는 것은 밥차로 적당하지 않다. 두 번째, 가성비가 좋은 것이어야 한다. 일 년 내내 시도 때도 없이 마시다 보면 소비량이 상당하다.

같이 마시는 사람이 많으면 소비량은 더 늘어난다. 또 차를 마시다 보면 주위에 나누어야 할 상황도 빈번하다.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은...감당하기에 벅차지 않을 만큼...것이 좋겠다.

가성비 차라고 해서 대중적인 또는 저렴한 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감당 범위라는 것이 경제력만 말하는 것은 아니어서 차력이나 취향, 추구하는 바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세 번째, 기호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매일 시시때때로 마시는 것이므로 쉽게 질리거나 독특해서 취향을 많이 타는 것은 오래 즐기기 어렵다. 별미로 즐길 것을 밥차로 선택하면 안 된다. 밥은 매일 먹어도 좋지만, 자장면은 매일 먹을 수 없다.

입에 안 맞는데 건강하고 안전하며 가성비가 아무리 뛰어난들 손이 자주 갈 리 없다. 아울러 손이 많이 가거나 도구가 많이 필요한 방식이라면 사무실 등에서 간편하게 즐기기는 쉽지 않다. 여건이나 행태를 고려하는 것도 잊지 말자.

양식이 바닥을 보이면 불안하다. 그렇게 식욕이 왕성한 것도 아니고 대식가도 아니지만 초조해서 안 되겠다. 저장 욕구는 만족을 모른다. 새로운 사냥감만 보면 허기를 느낀다. 에뤼식톤은 신에게 까불다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아구병에 걸렸다.

도시의 모든 음식을 먹어치워도 그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먹을수록 허기는 커져만 갔다. 급기야 하나 있는 딸까지 팔아 배를 채우던 에뤼식톤은 종국에 제 몸까지 모두 뜯어 먹고서야 끝이 났다.

작은 창고가 가득 차서 차박스가 사무공간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사무실 파티션 공사를 다시 할까 생각 중이다. 아구병에 걸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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