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규 한국교수작가회 부회장

중학교 진학도 입학시험을 치른 시절이었다. 손꼽는 일류 중학교를 목표로 공부하던 내게 하늘 무너지는 일이 생겼다. 공부보다는 돈을 벌어야 했다. 내게 죄를 지은 것처럼 얼굴을 들지 못하던 아버지와 어머니, 그때 처음 본 어머니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 공부해야 할 나이에 신문이라도 팔아야 한다니! 좌절감은 나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먼 훗날 유경과 함께하리라던 아련한 꿈마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먹먹한 마음으로 신문팔이들이 모여 있는 영등포역 신문 배포소에 갔다.

조간과 석간으로 가판용街販用 신문이 도착하면 어린 소년들이 이를 배부받아 길거리에서 팔았다. 아침에는 조간, 저녁에는 석간신문을 팔았다. 영하 17도까지 내려간 기록적인 추위에도 고사리손에 신문을 펼쳐 들고 거리에서 추위에 맞섰다. 서릿발 같은 강 파람에 뺨이 긁혔고 동상이 든 손은 탱탱하게 얼어 있다가 나중에는 짓물러 터졌다. 그런 신문팔이 소년들에게도 유일한 즐거움이 있었으니 바로 군것질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 노점상이 파는 볶음 땅콩이 그것이었다. 어느 겨울날, 신문을 다 팔고 시장통을 걸어 집에 오는 길에 유경을 만났다. 유경이 내 손응 잡아끌고 따슨 김을 내뿜는 빵집으로 들어가 찐빵과 만두를 사주었다. 내가 진빵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기억 때문이다.

영등포역 주위에는 십여 명의 신문팔이가 있었다. 아침 여덟 시부터 두 시간 정도 거리 판매를 하면 신문은 구문이 되어버리니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팔아야 했다. 하지만 특종 기사라도 있는 날은 신문이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되어 신문팔이들 수입이 제법 짭짤했다.

아침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선 시각은 다방에서 모닝커피를 즐기는 손님들이 한가롭게 앉아 있다가 신문을 사 읽었다. 그 시절에 영등포역과 시장 로터리를 중심으로 20개의 다방(커피숍)이 있었다. 영등포역에서 각 방향으로 흩어진 소년들은 경쟁적으로 다방부터 들어갔으며 한 다방에서 신문팔이들끼리 마주치기도 했다.

영하 17도까지 내려간 추운 아침이었다. 2층에 있는 모정 다방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다방 이름이 큼지막하게 그려진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따뜻한 훈김이 훅 끼쳤다. 겨울옷도 마땅찮아 무명천 옷만 입었던 시절, 꽁꽁 언 몸을 녹이다 보니 신문팔이고 뭐고 이 따스운 곳에서 나가기 싫었다. 손님이 없이 의자들만 썰렁한 다방 가운데에는 큼직한 물통을 얹은 석탄 난로가 있었고, 난롯가에 혼자 앉아 있던 레지(여종업원)가 손님이 들어오는 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보고는 도로 앉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레지 누나한테 미안하여 그냥 나갈까 어쩔까 주춤거렸다. 레지가 다시 일어나더니 난로 옆자리 의자를 돌려놓으며 나를 앉히고 주방으로 갔다. 후끈 달궈진 난로 옆에서 몸은 금방 녹아내리고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레지는 내 앞에 컵을 놓더니 난로 위에서 데워진 엽차 주전자를 내려 따랐다.

“마셔!”

나는 신문 뭉치부터 옆 의자에 내려놓으며 언 손을 비볐다.

“고맙습니다.”

뜨거운 김을 후후 불며 엽차를 마시니 몸이 조금 풀렸다. 붉은 계열의 원피스를 입은 누나의 하얀 손이 컵을 든 내 손과 대비되어 더 희게 보였다. 내 손이 부끄러웠다. 나는 때 묻은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동상이 들어 부푼 두 손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짓물러 터졌고, 목장갑이 생살과 붙어버려서 벗을 수가 없었다. 세수가 문제였다. 궁여지책으로 다섯 손가락의 마지막 마디만 남기고 장갑 끄트머리를 모두 잘랐다. 그런 때 묻은 목장갑을 벗지도 못하고 손가락 마지막 마디들로 세수 같지도 않은 세수를 하며 겨울을 나던 참이었다. 봄이 오면 손가락 동상이 아물고 딱지가 져서야 목장갑을 벗을 수 있었다. 그러니 목장갑은 또 다른 내 피부였다. 레지 누나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세상에 어린것이 이 손으로!”

레지 누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수건을 가져와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쥐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눈을 들어 레지 누나의 얼굴을 마주 보다가 흠칫 놀랐다. 누나는 유경이와 똑같은 눈 모양을 하고 있었다. 누나가 앞자리에 앉더니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데 유경이 같기도 하여 더 부끄러웠다.

“얘, 넌 특별한 아이야! 아무나 너 같은 경험을 하는 건 아니지 않니?”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들린 그 말! 눈을 올려다보며 얼떨떨해 있는 내 어깨를 다독이면서 누나가 던진 말이 가슴에 턱 걸렸다. 하찮은 신문팔이인데 특별하다고 했다! 정말 누나 같은 특별한 말이었다. 그 말은 엽차보다 따뜻한 기운을 주었다. 그다음에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에 없다. 특별한 아이를 귀에 담고 다방을 나서는 발길이 전과 달랐다.‘특별한 아이!’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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