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명절이 되면 대부분 사람들이 고향을 찾고 부모님을 찾는다. 이는 수천년 전통이므로 아무리 글로벌화된 세상이라 하더라도 바꾸기 힘든 관습인 것 같다. 한국사회가 지난 50~60년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 크게 변화했으므로 장년층 이상의 사람들은 과거의 명절들을 잘 기억하고 지금의 명절과 잘 비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차들을 몰고 가고 고속버스, 고속철, 항공편 등을 이용하지만, 그 당시에는 완행열차 이용이 대부분이었으므로 표를 사기도, 타기도, 가기도 어려웠다. 서울역에 수없이 늘어선 줄들, 긴 장대 휘두르며 소리 지르며 줄 맞추라던 경찰과 역무원들. 기차는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만원이었고 지금이면 2~3시간 거리를 8~9시간 걸려 가곤 했었다.

이러한 추석 등 명절귀성이 중국에서도 흔한데, 나라가 넓고 인구가 많다 보니 고향 가는데 며칠씩 걸려서 잠시 다녀온다 해도 일주일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국토가 상대적으로 작은 우리나라의 복잡함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지고 엄격해져서 귀성시간 내기가 더욱 어려워져 감이 문제일 것이다. 이제는 대부분이 가고 오고 1박 2일, 길어야 2박 3일 정도를 명절 귀성·귀경에 쓰는 것 같다.

지금도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집중해 있지만, 적지 않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사람들이 지방에 직장을 잡고 정착하는 경우도 많아져서 역귀성이 늘어난 듯 보여진다.

부모님들이 지방에 계시지만 자식들 있는 서울로 추석을 맞으러 가는 경우도 많아진 것 같다. 이는 많은 식구들의 명절맞이 귀성이 쉽지 않아 비교적 덜 혼잡한 방안을 택하는 경우라고도 보아진다. 물론 부모님들의 자식들에 대한 이해와 양보가 우선되기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필자도 역귀성 인파 중 하나이다. 지난 25년간 포항에 거주하면서 추석과 구정에는 빠지지 않고 서울 부모님댁에 다녀왔다. 한동안은 아들들을 포함한 4명의 이동이었지만 요즈음은 혼자만의 이동이다.

아들들이 해외에 직장을 잡아 살고 있고 요즈음 집사람이 그곳에 체제 중이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서울왕복에 항공편을 주로 이용했는데, KTX가 개통된 후 몇 년은 신경주~서울노선을 이용했었다.

요즈음은 포항~서울노선이 개통돼 2시간 반 정도에 서울도착이 가능해 자주 이용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명절승차권예약의 번잡함을 이유로 하루 단 한편 있는 포항~김포 항공편을 이용한 것이다.

물론 한동안 이용하지 않던 항공편을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덕동 집에서 차를 몰고 나와 30분 만에 공항에 도착하고 차를 세우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좀 늦은 오후시간대이다. 해외여행을 자주하는 필자로서 포항~김포행 항공기를 잘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천공항에서 떠나고 도착하는 국제항공편과 시간을 맞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 비행편이 여럿일 때에는 김포를 거쳐 인천공항 도착이 편리했는데, 요즈음 국제선 탑승을 위해서는 대부분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고 지하에 위치한 도심터미널에서 짐을 부치고 공항철도에 탑승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시간이 좀 더 걸리지만 돌아올 때는 간편하게 인천공항과 포항을 오가는 리무진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필자만 빼고 나머지 형제자매들이 대부분 서울과 근교에 거주하기에 명절 이외에도 자주들 부모님댁이 있는 항동에 들른다. 하지만 명절에는 대부분의 식구들, 어린이들을 포함한 대가족이 항동에 모이니 집안이 떠들썩하다.

대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자니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큰아들인 형님집도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저녁에 식구들이 모여야 하니 음식 마련에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든다. 다들 긴 밥상 주위로 둘러 앉아 밥과 국, 그리고 준비된 음식들을 먹는다.

갈비찜, 불고기, 빈대떡. 야채·생선·고기튀김, 잡채, 나물, 조기구이, 통닭, 송편, 식혜 등이 주요 메뉴들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때로는 부엌에서 음식준비 등을 하면서 밀린 이야기들을 나눈다.

필자가 어릴 때, 같은 고장이지만 좀 더 교외농촌에 사시는 조부댁에 아버지를 따라 명절이면 차례 내지 세배차 다녀온 적이 많았는데, 그때는 서울에 사는 사촌형들이며 친척들이 많이들 내려왔었다.

그 당시는 우리나라가 막 산업개발이 시작되는 시점이어서 잘 차려입고 명절 맞으러 온 동네 형이나 언니들을 따라 서울의 공장으로 취직차 떠나던, 혹은 무작정 상경을 감행하던 중졸 정도의 젊은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때 서울은 그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줄지 모를 ‘꿈의 세계’였다고 본다. 명절이 가족들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직장동료를 구해가고 직장을 얻고 서울살이를 열어줄 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당시 명절이면 제대로 입고 먹지 못했던 동네 아이들도 새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다. 온 일년을 명절을 기다리며 살아온 것처럼...하지만 나라가 발전되고 명절풍습도 바뀌었다.

이때 특별히 새옷을 사 입을 이유도 없어졌고, 귀성을 하더라도 차례며 성묘보다는 가족들 만남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것이다. 이러니 귀성이건 역귀성이건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번 추석명절에 한 동료는 식구과 함께 4명이 ‘대만’에 관광 다녀왔다고 자랑이다. 실제로 명절기간에는 인도네시아 발리, 태국 푸켓 등 해외 유명 관광지 항공노선은 좌석이 몇 달 전 동이 날 지경이다.

추석은 우리의 역사 깊은 명절이고 길이 보전해야 할 유산이지만 세월이 바뀌며 점차 변모해감을 체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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