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우리나라의 고대국가는 고조선에서부터 부여로 이어지지만, 실제적인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한반도와 만주지방을 지배하던 시대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시대라고 할 수 있다.

부족국가의 형태에서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 간 것이 이 3국들도 서기 3~4세기 되어서라고 할 수 있다. 신라와 백제 사이 완충지대에 가야연맹이 존재했는데, 이는 소국들이지만 발달된 경제산업을 바탕으로 한동안 융성하다가 고구려와 백제에 시달리기도 하다가 추후 신라에 흡수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후 신라는 당나라의 도움을 얻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을 이룩하였다. 고구려는 물론이고 백제도 신라에 비해 강성한 나라였는데, 고구려는 수나라, 당나라 등 대륙의 대국들과의 전쟁에 지쳐서 백제는 유약한 왕과 귀족들의 사치와 국방 등한시 등 잠시 방심한 사이에 운 나쁘게 망한 것이라고 보고 싶다.

아무튼 신라는 당나라의 도움으로 통일국가를 이루었고 모든 사서도 신라를 중심으로 기술되고 언어와 문화도 신라를 중심으로 재형성되어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렀다고 본다.

지난 칼럼에서 고구려의 유민들은 어디로 갔을지 잠시 알아본 바 있는데, 이번에는 백제의 유민들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백제는 우리가 역사서에서 배운 바보다 훨씬 국토가 넓고 영향력이 강한 나라였다고 생각된다.

지금도 중국해안가 각지에 백제의 지명이 많이 남아 있는데, 해상세력이 강했던 백제가 중국대륙 및 동남아 각지에 식민지 내지 거주지들을 개척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백제가 멸망한 후 이들은 그대로 남아 살아가면서서 자손대에 이르러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중국인 혹은 중국계 화교라고 부르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 말은 어쩌면 중국만이 아니라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오래전부터 거주하던 중국계 일부가 백제계일 수 있다는 말이고, 이는 필자의 의견이라기 보다는 일본 오사카대학의 한국계 화교연구가들이 조심스럽게 내세우는 주장이기도 하다.

백제의 대륙위치설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는 좀 더 보수적으로 백제가 한반도에 위치했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기로 하자. 많은 역사서들이 언급하고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매우 밀접했고, 일종의 주종관계를 넘어 하나의 나라였다고도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백제의 멸망을 앞두고 일본에서 백제를 구하기 위해 수 많은 병사들을 보내었었다. 또한 백제의 멸망 후 적지 않은 이들이 당나라로 끌려가기도 했지만, 많은 귀족과 백성들이 일본으로 갔을 것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백제라는 지명을 지닌 마을을 만들고, 사찰을 만들고, 그리고 일부는 귀족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을 것이다.

물론 일본에는 고구려와 고려라는 지명을 지닌 마을도 많고 사찰도 있는데, 이는 고구려와의 네트워크를 보여주고 고구려 및 발해 멸망후 적지 않은 귀족 및 백성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백제유민 더욱 많은 수가 일본행을 택했을 것으로 본다.

일본을 보면 확연히 다른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뒤섞였다고 보는데, 한그룹은 원주민인 ‘조몬인’이고 또한 그룹은 지배층을 이룬 ‘야요이인’이다. 한반도 도래인인 야요이인은 일본을 지배한 ‘야마토인’으로 불리며 현대 일본인 혈통 비율 중에서 87~97%, 그리고 유전자 분석으로는 65 대 35 정도를 차지하며, 이들 중 지배계층은 주로 백제계였다고 보인다.

물론 한반도를 통해 수천년간 많은 갈래의 사람들이 일본으로 가 정착했다고 보지만, 그 주된 그룹이 그렇다는 것이다.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 임진왜란때도 수 많은 한국인, 주로 도공 등 기술자들 그리고 여인들이 끌려와서 조국을 그리며 평생을 살아갔고 자손을 남겨 일본을 이루었다고 본다.

10년 전쯤 일본 규슈지방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 한 해안도시 가라쯔는 우리나라의 당진(唐津)과 같은 지명을 일본식으로 읽은 것이며, 이곳에서는 현해탄을 건너 대마도가 내다보인다.

이 근처 리아스식 해안가에 끌려온 한국인들이 정착하여 감시하에 그 당시 가장 뛰어난 기술이던 유약을 발라 1,250도 이상으로 가마에 구웠던 ‘자기’를 만들고 또한 일부는 배를 만들면서 고향을 그리며 살았다.

이 자기들이 일본의 자랑이 되고 유럽에 수출하여 큰 부를 구축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에는 까마귀가 많은데 이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한국에서 몇 쌍 들여왔던 까치가 자생하고 있다.

다양한 가설들이 존재하지만 능성구씨인 필자의 집안도 예족 계통인 백제의 집안으로서, 대성 8족 중 하나인 진씨(眞氏) 가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왕족인 부여씨(扶餘氏)에 이어 최고 귀족이었던 이 집안도 백제 멸망 후 일부는 일본으로 건너가고 일부는 남아 성씨를 약간 고쳐 구씨(具氏)로 한반도에 살아남았다고 생각된다.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 진씨들은 그곳에서 귀족이 되고 천황가를 이루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니 다양한 가설이 존재하지만 사실일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그 이전 부족국가인 고조선, 부여, 마한, 진한, 변한, 가야 등 모든 이들이 한반도에 함께 오래 거주했기에 이제는 남방계와 북방계 모두 합쳐져 독특한 한국인의 모습과 형질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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