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 명예교수

세계 석유의 대부분은 페르시아만 연안의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이란, 오만, 카타르와 같은 국가에서 생산된다. 이 페르시아만에서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무력으로 쿠웨이트를 점령했다. 이후 유엔에서 몇 개월간 협상이 진행되다 1991년 1월 17일 미국을 선두로 유엔군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3월 3일에는 마침내 쿠웨이트를 이라크로부터 수복했다. 쿠웨이트 수복 과정에서 이라크와 유엔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이 전투로 많은 재산과 인명피해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20세기에 기록될만한 대규모 환경 재난이 발생했다.

1991년 1월 25일, 이라크는 페르시아만에 위치한 쿠웨이트의 송유 부두를 폭격해 100만 톤이 넘는 원유를 바다로 유출시켰다. 또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면서 유정 800여 개를 폭파하고 송유관과 저장 탱크 등 관련 시설까지 모조리 파괴했다. 이때 폭파된 유정 600여 개는 화염 속에 버려졌고 매일 불타는 석유가 460만 배럴에 달했다.

세계 주요 기름 유출 사고(유출량 단위 tonnes)
세계 주요 기름 유출 사고(유출량 단위 tonnes)

이 잔인한 환경 테러는 기름으로 페르시아만을 오염시키고 세계 석유 시장을 뒤흔들어 이를 서방국가에 대한 위협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이라크의 의도적인 행위였다. 당시 유출된 원유는 지금까지 세계 어떤 유조선 사고나 해상 유전 누출보다 많은 양이었다. 파괴된 송유 부두에서 흘러나온 기름은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어지는 해안선 450여㎞를 뒤덮었다.

페르시아만은 폐쇄해역이라 유출된 원유 대부분이 만 내에 머물렀지만 전쟁 중이라 제거할 방법이 없었다. 기름이 바다에 유출될 경우 오일펜스를 설치하고 흡착제나 유화제를 뿌리는 등 사고 발생 초기에 방지 대책을 취하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페르시아만의 기름 유출은 전쟁 중에 일어났기 때문에 아무런 대책을 취하지 못했다. 그래서 페르시아만의 기름 유출은 폐쇄된 해역에 엄청난 양이 유출되었고 어떤 방지 대책도 취해지지 않은 역사상 최악의 바다 환경 재난이었다.

걸프전 당시 불타는 송유 부두와 유정
걸프전 당시 불타는 송유 부두와 유정

페르시아만 연안은 산호초와 모래 해변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특히 모래와 개펄이 혼합된 사브카라는 독특한 해안 습지가 형성되어 있어 매우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었다. 이곳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갖가지 식용 어류와 무척추동물, 그리고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희귀 동식물들이 살고 있었으며, 사브카의 다양한 생물상과 높은 생산성은 페르시아만 해양 생태계에 좋은 먹이 공급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걸프전 이후 산호초와 모래 해변에는 기름 덩이가 곳곳에 산재했고 먹이를 구할 수 없게 된 물새들도 떼죽음을 당했다.

페르시아만 연안에 위치한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은 수자원이 부족해 식수의 90% 이상을 페르시아만 해수를 담수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고로 인해 주베일과 다란, 바라드 등에 건설된 해수 담수화 공장은 더 이상 식수를 생산할 수 없어 폐쇄되었고 이곳 주민들은 마실 물조차 구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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