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 명예교수

걸프전에서는 페르시아만 기름 유출 외에도 불타는 유정에서 발생한 대기오염으로 새들이 죽고 가로수가 시들어갔으며 사람들이 질식사할 지경이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불타는 유정에서 배출되는 엄청난 양의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 제트기류를 타게 될까 우려했다. 연기가 지상 4만 5,000피트(약 13,700m) 상공에 올라가 제트기류에 합류하게 되면 매연과 석유 화학물질은 전 지구로 퍼져나가게 된다.

이 경우 대류권 상층의 오염뿐만 아니라 지구 기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때 배출된 연기는 2만 2,000피트(약 6,700m) 상공까지 도달한 것으로 그쳤다.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이때 배출된 매연이 히말라야산에 내린 눈에서 검출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페르시아만 주변 국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화염에 휩싸인 600여 개 유정의 불길을 잡는 일은 쿠웨이트 수복 후의 최대 난제였다. 세계 각국에서 파견된 특수소방대원들이 총력을 다했지만, 유정의 불길을 잡는 데는 2년이나 걸렸다. 이때 발생한 연기로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주민들은 호흡기 질환에 시달려야 했고 인근 중동국가에는 산성비가 내리기도 했다.

파괴된 유전에서 나온 많은 양의 기름은 땅 위로 범람해 토양을 오염시키고 강과 호수는 물론 지상의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뒤덮었다. 기름은 이렇게 육상 생태계에 커다란 변화를 야기하면서 토양 깊숙이 스며들었다. 유출된 기름의 총량은 대략 600~800만 배럴(9억 5,340 ~ 12억 7,120만ℓ)로 추정된다. 기름 범람으로 인한 토양오염 피해는 당시 발생한 대기오염이나 해양오염에 비해 직접적인 피해는 적었지만, 가장 오랫동안 지속됐다.

걸프전 당시 불타는 송유 부두와 유정.
걸프전 당시 불타는 송유 부두와 유정.

지금까지 지구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환경 재난은 인간의 부주의와 환경에 대한 무지 때문에 발생한 사건들이었다. 그러나 걸프전의 유전 폭파는 고의로 재난을 유발해 전쟁의 수단으로 사용하려 한 환경 테러 사건이었다. 당시 어느 외국 신문이 걸프전에 대해 ‘지구를 인질로 잡고 벌이는 전쟁’으로 비유했을 만큼 이 전쟁은 참혹한 환경재앙을 초래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전쟁은 잔인한 환경 재난을 항상 동반했다. 수천 년 전부터 전쟁은 항상 적의 땅을 초토화시키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점령군은 적국의 가옥과 논밭을 불태웠고 가축과 곡식을 약탈했으며, 우물에는 독을 뿌렸다. 환경 재난으로 이어지는 살생, 약탈, 방화 등은 지금까지도 모든 전쟁에서 볼 수 있는 일들이다. 근래에 와서 전쟁은 도로, 철도, 발전소, 병원 등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더욱 철저히 파괴하고 있다. 걸프전은 일반적인 전쟁에서 볼 수 있는 이런 파괴 행위 외에 이 지역에 집중되어있는 수많은 유전과 송유시설을 파괴함으로써 지금까지의 그 어느 전쟁보다도 더 참혹한 환경 재난을 초래했다. 그리고 그 피해는 매우 광범위하고 오랜 기간 회복 불가능 상태로 남게 됐다.

오늘날의 산업사회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원자력발전소나 유독성 화학물질 제조공장 등과 같은 위험시설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이 경우 핵무기나 생화학무기와 같은 대량 살상용 무기가 사용되지 않더라도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물론, 전쟁을 사전에 막는 것이 최선이지만, 만일에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으로 인한 환경 재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이를 고려한 도시계획이나 산업시설 배치, 비상체계 등과 같은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 전쟁 시 대형 환경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설을 파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제2의 제네바협정을 맺는 것이 지구와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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