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영 대구본부장

조강지처(糟糠之妻)란 '술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고난을 함께 해온 아내'란 뜻으로 곤궁할 때부터 고생을 같이 겪은 본처(本妻)를 말할때 흔히 쓰이는 용어다.

이 말은 후한서(後漢書)의 송홍전(宋弘傳)에서 유래된 말로 송홍은 후한의 광무제(光武帝)때 대사공(大司空)의 벼슬을 하고 있었다. 송홍은 순하면서 강직한 사람이었다.

광무제는 왕망이 난을 일으켜 신(新)나라를 세우자 신나라를 멸망시킨 황제이다.

광무제는 자신의 누이인 호양공주가 남편을 잃자 신하들 중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호양공주는 송홍의 위엄과 덕행과 재능은 따를 자가 없다고 칭찬했다. 누이의 의중을 알아챈 광무제는 병풍뒤에 공주를 앉혀두고 송홍을 불러 마주 앉았다.

광무제는 송홍에게 "옛말에 사람이 귀해지면 사귐을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송홍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신(臣)은 가난하고 비천한 때에 사귄 벗은 잊으면 안되고, 술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쫓아내면 안 됩니다.(빈천지교 불가망(貧賤之交 不可忘)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 不下堂)"라고 들었다고 대답했다.

조강지처는 이 대목에서 유래됐다.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이 '조강지처'를 언급했다. 홍 시장은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조강지처 버리고 잘 되는 놈 못 봤다" 면서 "정치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 멘토를 자처하면서 헛된 망상으로 훈수 하는 것도 역겹다"고 한 사람을 직격했다.

이 글은 자신을 비판한 모 변호사를 두고 한 말로 보여진다. 이 변호사는 첫 부인과 이혼하고 현재 재혼해서 살고 있다.

홍 시장이 올린 글에서 자신이 비판한 대상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언급은 안 됐지만, '조강지처' 버리고, '대통령 멘토' 라는 부분으로 보아 윤 대통령의 측근에서 멘토롤 불리는 신평 변호사로 보인다.

홍 시장은 앞서 신 변호사가 이날 오전 자신을 두고, "'반윤석열'을 기치로 내 걸고 윤석열 체제의 전복(顚覆)을 꾀하는 세력에서 3인의 키 플레이어" 중 하나로 언급하면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신당을 지원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묘사한 정세 분석 글 때문에 홍 시장이 불쾌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신 변호사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홍 시장의 발언과 관련된 기사를 링크하면서, (홍 시장께서) "화가 많이 나신 갓 같다" 면서, "그래도 그렇지 내 머리가 띵할 정도"라고 밝혔다,

신 변호사는“홍 시장은 이번뿐만 아니고, 내가 항상‘대통령의 멘토를 자처 해왔다'고 단정한다"면서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혹시 누가 나보고‘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라는 표현을 쓰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해 왔다”고 강조하면서,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홍 시장은 내가 너무나 자주 부정한 그 사실을 알았으리라는 것"이라며,“이를 몰랐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말이 허위사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내가 그런 자격의 사칭을 꾀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홍 시장의 이런 행위에 대한 법적 평가는 잘 아실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조강지처 버리고 잘 되는 놈 못 봤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수준 낮은 말' 이라며, 홍 시장은 급기야 내 사생활까지 거론하며 공격했는데, 홍 시장에게 한 마디만 물어보자면, 과연 홍 시장은 나보다 사생활 면에서 깨끗한가”라고 반문했다.

이어“그렇다고 한다면 수백 년간에 걸쳐 내 집안의 세거지(世居地,특정 성씨가 대대로 거주한 지역)인 대구시 수장 홍 시장에게 감사해야겠지만 만에 하나 그렇지 않다면 혹은 잘 모르겠으면 다음부터는 이런 수준 낮은 말은 다시 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근 포털에서 '조강지처'를 검색하면 또 하나의 케이스가 나온다. 바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그 부인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다.

이혼소송의 1심 재판에서 사실상 패상 패배한 노 관장이 지난 9일 항소심 첫 변론준비기일에 직접 출석해 "가정의 소중한 가치가 법에 의해 지켜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판했다.

이에 최 회장도 3일 후인 12일 노 관장을 향해 "재산분할 재판에서 유리한 결론을 얻으려 일방적인 입장을 얘기해 논란을 일으킨다"고 반박했다.

최 회장은 노 관장이 "남의 가정을 깬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하자, 최 회장은 "혼인관계는 새 사람을 만나기 전에 이미 완전히 파탄 나 있었고, 십수 년 동안 형식적인 부부였다"고 맞받았다.

이와 관련한 여론은 분분하다.

'장인 때문에 지금의 SK가 있었거늘', '간통죄 부활시켜라', '시작부터 잘못된 악연 이번에 끊어라', '부부간의 문제는 부부 외 아무도 알 수 없다' 등 다양하다.

사실혼 관계인 동거녀와 공개적인 행사에 버젓이 손잡고 나타난 최 회장의 행동은 세간에 어떻게 비쳐질까!, 그 행사도 개인 행사가 아니라 대한상의가 주최한 공적인 국제행사가 아닌가.

조강지처는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옛 사람들이 오랜 세월 고난을 함께 했던 조강지처를 버리는 사람은 도의를 떠나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절대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는 유교적 가치관이 녹아 있는 말이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단어라고 보여진다.

지금 사회에서 젊은 세대들에게 '조강지처와 헤어져선 안 된다'고 하면 '꼰대'라는 말이 귀 뒤에서 되돌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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